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속의 헬리코박터 균을 잡는 게 대유행이다. 이 균을 없애준다는 병원도 많고, 이 균을 없애준다는 각종 건강식품·유산균음료도 많다. 병원 치료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약값·치료비가 모두 비싸다. 헬리코박터를 죽인다는 건강식품도 비싸기는 마찬가지다.
위암 발병의 원인이 된다는 이 균을 죽이기만 하면 위암이 사라질 것처럼 헬리코박터가 타도의 원흉으로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되는 현상이다. 의사 입장에서 이런 현상은 반가울 만도 하다. 건강보험 수가가 낮다고 의사들이 아우성인 한국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치료는 비싼 치료비가 적용되고, 고가 치료를 사람들이 많이 받을수록 의사는 돈방석에 올라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은퇴를 일 년 반 앞둔 소화기내과의 대부 격인 서울대병원 송인성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아무 주저 없이 “이건 아니다”라고 손을 내젓는다. 뚜렷한 근거 없이 헬리코박터가 의료계와 건강식품 업계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반론이다.
그간 헬리코박터 균은 위궤양의 원인이며 위암으로 연결시키는 주범인 것처럼 언급돼왔다. 그러나 송 교수는 “그간 발표된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이 균을 가졌다고 반드시 위궤양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위암으로 직행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궤양에 걸린 환자에게서 헬리코박터 없애면
재발률 크게 낮추는 효과 거둘 수 있어.
그러나 보균자 중 궤양 걸리는 경우 1%도 안 돼
비싼 치료비 물면서 없애려 드는 것은 낭비”
송 교수의 조사 결과를 보면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우선 위궤양 환자의 70~80%, 십이지장궤양 환자의 90% 정도가 이 균을 갖고 있다. 이 숫자만 보면 헬리코박터가 위·십이지장 궤양의 원흉인 것 같고, 이 균만 죽이면 궤양 공포에서 해방될 것처럼 보인다. 업체들이 열심히 선전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좀 더 큰 그림을 보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국인의 70~80%가 이 균을 갖고 있지만, 이들 중 위·십이지장 궤양에 걸리는 사람은 1%가 채 안 된다. 이 균이 있다고 반드시 궤양에 걸리는 것도, ‘위암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탄 것도 아니란 소리다.
이를 송 교수는 알기 쉽게 “씨 뿌린다고 다 싹 나냐?”는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씨에서 싹이 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씨만 뿌린다고 꼭 싹이 나는 것은 아니란 비유다. 헬리코박터 균이 있고 여기에 여러 조건이 맞으면 궤양을 지나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보균자 중 실제로 궤양으로 발전하는 사람은 1%도 안 되는데, 굳이 비싼 치료비를 들여가며 헬리코박터를 죽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치료가 남용되면 균에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꼭 헬리코박터를 죽여야 하는 환자에게 치료가 잘 안 되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과 같은 과열현상은 의학적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옳지 않다는 설명이다.
송 교수가 내놓는 정답은 이렇다. “기왕에 궤양이 발생한 환자 중 헬리코박터가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헬리코박터를 없애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십이지장궤양 환자의 경우 궤양 치료 뒤 헬리코박터 균을 그냥 놔두면 1년 뒤 궤양 재발률이 70~80%나 된다. 그러나 이 균을 없애버리면 재발률은 10% 이하로 뚝 떨어진다.
궤양에 걸릴 소질이 있는 사람에게 이 균은 분명히 악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이런 사람에 한해 헬리코박터를 없애면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