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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 최태원·정의선·조양호…재계 총수들이 만든 ‘나비효과’

통큰 투자 선언, 美 매파 마음 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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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07.04 15:31:17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헤이 아담스 호텔에서 열린 방미 경제인단과의 간담회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허창수 GS회장, 최태원 SK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문 대통령,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이사,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방문한 재계 총수들이 미국의 통상 압박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이들이 현지에서 투자보따리를 풀었다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예고한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CNB가 주요 대기업들의 대미 행보를 통해 향후 무역협상의 향배를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52개 기업, 美 128억 달러 투자 
체면 선 트럼프, ‘강경모드’ 주춤 
재계, FTA재협상 우려 속 자신감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투자와 협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카드를 제시했고, 이로 인해 트럼프의 체면이 섰다는 점에서 미국의 태도가 누그러뜨려졌다고 봅니다. FTA재협상도 제대로 준비한다면 큰 문제될 건 없을 것 같습니다.”(4일 A대기업 관계자)

한미FTA가 발효 5년 만에 재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동행한 방미 경제인단에 거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미국 기업인들과 교류하며 현지 투자와 사업 기회를 타진하는 등 이번 정상회담에서 민간외교의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미국을 방문한 52개 기업이 향후 5년(2017~2021년) 간 미국시장에 투자하기로 한 규모는 128억 달러(14조6000억원)에 이른다. 순조롭게 투자가 이뤄질 경우 추가적으로 20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어느 정도 세워준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에서 주식 투자하기’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 중인 재미 금융투자자 임성준(46)씨는 CNB와의 통화에서 “현지 언론들이 한국기업의 투자소식을 크게 전하며 (한국에 대한 강경한) 분위기가 많이 호전됐다. 미국정부가 FTA재협상을 옵션으로 내걸었고 이로 인해 한국 완성차 업체와 철강업체들은 미국 보호무역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FTA재협상을) 하자는 구체적인 얘기가 없었던 것은 한국기업들이 연달아 투자계획을 발표한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한진이 건립한 윌셔그랜드센터의 개관식에서 美 캘리포니아주 주요 인사들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다. (사진=한진)


조양호 한진 회장, 美서부에 랜드마크 세워

우선 눈에 띈 기업은 한진그룹이다. 한진은 문 대통령의 방미 닷새전인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중심가에 73층 규모의 초특급빌딩인 윌셔그랜드센터 오픈식을 가졌다. 

LA뿐만 아니라 미국 서부에서 가장 높은 건물 기록을 다시 쓴 이 빌딩의 역사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통 큰 결단’이 있었다. 윌셔그랜드센터는 1952년 문을 연 스테틀러 호텔이 전신이다. 스

▲한진이 건립한 美 서부 최고층빌딩인 윌셔그랜드센터.

테틀러 호텔은 1983년부터 힐튼 호텔로 운영되다가 1989년 대한항공에 인수됐다. 이후 옴니 호텔이란 이름을 거치면서 1999년 윌셔그랜드 호텔로 이름을 바꿨다. 

이곳은 워낙 입지가 뛰어나 외국인들이 즐겨찾는 곳이지만 외관이 낡고 주변 건물보다 층수가 낮아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 어려웠다. 

조 회장은 전면 증축을 결심하고 ‘윌셔그랜드 프로젝트’를 내놨다. 2014년 2월 공사를 시작해 3년 4개월 동안 10억 달러(약 1조1385억원) 넘게 들여 완성했다. 최상층과 오피스 공간 사이에 900객실의 럭셔리 호텔을 배치하고, 저층부는 7층 규모의 상업공간과 컨벤션 시설, 최첨단 시설을 갖춘 3만7천㎡ 규모의 오피스로 꾸몄다.

공사기간 동안 1만1000명의 일자리가 생겼으며, 개관 이후 1700명의 현지인에게 새 일자리가 제공됐다. 

