“배우는 숨기는 게 없어야 등장인물과 하나가 될 수 있어요”
강석: 배우가 된다는 것은 너무 힘든 과정입니다. 어떤 유형의 등장인물이 저한테 주어질지 모르지만 그 마음을 배우 마음속에 담아내고 표현한다는 것은 평생 숙제인 거죠. 나이가 들어도 인생을 잘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혜림: 연극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좋아요. 연극이 그냥 좋은 겁니다. 연극을 좋아하는 배우들이 모여서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솔직한 감정을 꺼내놓는 것도 연극연습이 되죠.
극단 ‘상상극장’은 대구 동성로 한복판에 있다.
중앙파출소를 마주보고 왼쪽 위로시선을 틀면 극단 간판이 보인다. 입구에는 ‘연극으로 상상을 꿈꾸는 극단 상상극장’으로 되어 있다. 극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출신배우들 사진으로 가득하다. 사진 속 주인공들이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를 생각하면서 긴 호흡을 두 번 정도 하면 60석 규모의 작은 소극장이 있는 4층 입구에 도착한다. 배우 지망생은 벽면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
아. 아. 오. 오. 소리를 내면서 그 정확한 발음에 익숙해지려고 한다. 이 작은 소극장에서 매주 무료공연을 올린다. 매달 오르는 공연제목도 다르다. 소재가 되고 이야기가 되는 것 이라면 극단의 창작극 만들기에 좋은 소재가 된다. 극단 상상극장은 무대에서 이야기가 될 만한 소재를 모아 연극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단원들은 이야기에 장면을 입히고, 등장인물을 넣고 하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연습기간이 길지만 배우로써 얻는 것도 많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매주 상상극장 무대에 올린다.
이야기를 길러내 연극으로 담아냈으니 애착도 크다. 매주 ‘지킬박사’ 공연을 하고 있는 극단 상상 극장 단원인 두 배우들이 기다리는 사무실로 한 층을 더 올라 갔다. 남자 배우 강석(28)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키지만 다부진 체구에 눈이 큰 편이다. 무대에서 그가 감정을 쏟아내고 노래로 뿜어내는 맡은 인물의 열기는 신체조건을 넘어선다. 작은 테이블을 당기고 의자에 앉으려고 하는데 지킬박사의 상대역을 맡고 있는 강혜림(23) 여배우가 웃으면서 들어섰다. 감정이 표정으로 수 십 번 바뀐다. 긴장을 한 듯 얼굴에 열기를 식힌다. 빠른 속도로 한 손으로 바람을 만든다. 나이답지 않게 성숙하다. 연기를 배우는 몇몇 학생들이 주변에 모여 들었다. 의도와는 다르게 라디오 공개방송이 되어버렸다.
남자 배우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매주 연극을 하면 긴장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평일에는 공연한 후에 배우로써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기 위해 연습을 계속 합니다. 배우는 연습과의 싸움이죠. 그것을 이기고 견디어 내야 비로소 역할에 몰입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말공연은 더욱 견고한 배우가 되는 과정이고, 트레이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주말 공연은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강석은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했다. 배우로써 문학에 관심이 많아 현재는 국문학을 배우기 위해 대학공부를 다시 하는 중이다. 극단 「상상극장」을 이끌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뮤지컬 ‘마인’ 연극, ‘북어대가리’, 뮤지컬 ‘열등감’, 연극 ‘청혼’ , 연극 ‘위험한 커브’, 뮤지컬 ‘지킬박사’ 등 10여 작품을 했다. 공연을 하면서 연기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우가 된다는 것은 너무 힘든 과정입니다. 어떤 유형의 등장인물이 저한테 주어질지 모르지만 그 마음을 배우에 마음속에 담아내고 표현한다는 것은 평생 숙제인 거죠. 나이가 들어도 인생을 잘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감동을 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감동을 받으면 활력이 생기고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하게 됩니다. 사회가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드리고 생활에 활력소를 갖게 해주고 싶어서 감동을 주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여배우가 끼어들었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좋아요. 연극이 그냥 좋은 겁니다. 연극을 좋아하는 배우들이 모여서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솔직한 감정을 꺼내놓는 것도 연극연습이 되죠. 그 시간이 너무 신나고 저 한 테는 너무 흥분되는 시간 이예요”
배우 강 혜림은 극단 「상상극장」에서는 막내다. 대학을 졸업하고 상업극단을 통해 몇 편 연극을 올렸다. 허전했다. 배우로써 그 마음을 더 채워 넣고 싶었다. 잘 만들어 놓은 뮤지컬과 연극을 통해 주어진 역할을 잘 소화해 내는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연극과 뮤지컬을 만나고 싶었다. 관객에서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연극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상상극장의 조 승암 연출자를 찾았다.
