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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한진家 남매전쟁…‘조원태표 혁신’에 입다문 국민연금

반대 명분 약해져…마지막 고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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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20.02.12 09:09:50

지난해 연말 뉴욕에서 특파원들과 간담회 갖고 있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한진그룹 제공)
 

한진그룹의 가족 간 경영 분쟁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캐스팅보트를 손에 뒤 국민연금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주목된다. 조원태 한진 회장이 엄마와 동생의 지지를 등에 업고 경영권 방어에 나선 가운데 누나를 중심으로 한 ‘반(反) 조원태 연합군’은 주주행동에 돌입했다.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그 가운데 선 국민연금의 속내를 엿봤다. (CNB=도기천 기자)

가족분쟁 격화되자 칼집 만졌지만
경영투명성 강화하자 ‘침묵모드’로
표차이 근소해 안심할순 없는 상황


“관심이 큰 사안임을 알고 있다. 주주제안 내용을 보고 판단하겠다”(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

“어떤 안건을 제안할지 아직 모른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한진칼 관계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사모펀드 KCG, 반도건설로 구성된 ‘한진그룹 정상화를 위한 주주연합’이 오는 14일까지 주주제안권(주주들이 주총 안건을 제시하는 행위)을 행사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한진그룹 안팎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한진가(家) 가족 분쟁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4월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하자 곧바로 장남(조원태)이 뒤를 이어 회장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경영에서 손을 뗐던 조현아 전 부사장(조원태 회장의 누나)이 복귀를 시도하면서 크고 작은 분란이 계속돼 왔다.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이른바 ‘땅콩 회항’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났었다.

 

한진그룹이 최근 매각을 결정한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한진그룹은 이 부지에 7성급 호텔을 지으려했으나 무산됐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그룹의 호텔·레저사업을 지휘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매각 결정은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사진=연합뉴스)
 

공격·반격…루비콘강 건너

조 전 부사장이 본격적인 포문을 연 것은 새해 들어서다. 지난달 31일 주식 공동 보유 사실을 알리며 전문경영인체제와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표면적으로는 주주이익 증대와 지배구조 개선 등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조 회장에 대한 ‘불신임’으로 해석된다. 그간의 과정을 보면 무리한 해석이 아니다.

한진가(家)는 조양호 회장 타계 후에도 한동안 후계자를 정하지 못했다. 조원태 회장이 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음에도 공정거래위원회에 총수 지정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 그러자 공정위는 직권으로 조 회장을 총수로 지정했다. 가족 간 합의없이 외부에서 후계자를 지정해준 셈이 된 것. 이는 가족 간 분쟁의 불씨로 작용했다.

‘불안한 동거’가 깨진 건 작년 연말경이다. 조 회장은 뉴욕 특파원 간담회에서 “선친이 (타계하기 전인) 지난해 12월 이메일을 보내 앞으로 대한항공은 제가, 나머지 계열사는 대표이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그룹경영을 자신에게 맡겼다는 얘기였다. 조 회장은 조 전 부사장의 경영복귀에 대해서도 “누나와 나, 모두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자 조 전 부사장은 “당시 선친은 병세가 악화돼 이메일을 보낼 수 없었다”며 자신의 경영 복귀를 막는 독단적인 행태라며 반박했다.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던 조 회장은 지난주부터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조 회장은 지난 6일 대한항공 이사회를 열어 ‘7성급 호텔’ 건립 계획이 무산된 바 있는 종로구 송현동 부지(토지 3만6642㎡, 건물 605㎡)를 매각하고, 비주력사업인 왕산마리나 운영사 왕산레저개발의 지분 또한 연내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튿날인 7일에는 한진칼(한진그룹 지주사)의 이사회를 열어 칼호텔네트워크 소유의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부지를 처분하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수익을 내지 못하는 유휴자산과 비주력 사업을 매각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은 조 전 부사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 전 부사장이 과거 칼호텔네트워크·왕산레저·한진관광 등의 대표를 맡으며 그룹 내 호텔·레저사업을 지휘해 왔다는 점에서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조 전 부사장과의 선을 명확하게 긋고 그룹으로의 복귀를 차단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선이다.