여기에다 한진그룹의 핵심계열사인 대한항공은 개관식 전날 미국 최대 항공사 중 하나인 델타와 손잡고 조인트벤처(공동영업) 협정을 확정했다. 또 한진은 미국으로부터 5년간 보잉항공기 50대(102억 달러 규모)를 추가로 들여올 계획이며, LA화물터미널 개보수에도 700만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최태원 SK 회장(오른쪽)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헤이 아담스 호텔에서 열린 방미 경제인단 간담회에서 구본준 LG 부회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 회장, 에너지·반도체 확대

SK그룹은 에너지·자원개발 분야에서 향후 5년 간 1조8000억원을 미국에 투자할 계획이다. 방미 경제인단 일원으로 한미정상회담에 동행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제너럴일렉트릭(GE), 콘티넨탈리소스와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SK는 GE와 함께 미국 내 셰일가스를 개발하고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액화석유가스(LPG)를 판매할 수 있는 수요처를 확보하기 위한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 콘티넨탈리소스와 미국 셰일가스전 공동개발을 확대하고 셰일을 활용한 사업 기회를 탐색하기로 했다. SK는 사업이 순조로울 경우, 추가로 3조~5조원을 더 쏟아 부을 생각이다. 

▲최태원 SK 회장(가운데)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워싱턴 세인트 레지스 호텔에서 GE 존 라이스(왼쪽) 부회장, 콘티넨탈 리소스의 헤럴드 햄(오른쪽) 회장과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기로 협의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SK)


SK는 최근 에너지, ICT,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 3대 주력사업으로 정해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16개 주력 계열사의 올해 투자 규모는 총 17조원에 이르는데, 이는 지난해 투자규모인 14조 원보다 21%나 늘어난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따라서 미국과의 무역 규모도 더 확대된다. 실례로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의 사모펀드, 일본 정부계 펀드 등과 손잡고 낸드플래시 부문 세계 2위의 기술력을 갖고 있는 일본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5618억원)에 비해 4배 이상 늘어난 2조4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자동차, 사물인터넷(IOT) 등 4차산업혁명에 힘입어 1000억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SK로서는 미국 기업들과의 투자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SK가 미국과 경제교류 뿐 아니라 오랜 세월 문화교류를 해온 점은 미국 기업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SK그룹은 고 최종현 선대회장 시절인 1974년부터 지금까지 43년 간 장학 사업을 통해 미국에서 546명의 한국인 박사를 배출했다. 이처럼 한미교류에 공헌했다는 점에서 고 최종현 선대 회장에 이어 최태원 회장이 美비영리단체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가 주는 ‘밴 플리트’ 상을 오는 18일 수상한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왼쪽)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헤이 아담스 호텔에서 열린 방미 경제인단 간담회에서 아밋 라로야 한국쓰리엠 사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美자동차시장 진두지휘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대신 정의선 부회장이 이번 방미에 동행해 신선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정 부회장은 최근 몇 년간 국제 모터쇼, 소비자가전쇼(CES), 다보스포럼 등에 참석하는 등 해외 무대에서 빠르게 얼굴을 알리고 있지만, 아버지(정몽구)를 대신해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동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는 향후 5년간 총 31억 달러(약 3조5000억원)를 미국에 투자할 계획이다. 친환경·자율주행차 등 신차 개발에 집중 투자해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게 목표다. 당장 눈앞의 과제로는 미국 제2공장 증설, 소형 SUV 코나 진출 등을 앞두고 있다. 정 부회장은 정상회담 1주일 전 미국에 도착해 현지 관계자들과 투자 계획을 면밀하게 점검해왔다. 

현대차는 이번 방미에서 추가 투자계획 보다는 미국 기업과 현지 언론을 상대로 그간의 성과를 홍보하는데 초점을 뒀다. 

정상회담 하루 전인 28일 워싱턴 사무소에서 ‘현대 호프 온 휠스’ 설명회를 개최, 지난 30년간의 미국 투자에 대해 알렸다. 1986년 미국 진출 이후 30여 년간 현대차그룹계열사와 부품업체들이 103억달러(누계)를 미국에 투자했으며, 3만여명의 직접고용과 8만5000명의 간접고용(미국 딜러의 고용)을 달성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집중적으로 문제 삼는 품목인 자동차 무역에 대한 우회적인 해명 성격이 강하다. 