▲ 70석 규모의 작은 극장에서 공연한다는 게 배우로써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다. 극단 상상극장 보다는 더 큰 무대가 그립지 않나.
이 말에 두 배우는 서로를 마주 보면서 약속이라도 한 듯 웃었다. 남자 배우가 생각을 말한다. “무대가 작은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 작은 무대에서 어떤 작품을 만나고 어떻게 연습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배우는 무대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아요. 대형 뮤지컬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나, 소극장 무대를 준비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극단 상상극장은 늘 주말마다 어떤 작품을 올려야 할지 상상을 하게 해줍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극단 상상극장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기대감, 궁금증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강 혜림은 “작은 무대에서 관객한테 늘 감동을 주는 배우가 얼마나 좋아요. 주말마다 관객한테 감동을 주고 있다는 자체가 큰 의미죠”
강혜림은 뮤지컬 배우 옥주현을 닮고 싶다. ‘시카고’ 공연을 보면서 그의 연기에 푹 빠졌다. “옥주현은 저에 로망이죠. 노래, 연기, 춤 등 3박자를 다 갖춘 것 같아요. 시카고 공연을 보면서 정말 뮤지컬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해준 분입니다”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나서 그녀는 연극과 뮤지컬만을 하기 위해서는 최저 생활비는 직접 벌어야 했다. 하루에 몇 시간 남는 동안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부모님이 계시고 어려운 것은 없지만요. 진정한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이 과정도 저 한 테는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 두 배우가 에피소드 뮤지컬 ‘지킬박사’에서 호흡이 잘 맞더라. 공연이 끝날 때 까지 감정을 놓지 않는 게 인상적 이였다. 연습과정이 힘들었을 것 같다.
“공연을 준비 하면서 힘들었던 기억보단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연출자가 각각의 배우들의 개성을 살려주셨고, 즉석으로 대사를 만들어가며 장면을 만들어 나가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갔는데 처음부터 끝날 때 까지 웃으면서 연습한 적은 처음이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 내 말이 맞지?’ 하는 것처럼 눈으로 신호를 보낸다.
배우 강혜림의 웃는 표정은 더 커진다. “즉흥적으로 서로의 단점을 얘기하면서 연습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강석 선배가 키가 작잖아요. 그런 단점들을 꺼내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서로 소통합니다. 서로 단점까지 싹 알고 있으니까 공연할 때쯤에는 부부 같아요. (웃는다) 호흡이 척척 맞죠. 배우는 숨기는 게 없을 때 진정하게 역할로 몰입되고 그 인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그렇게 태어난 역할이 늘 만족스럽지 못한 게 배우다. 연기를 한다는 것 어렵지 않나?
두 배우다 침묵한다. 남자 배우의 말투가 더뎌진다. “컨디션에 따라서 좌우하는 부분이 너무 어려워요. (여배우가 고개를 끄덕 거린다.) 배우도 사람이고, 표현해야 할 대상도 사람의 마음이잖아요. 어느 날은 감정표현과 소리표현이 좋았다면 또 어느 날은 감정이 과하거나 약하거나 소리가 딱딱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쉽죠. 그래서 공연 때 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부분이 어렵습니다. 컨디션을 유지한다고 해서 역할에 몰입되고 인물의 마음을 다 꺼내 놓을 수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배우는 참 힘든 직업입니다. 연습이 부족해서겠죠” 말을 하고 나서 손동작이 커진다.
▲ 인물의 마음을 잡는 연습은 어떻게 하나?
강혜림은 “특별한 연습은 없어요. 그냥 주어진 인물의 마음을 닮기 위해서 부단하게 연습하면서 인물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장쥬네 작 ‘하녀들’의 연습은 장면의 즉흥극을 하면서 발전을 시켜요. 최소한 인물의 감정을 유지하고 그 장면 안에서 정해 놓은 것 없이 제 감정에 모든 것을 맡겨서 최대한 살아있는 마음과 감정을 얻기 위해 즐겁게 연습을 하면 서서히 인물의 마음이 꿈틀대기 시작해요”
얘기를 듣던 강석은 진지한 표정을 한다. “저도 같은 생각이지만 이번 지킬박사를 하면서는 영상으로 기록을 늘 남깁니다. 공연했던 영상을 보면서 연기와 가창부분을 늘 분석합니다. 뮤지컬은 노래가 중요하잖아요, 특별한 호흡법으로 소리 가창을 더 부드럽게 하는 연습을 꾸준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리를 통해 대사에도 적용을 해보죠. 노래연습을 할 땐 늘 녹음을 하며 내가 듣기에 좋은 소리를 찾아가며 연습하고 있습니다. 정말 배우는 힘들지만, 배우로써 성장해 나가는 단계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배우에게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많은 작품을 관극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관극한 작품들은 어떤가?
