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으로 들뜬 증권가…‘코스피 7500’ 주장까지
주요기업 PBR 여력 충분…아시아 주요국보다 낮아
3저 호황 40년만에 재현…‘대세상승장 진입’ 판단?
버블론, 투자책임 등 경고 메시지는 없어 주의 필요
한국 증시가 ‘코스피 5000’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가운데 여의도 증권가에서 이에 관한 세미나를 열어 눈길을 끈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이 발제자로 나선다니 그들의 주장이 궁금했다. CNB뉴스가 그 현장에 다녀왔다. (CNB뉴스=손정호 기자)
“코스피 지수가 4000을 돌파하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우리 기업의 실적 개선과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에 따라 6000포인트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한국거래소 정은보 이사장이 지난 11일 자본시장연구원이 개최한 ‘코스피 5000 시대 도약을 위한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기자는 이날 세미나가 열린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사옥 2층 마켓스퀘어 홍보관을 찾았다.
한국거래소 1층에 있는 커다란 상자 모양의 코스피 전광판에는 4000을 웃도는 숫자가 반복적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요즘 ‘핫’한 SK하이닉스,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종목들의 주가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광판 앞 도서관에서 경제 도서를 읽는 시민들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홍보관 앞 평면 전광판에는 이번 세미나의 포스터가 투영되고 있다. 부제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평가와 향후 추진 방향을 중심으로’. JP모간운용이 아시아 미디어 서밋에서 한국 증시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후 65% 상승했다는 문구도 담겨있다.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이날 세미난 주역인 정 이사장과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을 취재하기 위해 약 60명의 기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정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지난해부터 추진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기업 가치 제고와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핵심 이니셔티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주주 환원이 크게 확대되는 의미 있는 변화로 투자자들이 믿고 투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코스피 5000 시대가 시장 참여자들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미래”라고 강조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인 강준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축사를 통해 “코스피 4000 달성으로 5000 시대가 구호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가 되었다”며 “투명한 지배구조 등 시장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현명한 정책과 필요한 입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자본시장 선진화에 대한 목소리를 경청해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은 영상 축사에서 “정부는 주가 상승에 대한 일관된 정책 기조를 유지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어떤 기업이 혁신적인지 판단하고 우리나라 저성장 기조를 어떻게 바꿀지, 생산적 금융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서 긴 호흡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한 걸음씩 내딛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주의’ 경고는 없고 청사진만 제시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KB증권 김동원 리서치본부장은 ‘40년 만의 상승장 진입 : 2026 주식 시장 및 반도체 전망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김 본부장은 “2026년 코스피 타겟 지수는 5000인데 아시아 평균 대비 60%, 일본보다 20% 할인 거래되고 있다”며 “한국 증시의 역사를 보면 1985년, 2003년 급등하고 평균 3년 동안 상승장이 이어졌는데 올해 세 번째 대세 상승장 진입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달러 약세, 저금리, 저유가의 3저 호황이 40년만에 재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본부장은 “현재 코스피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4배 정도로 세계 증시 3.5배, 아시아 증시 2.2배와 비교해 낮아서 5000포인트를 달성할 수 있다”며 “과거 3저 호황 시기의 변화를 고려하면 오는 2028년에 7500까지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내년 코스피 영업이익이 401조원으로 올해보다 107조원 늘어날 것”이라며 “이 증가량 중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69%로 높아서 반도체 산업이 중요한 섹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랠리 거품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1999년 닷컴버블 당시 기업들의 평균 PER(주가수익비율)이 60배였는데, 현재 M7 기업으로 불리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메타, 테슬라, 애플, 엔비디아는 30배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글로벌 AI 산업 성장의 수혜가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한국을 방문해 강남 깐부치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을 만나 치맥 회동을 한 사례를 들었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제품을 위한 동반자로 삼성전자를 키 서플라이어(Key Supplier), SK하이닉스를 바이탈 메모리 테크놀로지 파트너(Vital Memory Technology Partner)로 표현한 점이 의미 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유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우리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조금 더 기업에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우리 기업들의 해외 투자 규모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부터 늘어났고 최근 관세 협상에 따라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유 센터장은 “우리나라 잠재 성장률이 낮아질 가능성에 대비해 국내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정책 대응이 필요하고, 이런 정책적 지원이 이뤄지면 코스피 5000 시대가 더 빨리 실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한투자증권 윤창용 리서치센터장은 “주가는 기업의 펀더멘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떻게 기업 경쟁력을 키울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기업들을 방문하면 중국이 많은 부분에서 한국보다 기술 경쟁력을 갖춘 점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세제 혜택 등으로 국내에 투자를 늘리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추가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나증권 황승택 리서치센터장은 장기 보유 주주에 대한 인센티브 도입, 혁신 비상장 기업에 대한 프리 IPO(상장 전 지분 투자), 모험자본 투자 선순환 구조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자본시장연구원 황현영 연구위원은 ‘밸류업 및 지배구조 개선 입법의 성과와 과제’ 발표를 통해 주주 환원 정책 강화 등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코리아 프리미엄을 향한 과제를 제안했다. 밸류업 정책의 지속적 추진,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내실화, 기관 투자자 및 주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권고 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이날 세미나는 증권업계 주장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버블론, 투자책임 등 경고 메시지는 거의 없어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 수치상으로는 대세상승 가능성이 높더라도 글로벌 경제에는 예기치 않은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직전까지 부동산 버블이 불패신화로 각인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CNB뉴스=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