이에 맞서 조 전 부사장 측은 주총을 통해 전문경영인을 별도로 세우겠다며 벼르고 있다.

 

한진가(家) 가족분쟁의 당사자들. (왼쪽부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모친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 누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진=연합뉴스)
 

표 대결 격차 1.4% 불과

이처럼 한진가의 가족 분쟁은 하루아침에 발생한 게 아니다. 그룹 경영을 둘러싼 내부갈등이 계속돼오다 마침내 서로 간에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점에서, 다음달 25일로 예정된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경영권의 향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4.11%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누구 편을 들지 주목된다.

조 회장 측이 확보한 한진칼 지분은 33.4%다. 어머니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 등 특수관계인과 우호 세력 지분(델타항공·카카오)을 포함한 지분율이다.

이에 맞서는 조 전 부사장은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과 함께 한진칼 지분 32.0%를 확보하고 있다.

표 대결을 예고한 양측의 지분율 격차가 불과 1.4%포인트에 불과한 상황을 고려하면, 결국 국민연금과 소액주주가 이들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국민연금은 공적기능을 수행하는 정부기관이라는 점에서, 국민연금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소액주주의 표심이 정해질 공산이 크다.

 

조원태 회장은 부친이 한진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대한항공의 경영을 자신에게 맡겼다고 발표해 누나와의 분쟁이 격화됐다. 한진그룹의 심장인 서울 중구 한진빌딩.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 주주행동 힘들듯

현재로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도 쉽지 않다. 국민연금은 작년 한진칼 주총 때 당시 조양호 회장의 사내 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던지며 사실상 KCGI와 손을 잡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조 회장 측이 주주이익 향상과 경영투명화를 기치로 내건 만큼 국민연금이 반대할 명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진칼 이사회는 최근 기존 대표이사가 겸직하던 이사회 의장을 이사회에서 선출하도록 정관을 변경했는데, 이 안이 주총을 통과하면 조 회장은 이사회 의장 자리를 내려놓게 된다.

또 대한항공 이사회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을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주주가치와 주주권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회사의 주요 경영사항을 사전 검토하는 거버넌스위원회를 새로 설치하는 안을 의결했다.

한진그룹 측은 “이사회 의장을 분리선출하면, 경영을 감시하는 이사회 역할이 강화돼 경영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조 회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감염 위험에 처한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교민을 후송하는 전세기에 탑승하는 등 나름의 행보를 보였고, ‘땅콩 회항’, ‘물컵 갑질’로 악화된 여론을 돌리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도 주주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주주제안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5일 스튜어드십코드(주주권행사지침) 전반에 대한 검검회의를 열었지만 한진그룹 사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상법상 주주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각 회사 주주총회일 6주 전까지 이사회에 통보해야 하는데 한진칼 주총 시일을 감안하면 주주제안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판단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관계자는 11일 CNB에 “한진칼 주총과 관련된 논의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현아 전 부회장 측의) 주주제안서가 나온 뒤 검토할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작년 12월 국민연금관리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경영인 카드’ 먹힐까

이처럼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행동에 나서기는 힘든 분위기지만, 주총 당일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특히 올해 주총부터 ‘국민연금기금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이 적용됨에 따라 의결권 행사는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지난해 반대표를 행사한 안건은 전체의 16.48%를 차지했는데, 이는 2년 전에 비해 4.63%포인트 오른 수치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대 안건이 이사 및 감사의 보상, 정관 변경, 주식매수선택권 등 오너일가의 경영권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의결권 행사의 범위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세현 인하대 겸임교수(경영학)는 CNB에 “가장 민감한 사안은 이사·감사 선임에 관한 건인데. 통계를 보면 이에 관한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 비율은 전체 반대 안건의 15% 정도에 불과하다”며 “그만큼 인사 문제는 국민연금에게도 부담이 되는 사안이며, 더구나 조원태 회장에게 특별한 결격사유가 발생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 측이 조 회장 측을 대신할 전문경영인(대표이사)을 내세우더라도 주총에서 추인받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얘기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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