“요즘 대구에서 오르고 있는 작품들은 너무 상업적 이예요. 로맨틱 장르나 개그와 콩트 형식의 공연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뮤지컬 도시라고 하는 대구에서 창작 작품을 만들기보단 외국의 작품들을 그대로 들여와서 공연을 하는 것은 대구가 뮤지컬 도시라는 브랜드에 맞지 않게 많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창작뮤지컬을 활성화 시켜야 차별화가 되죠. 이제 대구는 관객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의미 있는 작품을 많이 올려야 합니다. 관객들이 감동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공연문화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어떤 게 있나.
“딤프(대구뮤지컬페스티벌)에서 러시아 배우들이 공연한 ‘홀스또메르’ 작품이 강하게 기억에 제일 남아요. 깊은 감동이 있었고, 연기력도 대단했습니다. 무대에서 배우들의 에너지는 대단했고 작품이 주는 주제가 너무나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주제도 선명하고 그 선명함을 배우들이 잘 표현했어요.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배우 강석은 대전 출신이다. 어려서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다. 뮤지컬은 선생님의 권유에 의해 시작했다. 뮤지컬과를 선택하고는 대구에 정착했다. 뮤지컬이 좋아졌다. 공연하는 맛이 달랐다. 그는 웬만한 뮤지컬작품의 노래넘버는 다 소화하고 있다. 노래로 풀어놓는 감정표현도 좋고, 연기에도 인물의 마음을 충분히 담아서 뱉어 놓는다. 군 입대를 하고는 국방부에서 최초로 만든 뮤지컬 ‘마인’에 오디션을 보고 합격을 해 공연을 다녔다.
▲ 군 생활을 하면서도 뮤지컬을 했다. 군인으로 뮤지컬을 하는 것과 배우로써 뮤지컬을 공연하는 것은 어떤가.
“군대에서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선발 했죠. 국방부 최초로 주최한 공연이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뮤지컬 부대라고 처음으로 만들어졌어요. 군인가족의 아픔과 전우애를 담은 뮤지컬이었습니다. 그때 만난 동료들이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모두들 정말 열정적이고 절실하게 땀을 흘리며 창작뮤지컬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 옆에 앉아있는 배우와의 호흡은 어떤가. 상대역으로 감정을 잘 받아내고 있나?
“같은 하는 배우들 모두 열정이 대단합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될 때까지 연습을 해가면서 오히려 저를 더욱 열정 있게 만들어주고 있어요. 작품에 스킨십이 많은데요. 혜림이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움직여줘서 연기하기에 부담이 덜 했습니다. 예쁜 척을 하는 배우라기 보단 털털하게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입니다. 상대배역인 저로썬 솔직한 감정을 표현해주니까 연기로 반응하기에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배우가 주어진 등장인물을 전달해야 할 표현의 재료는 몸과 소리다. 몸 과 소리는 인물의 마음을 입히고, 그 입힘의 감정들은 영혼을 담아 관객으로 향한다. 영혼이 맑지 않으면 인물의 마음도 들어 설 자리가 없다. 맡은 인물을 채우고, 지우고를 수 없이 해야 비로소 배우의 그릇이 만들어 진다. 만들어진 배우그릇의 쓰임새도 수백 번 바뀐다. 그런 배우의 과정은 고행의 수련이다. 견디어야 인물의 마음을 잘 담아내는 배우가 된다.
▲ 많은 작품을 공연해 보면서 배우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상생활에서의 솔직한 감정표현이 습관이 되어 있어야 해요. 감추는 것이 있다면 정직한 인물을 만들 수 없죠. 그리고 매 순간 무대를 향한 순수한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배우 강 혜림이 마지막 말을 한다. “배우의 조건은 치열한 연습과 무대를 통해서 만들어 진다고 생각해요. 견뎌 내는 마음은 배우로써 첫 번째 조건인 것 같아요” 이 말을 하고는 남자배우를 쳐다본다. “그렇죠. 선배? 하하하”
얘기를 끝내고 ‘지킬박사’에 나오는 노래를 부탁했다. 두 배우의 감정이 울린다.
● 김건표 교수(대경대학 연극영화방송학부)는 연극·뮤지컬·공연문화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찾아 공연분석을 통한 리뷰를 써오고 있으며, 인터뷰 전문 칼럼리스트다. 방송, 신문언론을 통해 600여명이 넘는 스타, 전문가, 공연예술가들의 인터뷰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