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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공개] ‘박정희’와 ‘소녀상’…마포에서 길잃은 두개의 동상

두 조형물 현재 모습 단독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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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8.03.08 08:55:45

▲지난 6일 CNB가 단독 촬영한 ‘박정희 동상’의 모습. 경기도의 한 조형물 제조 공장에 방치돼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과 일제강점기 위안부 여성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평화의 소녀상’이 일부 시민들의 반발에 밀려 서울 마포구 인근의 공장과 차고지에 각각 방치된 사실을 CNB가 단독 취재했다.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듯한 이 두 개의 동상은 지난 4개월간 마포구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CNB=도기천 기자)

일본군장교 박정희 vs 위안부소녀상
4개월간 두 동상 놓고 주민들 갈등  
결국 공장과 차고지에 각각 방치돼

‘박정희 동상’과 ‘소녀상’은 묘하게 대비된다. 박정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중국에서 일본군(관동군) 장교로 참전한 인물이다. 소녀상은 당시 일본 군대에 강제로 끌려간 어린 여성들의 넋을 기리는 조형물이다. 

상반된 두 개의 동상이 각각 마포에 오게 된 사연은 기구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지난해 11월 2일부터다. 그날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하 재단)은 서울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 앞 마당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설치한다고 언론에 알렸다. 박 전 대통령의 탄생 100년이 되는 날인 11월 13일에 맞춰 4.2m 높이의 청동동상을 세운다는 것. 

하지만 동상을 건립하려는 장소(도서관)는 서울시 소유의 공공용지라서 시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했다. 2010년 제정된 ‘서울특별시 동상·기념비·조형물의 건립 및 관리기준 등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시 소유의 공공용지에 동상·기념비·조형물을 건립하고자 하는 경우, 시에 사업계획서(동상건립계획)와 사후관리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재단은 시가 불허할 것을 우려해 신청서를 내지 않은 채 동상 건립을 강행하려했다. 조례에 따르면, 동상 건립 대상은 ‘역사적 자료나 고증 등을 통해 객관적인 평가가 정립된 인물’이어야 하는데 박 전 대통령은 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국정교과서는 박 전 대통령이 권력을 쟁취한 1961년 5월 16일 상황을 ‘5.16 군사정변’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 시절의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재단이 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동상을 강행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지역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일부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기념도서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 당원 집중행사 등을 열며 동상 진입에 대비했다. 이 곳을 선거구로 두고 있는 민주당 손혜원 의원, 정청래 전 의원도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밝혔다. 동상 기증식날(작년 11월13일) 동상 반대 측은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큰 충돌을 빚었고, 결국 동상은 반입되지 못했다. 

▲3.1절 전날 밤 홍익대 앞에 모습을 드러낸 소녀상(오늘쪽). 홍익대 재단 측의 반발로 철수했다. 현재 소녀상(왼쪽)은 서강대교 아래의 한 차고지에 임시보관 돼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박정희 동상’에 자극받은 ‘소녀상’ 

이런 과정은 상대적으로 소녀상 건립의 동력이 됐다. 소녀상 추진은 박정희 동상 파문이 있기 전인 작년 3월 이봉수 마포구의원(서강·합정동)이 ‘소녀상 설립 결의안’을 내면서 시작됐다. 

이후 마포주민들은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대표 차경숙)’를 결성했고, 마포 관내 11개 중고교의 학생들이 동참해 거리서명, 기금마련 콘서트, 일일찻집 등을 전개했다.  

이런 차에 박정희 동상 파문이 일자 소녀상 위치를 박정희기념·도서관 인근으로 정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 곁에 ‘소녀상’을 둠으로써 역사 왜곡을 막자는 취지였다. 

유력하게 거론된 곳이 마포구 상암동에 복원된 ‘옛 일본군 장교관사’ 앞이었다. 상암동은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침략전쟁을 수행하던 일본군 병력이 주둔했던 곳이다. 이곳에 대규모 일본군 장교관사 단지가 존재했으며, 10여년전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가 상암지구 택지개발을 진행하면서 일부를 복원했다. 장교관사는 박정희기념·도서관과 불과 5백미터 남짓한 거리다.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 ‘이곳에 소녀상이 세워지면 장교관사 또한 영원히 보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결국 백지화 됐다.   

▲홍익대 정문 앞의 7일 오후 모습. 학교 측이 소녀상 진입에 대비해 대형화분과 경비업체 차량 등으로 공간을 봉쇄한 상태다. 학교 입간판마저 대형화분에 가려져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다음 후보지가 홍대 ‘걷고 싶은 거리’였다.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방문코스인데다 10~20대 젊은층이 주를 이루는 곳이라 ‘소녀상’이 청소년교육과 역사문화관광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합지로 추천됐다. 하지만 인근 상인들이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들 수 있다’고 반발하면서 무산됐다. 

결국 최종후보지로 낙점된 곳이 국유지인 홍익대 정문 앞 공원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홍익대 재단 측이 “일본과의 학술교류에 방해가 된다”며 반발했다. 학교 측은 소녀상 진입에 대비해 대형화분과 승용차 등으로 공원을 봉쇄한 상태다. 지난 3.1절을 기해 소녀상 추진위 회원들이 반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학교 측과의 충돌 끝에 발길을 돌려야했다.  

▲경기도의 한 조형물 제조 공장에 방치돼 있는 ‘박정희 동상’. (사진=도기천 기자)


꽁꽁 묶인 소녀상…80년전 그 모습 

현재 박정희 동상은 상암동에서 6km가량 떨어진 경기도의 한 조형물 생산공장에 보관돼 있다. 

CNB가 지난 6일 단독 촬영한 박정희 동상의 모습은 오른손을 흔드는 듯한 자세에 왼손에는 벼 이삭을 한 묶음 들고 있다. 옷차림은 1970년대 유행했던 새마을복(또는 재건복)이다. 아마 굶주린 시절에 새마을운동으로 근대화가 이뤄졌음을 암시하는 듯 했다. 

동상 주변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폐자재와 녹슨 고철들이 둘러싸고 있다. 화려한 동상과 초라한 주변공간은 그가 살아온 영욕(榮辱)의 세월처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서강대교 아래의 한 차고지에 임시보관 돼 있는 소녀상. (사진=도기천 기자)


CNB가 어렵게 찾아낸 소녀상은 서강대교(마포구 상수동) 아래의 한 차고지에 하얀 비닐을 뒤집어 쓴 채 서 있었다. 마포구청이 운영하고 있는 제설차량 대기소다. 상암동과 홍대를 거쳐 이곳에 첫발을 디뎠지만 온 몸이 꽁꽁 묶여 있다. 소녀상을 최초 추진했던 이봉수 마포구의원이 이곳에 임시로 옮겨뒀지만 차량 기사들의 원성이 크단다. 

홍익대 총학생회는 지난 1~3일 전체 학생들을 상대로 소녀상 설치 위치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학생회에 따르면 1800여명이 참여해 60%이상이 학교 앞 공원을 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 측은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소녀상의 지금 형상은 꽁꽁 묶인 채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모를 운명이었던 80여년전 그녀들의 모습을 빼닮았다. 

취재 내내 깊은 의문이 들었다. 이 두 개의 동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이 둘은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있는가.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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