미국 정부는 한미 간 자동차 수출입 관세가 한국이 더 높다는 점에서 “한미 무역 불균형의 가장 큰 단일 요인은 자동차 무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은 전년 대비 9.5% 감소한 96만여대였으나, 미국산 차량의 국내 수입은 22.4%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인 6만여대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미국의 무역장벽 철폐 요구가 계속되고 있어, 현대차로서는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두산그룹은 미국 웰스 파고 은행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가운데)과 웰스 파고 이큅먼트 파이낸스의 윌리엄 메이어 대표(왼쪽에서 네번째)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협약식을 갖고 있다. (사진=두산)


박정원 두산 회장, 발전사업 속도

두산그룹은 미국 현지에서 발전사업 관련 협약 두 건을 잇달아 체결해 눈길을 끌었다. 두산중공업은 미국법인인 DHIA가 미국 가스터빈 서비스 업체 ACT를 인수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ACT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가스터빈 기술을 보유한 업체로 알려졌다.

또 두산의 연료전지 사업 미국법인인 두산퓨얼셀아메리카는 미국 웰스파고 은행과 사업 확대를 위한 전략적 제휴 협약식을 가졌다. 웰스파고 은행은 ㈜두산으로부터 연료전지를 사들여 전력판매계약(PPA) 사업자에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해왔다. 두산은 지난 5월 전라북도 익산시에 63MW 규모의 국내 최대 연료전지 공장을 준공하는 등 에너지·발전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윌라드 호텔에서 윤부근 삼성전자 CE부문 대표이사(앞줄 왼쪽)와 헨리 맥마스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뉴베리 카운티 삼성전자 가전 공장 설립 투자 의향서(LOI)에 서명한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LG·CJ, 대규모 현지공장 설립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에 대규모 생산공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재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을 대신해 윤부근 가전담당 사장이 이번 방미길에 나섰다. 윤 사장은 지난 28일(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헨리 맥마스터 사우스캘로라이나 주지사와 세탁기공장 설립을 위한 투자의향서에 서명했다. 

삼성전자는 이곳에 3억8000만달러(약 4300억원)를 투자해 950개의 일자리를 만들 예정이다. 당초 예상됐던 투자액 3억달러, 고용 규모 약 500명보다 많다.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반도체공장에도 15억 달러를 추가 투자할 예정이다. 

▲LG전자 미국 테네시주 세탁기 생산공장 조감도. (제공=LG전자)


LG전자는 미국 테네시주에 2019년까지 2억5000만 달러(약 2860억원)를 투자해 7만7000m²규모의
세탁기 공장을 설립할 계획인데, 이번 정상회담으로 더 탄력이 붙게 됐다. 현지 시의회가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오는 6일(현지시간) 승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생산라인 설계를 거쳐 올해 안에 공장 착공을 위한 첫 삽을 뜰 계획이다. 

이밖에 CJ그룹은 CJ제일제당 생산공장 신규증설과 CJ대한통운과 CJ CGV의 현지 기업 인수합병(M&A) 등에 총 10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한다. 또 한식브랜드 비비고와 연계해 우리 한식에 대한 홍보도 확대할 계획이다.  

LS그룹은 미국 남부에 4000만 달러 규모의 자동차 전장관련 부품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GS그룹은 GS건설이 실리콘밸리 주택단지 재건축사업에 1000만 달러를 투자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文정부 실리외교, 트럼프와 윈윈”

이처럼 주요 대기업들이 문 대통령의 방미에 때맞춰 미국 투자확대를 발표하면서 미 행정부 내의 ‘매파(대외 강경그룹)’가 명분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자리를 늘리고 제조업을 부활시키는 데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트럼프의 기대치를 우리 기업들이 어느 정도 채워줬기 때문이다. 

실례로 일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중국 마윈 알리바바 회장 등이 트럼프와 독대한 자리에서 미국에 대한 초대형 투자를 발표한 뒤, 이들 국가에 대한 미국의 외교정책이 달라졌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방미 경제인단에 참여한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CNB에 “우리기업들의 투자발표 이후 ‘한국과의 무역적자가 계속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던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부드러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며 “기업들이 실질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방미 경제인단 선발에서부터 구색맞추기가 아니라 미국과 실제 관계를 맺고 있던 기업들을 모았기 때문이며, 이는 곧 문재인 정부의 실리 외교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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