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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노태우와 그늘진 현대사…SK家 이혼소송 내막

최태원-노소영, 1조원대 재판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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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9.12.10 10:49:30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최근 최 회장을 상대로 1조원이 넘는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노 관장이 역대급 소를 제기한 배경에는 SK가(家)와 노태우 전 대통령(노 관장의 부친) 간의 얽히고설킨 인연이 있는 만큼, 이번 소송을 통해 현대사의 뼈아픈 굴곡이 드러날지 주목된다. (CNB=도기천 기자)

 

1조원대 이혼소송을 벌이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연합뉴스)

 

노태우-SK家 ‘끈끈한 인연’이
1조원대 이혼소송의 핵심근거
그늘진 현대사 다시 ‘수면 위’
‘사라진 진실’ 재판서 드러날까


법조계에 따르면 노 관장은 이혼의 조건으로 최 회장이 3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고 보유한 회사 주식 일부를 분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 회장의 자산은 4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일부 부동산과 동산을 제외한 대부분이 SK(주) 지분 18.44% 등 유가증권 형태다. 노 관장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 지분 중 42.29%를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약 1조4천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노 관장의 SK(주) 지분은 0.01%에 불과하지만 요구대로 분할이 이뤄진다면 7.8%(최 회장 보유지분의 42.29%)의 지분을 갖게 돼 단숨에 2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SK(주)가 SK그룹을 지배하는 지주사인 만큼 그룹 전체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노 관장이 애초부터 재산분할을 요구한 건 아니다. 앞서 최 회장은 2017년 7월 노 관장을 상대로 이혼조정(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 법원의 조정에 따라 협의이혼하는 절차)을 신청했지만 노 관장은 “가정을 지키겠다”며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마음을 바꿔 이혼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조건으로 재산분할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의 이혼소송은 이제 재산 분할을 둘러싼 공방으로 초점이 옮겨지게 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재벌가(家)의 흔한 이혼소송으로 보인다. 최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 간의 조 단위 이혼소송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터라 그리 새롭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소송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사실 당사자들을 제외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SK그룹의 전신(前身)인 선경그룹은 노 관장의 부친인 노 전 대통령 집권 시절 크게 성장했는데, 이 점이 노 관장이 재산분할을 요구하게 된 근거가 됐기 때문이다. 노 관장 측은 최 회장의 SK 지분이 결혼 이후 노 전 대통령의 도움 덕에 형성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최근 판례를 보면 이혼할 때 분할 대상이 되는 재산은 부부가 결혼한 이후 함께 일군 공동 재산이다. 한쪽에서 상속·증여받은 재산은 통상적으로 분할 대상에서 빠진다. 따라서 노 관장은 혼인 이후 형성된 재산의 기여도를 부친인 노 전 대통령에게서 찾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의 집권 시기는 여전히 엄혹한 시절이었다. 한국이동통신이 SK그룹에게 넘어가는 과정에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1996년 8월  12·12 군사반란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선 전두환, 노태우(왼쪽)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신군부 역할이 재판의 핵심

그렇다면 과거 SK와 노 전 대통령 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야기는 삼십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미국 시카고대 유학시절에 만나 애정을 키우던 중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1988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연애 당시 두 사람은 시카고대에서 함께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의 형성 과정은 상당히 드라마틱했다. 대통령 간선제로 장기집권을 노리고 있던 전두환 정권이 1987년 ‘6월 항쟁’의 벽에 부딪히면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간선제 헌법 개정이 이뤄진지 15년만의 개헌이었다. 당시 집권여당이던 민주정의당(민정당) 총재였던 노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런 가운데 선경그룹(SK그룹의 전신)은 1991년 4월 선경텔레콤을 설립했으며, 이 직후 정부는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선경그룹은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 1997년 3월 한국이동통신은 SK텔레콤으로, 그 해 10월 유공은 SK(주)로 각각 사명을 변경했다. 이때를 전후해 선경그룹의 대부분 계열사들은 ‘선경’을 떼내고 ‘SK’로 로고를 바꿨다. SK해운, SK에너지판매, SK가스, SK옥시케미칼, SK생명 등이 신(新) CI선포식을 가졌다.

노소영 관장 가계도.

세간에서는 이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는 ‘6월 항쟁’ 이후였지만 정권 분위기는 여전히 엄혹했다. 양심수 석방과 5공 청문회 등 일련의 민주화 조치가 이뤄지긴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전두환 등과 함께 12,12쿠데타를 주도한 하나회(육군사관학교 11기생 주도의 비밀결사조직) 출신이라는 점에서 군부의 입김은 여전히 강했다.

선경이 통신사를 설립해 공기업인 한국이통을 인수한 과정은 정권의 도움 없인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이 결혼하기 전에는 선경그룹의 주력 사업은 섬유·화학·건설 뿐이었다.

이후 SK텔레콤은 SK가 국내 5대 재벌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국내 1위 통신사로 자리매김 했다. 최 회장은 부친 최종현 회장이 1998년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총수 지위를 물려받았다. 당시 SK가(家) 2세들은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를 위해 모든 상속지분을 최 회장에게 몰아줬다.

 

지난 2003년 9월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과 함깨 승용차를 타고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 시절 진실 드러날까

노 관장은 SK가 이런 배경 아래 성장했다는 점을 이번 재판의 핵심 화두로 삼고 있다.

특히 그는 최 회장의 SK 지분이 선경텔레콤(1992년 대한텔레콤으로 사명 변경) 주식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법정에서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선경텔레콤은 대한텔레콤을 거쳐 1998년 SK C&C(에스케이씨앤씨)로 사명을 바꿨다. 최 회장이 대주주였던 SK C&C는 2015년 SK와 합병했고, 현재 최 회장의 SK 지분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번 재판의 관건은 최 회장의 재산과 지분 형성에 장인이자 노 관장의 부친인 노 전 대통령 측의 도움이 얼마나 있었느냐다.

재산 분할은 결혼 파탄의 잘못이 누구에게 있느냐 와는 별개로 ‘재산 형성 기여도’를 주로 고려하므로 재판 과정에서 한국이통 인수 등 SK텔레콤의 성장과 관련된 숨은 비화가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노소영 관장은 SK그룹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는 과정에 부친의 기여가 있었다는 논리로 지분분할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이동통신은 오늘날 SK텔레콤으로 발전했다. SK텔레콤 사옥.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최 회장 측은 자신의 재산이 대부분 선대 회장으로부터 받은 상속 재산으로 노 관장이 전혀 기여한 바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적극 방어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SK는 김영삼 정부 때 한국이통을 인수해 지금의 SK텔레콤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노 관장 입장에서는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 간의 이동통신 사업을 둘러싼 연결고리를 증명해야 하는 등 쉽지 않은 재판이 될 수도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CNB에 “노 관장이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수행하면서 그룹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지만, 노 관장이 결혼 초기 가져온 소위 ‘지참금’ 덕에 회사가 성장했다면 일정 정도 재산 분할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워낙 오랜 세월이 흐른 데다 당시 민영화를 주도한 정부 주요 인사들이 고령이거나 이미 세상을 등진 상태라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재벌사>의 저자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는 CNB에 “노 전 대통령과 최종현 선대 회장은 두 사람(최태원·노소영)이 결혼하기 전부터 끈끈한 관계였다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이 이동통신 민영화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노 관장이 이 과정을 나름대로 기록해 뒀을 수도 있다”며 “이번 재판의 이면에는 이처럼 정경유착의 어두운 현대사가 자리하고 있는 만큼 단순한 이혼재판 차원을 넘어, 다시는 그릇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시의 진실이 밝혀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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