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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맥아더·금강산·제주… ‘수제맥주의 난(亂)’은 성공할까

모처럼 ‘봄날’…앞날은 ‘안갯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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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20.05.19 10:23:56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주류 코너에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국산 수제맥주들이 진열돼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 직장인 정모(46)씨는 저녁마다 영화 한편 틀어놓고 마시는 맥주 맛에 푹 빠졌다. 코로나19로 저녁모임, 야근이 사라지면서 생긴 호사다. 특히 정씨는 과거 부담스런 가격에 피했던 국산수제맥주를 종류별로 맛보고 있다. 대표적인 에일(Ale)과 라거(Lager)는 물론, 과일맥주, 커피맥주 등 장르 구분조차 힘든 독특한 맥주들을 음미하며 나름 ‘맥덕(맥주 덕후)’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집콕’ 확산…수제맥주 전성시대
세금까지 내려가 가격경쟁력 ‘업’
수입맥주 반격하면 앞날 불투명

 

맥주 시장 판도가 바뀌고 있다. 종량세 시행과 코로나19 여파로 수제맥주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잘나가던 수입맥주는 일본 불매운동과 세재개편으로 쪼그라들었고, 카스, 테라, 클라우드를 각각 앞세운 빅3(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주류)는 제자리걸음이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국산 수제맥주들의 약진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수제맥주 브랜드인 제주맥주는 지난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올해부터 이마트와 편의점 미니스톱 등에 물량을 넣고 있는 문베어브루잉은 백두산IPA와 금강산 골든에일이 인기를 끌며 매월 두자릿수 매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대한IPA’, ‘흥청망청’, ‘맥아,더’, ‘에일의 정석’ 등 중소맥주회사 제품들이 아사히·기린 등 일본 수입맥주가 떠난 자리를 메우고 있다. 실제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경우, 국산맥주 중 수제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8년 2.5%에서 현재 9.0%로 3.6배 증가했다.

그간 수제맥주는 국내 시장에서 힘겹게 성장해왔다. 대기업 맥주에게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마케팅에서 뒤처지면서 고전해 왔다.

하지만 최근들어 가격을 대폭 낮추며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수제맥주 기업들은 이마트와 손잡고 백두산IPA, 금강산 골든에일, ARK, 대한IPA, 흥청망청, 에일의 정석 등 다양한 맥주들을 ‘4캔(500mL 기준) 9400원’에 묶어 팔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캔당 3500~400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가격이 대폭 내려간 셈이다. 4캔 9천원~1만원을 받고 있는 수입맥주와도 별 차이가 없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수입맥주 판매대에 수입맥주와 국산 수제맥주들이 뒤섞여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외국맥주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했었다. (사진=도기천 기자)
 

‘4캔 9400원’ 지각변동의 서막

이렇게 된 데는 주세법 개정이 주효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맥주 과세체계는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방식이었다. 국산맥주는 국내 제조원가에 국내의 이윤·판매관리비를 더한 출고가를 기준으로, 수입맥주는 관세를 포함한 수입신고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했었다.

그런데 올해 1월1일부터 술의 부피·용량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종량세’로 바뀌었다. 이에따라 국산 수제 캔맥주(500㎖)의 경우 기존에는 리터당 1758원의 세금을 냈지만, 종량세 전환 후 1343원으로 415원이 줄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수입맥주와의 세금형평성 문제 때문이다. 수입맥주의 경우 국산맥주에 포함된 이윤이나 판매관리비 등이 포함되지 않아 세금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했다. 1991년 7월 이전까지는 수입 주류도 국산과 마찬가지로 통산이윤상당액을 더한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겼지만, 통상 마찰을 이유로 이윤은 과표에서 빠졌다.

이런 가운데 수입맥주는 시장을 점차 잠식해 들어갔다. 한국기업평가의 2018년 11월 주류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국산맥주의 시장점유율은 2010년 97.2%에서 2017년 85%로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수입맥주는 꾸준히 늘어 2.8%에서 15%로 증가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국내 기업들이 세금 문제를 지적하면서 논란이 확산됐고, 결국 정부·국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시행하고 있는 종량세로 세법을 바꾼 것이다.

 

국내 수제맥주 기업들은 종량세 도입과 코로나19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사진은 대구 최대 수제맥주전문 복합문화공간인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 (사진=도기천 기자)
 

코로나 반사이익 더해져

여기에 더해 수제맥주사들은 코로나19 사태의 반사이익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맥주 시장은 크게 식당·주점 등 유흥시장과 마트·편의점 위주의 가정시장으로 나눠지는데, 양 시장의 비율은 55 대 45 정도로 유지돼 왔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유흥시장 판매가 크게 줄면서 상대적으로 가정시장 규모가 커졌다. 애초부터 가정용 시장에서만 판매돼온 수제맥주는 이런 변화 속에서 이득을 본 것으로 분석된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CNB에 “코로나가 창궐하던 3~4월에 가정 시장 매출이 업소 매출을 앞질렀다”며 “대기업 맥주 뿐 아니라 수제맥주의 약진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평소 맥주를 즐긴다는 한 직장인은 “회사 회식이나 밖에서 지인들과 한잔할 때는 청량한 맛의 카스나 테라를 선호하지만 집에서 ‘혼술’ 할 때는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수제맥주를 찾게 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일본 맥주 불매운동 기조가 이어진 점도 상대적으로 수제맥주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로 반일 감정이 고조돼 있던 차에 코로나19 사태 초기 일본이 사실상 외교봉쇄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자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 됐다. 이는 국산맥주가 반사이익을 얻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까지 계속되어 온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 ‘신촌맥주축제’ 모습. 코로나19로 인해 먼 옛날 모습으로 느껴진다. (사진=서대문구청 제공)
 

‘불안한 봄날’ 언제까지?

하지만 수제맥주가 계속 승승장구 할지는 의문이다.

우선 식당·주점 등 유흥시장 진출이 막혀 있다. 유흥시장은 이미 대기업 맥주들이 잠식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맥주 대기업 관계자는 CNB에 “수제맥주는 가정용 맥주시장에 국한된, 전체 맥주시장의 한 부분일 뿐”이라며 “최근 코로나 사태로 가정시장이 커진 것은 맞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잠잠해지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수입맥주의 2차공세도 넘어야할 산이다. 수입맥주는 맥주 맛에 있어 수제맥주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다. 맥주업계는 세재개편과 코로나19로 수입맥주의 공세가 잠시 주춤할뿐,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시장이 재편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글로벌 1위 양조기업인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인베브)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오비(OB)맥주는 영국 에일맥주 ‘바스’, 독일 밀맥주 ‘프란치스카너’, 미국 라거맥주 ‘버드와이저’, 룩셈부르크 ‘모젤’, 벨기에 ‘호가든’과 ‘스텔라’, 맥시코 ‘코로나’. 일본 ‘산토리 프리미엄’, 중국 ‘하얼빈’ 등 수십종의 인기 외국맥주를 국내에 보급하고 있다. 따라서 오비맥주가 대대적인 이벤트에 나설 경우 다시 전체 판이 출렁일 수 있다.

수제맥주 복합문화공간인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의 김시연 대표는 CNB에 “국내 수제맥주 기업들은 영업력과 마케팅 측면에서 대기업과 비교가 안된다”며 “(수제맥주사들은) 당장의 매출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특화된 맥주맛으로 마니아층을 공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직 품질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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