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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정치와 기업 ①] 재벌개혁·정치개혁, 둘 다 해야 변한다

시장경제 옥죄는 ‘청와대 권력’부터 해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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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04.25 10:01:48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왼쪽부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지난 23일 중앙선관위 주최 대선후보 TV토론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처음과 끝은 ‘정경유착’이었다. 청와대와 최순실, 재벌 간의 밀월은 K·미르스포츠재단을 통해 정점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대통령이 탄핵되고 수십여 명의 정·관·재계 인사들이 기소됐다. 

70년 정당사를 돌이켜보면 한국 정치는 대기업과의 각종 스캔들로 얼룩져 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도해온 일해재단이 전두환 정권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사실이 5공 청문회를 통해 드러났고, 1995년에는 전두환·노태우의 대선 비자금 사건에 휘말려 총수들이 줄줄이 법정에 섰다. 1997년 15대 대선 때는 23개 대기업이 166억원의 정치자금을 냈다가 적발됐으며, 2002년 대선 때는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터졌다. 

이 같은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가 오늘날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역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촛불민심은 재벌개혁을 적폐 청산의 1순위로 꼽고 있다. 

이에 CNB는 기성언론으로서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못했던 점을 깊이 반성하며 이 문제를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재벌의 주주권 침해와 오너 일가의 경영 장악 및 승계 문제는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되, 지나친 규제·기업 옥죄기는 경계하며 관련 개혁법안들과 대선 공약을 꼼꼼히 취재해 <연중기획>으로 연재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운 시장경제질서를 만드는데 언론이 일조하고자 함이다. <편집자주>  (CNB=도기천 기자)

대선주자들 ‘재벌개혁’ 본질 외면 
정경유착 놔두고 재벌규제만 주장
청와대 외압 막는 게 개혁 첫걸음

“홍준표를 빼고 누가 되던 기업에게 이로울 게 없을 것 같다”(A대기업 홍보임원)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는 ‘재벌개혁’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은 한목소리로 현재의 재벌을 ‘적폐’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메스를 대겠다고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모두 여기에 큰 이견이 없다.  

재계 입장에서는 이런 아젠다가 억울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10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가결하면서 “피청구인(박근혜)의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였을 뿐 아니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상 정권을 가해자, 기업들을 피해자로 본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개혁은 실종되고, 재벌만 적폐가 되어 심판대에 올랐기에 심기가 편할 리 없다. 

따라서 재계는 재벌개혁이 기왕에 피할 수 없는 칼이라면, 자유로운 시장경제질서를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길 바라고 있다. 시장경제가 외풍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내내 재벌을 통제해 왔다.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검찰 차량에 타고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4년 관치경제 끝판왕 

사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기간 중에 주도했던 각종 경제정책은 재벌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창조경제혁신센터다. 정부는 대기업들에게 시·도별로 한 곳씩을 떠맡기다시피 했다. 대구·경북은 삼성이, 광주는 현대차그룹이, LG는 충북, KT는 경기, 두산은 경남, 롯데는 부산, 효성은 전북, SK는 대전, 한화는 충남, GS는 전남, CJ는 서울, 한진은 인천, 현대중공업은 울산, 네이버는 강원, 다음카카오는 제주에 혁신센터를 차렸다. 

대기업이 지역의 중소벤처들과 협력하라는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사실상 정부가 주도하는 관치(官治) 경영의 결정판이었다는 비판이 많다. 창조경제센터를 통해 중소기업이 받는 혜택은 미미했고 재벌들은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총수가 구속 중이거나 재판을 받고 있는 기업들은 더 그랬다. 지자체까지 보여주기식 경쟁에 가세하며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일었다. 

금융정책도 사실상 청와대가 주도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주축으로 경제부총리,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등이 참석하는 비공개회의인 ‘서별관회의’에서는 부실기업인 대우조선해양에 수조원 규모의 지원이 결정되기도 했다.

또 금융당국은 은행들을 압박해 각종 저리 대출상품을 쏟아냈고 이로 인해 가계부채가 사상최대 규모로 늘었다. ‘국민재테크 통장’이라며 출시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 받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는 청와대가 CJ, 부영그룹, 포스코, KT, 한진그룹 등 여러 대기업들에게 외압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사드 배치 결정, 개성공단 폐쇄 등도 기업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반(反)시장 정책이었다. 

기업들은 이런 점에서 재벌개혁의 시작은 관치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서부터 비롯돼야한다고 주장한다.  

CNB가 여러 대기업 관계자들을 두루 접촉한 결과, 하나같이 “정부가 시장에 쉽게 개입할 수 있는 지금의 시스템 하에서는 기업이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촛불민심은 우리 사회의 오랜 적폐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라는 것이다. 한 시민이 아이를 안은 채 대선 후보의 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작은 정부’ 돼야 시장경제 활력

하지만 대선후보들의 공약은 이들의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경유착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려는 정책은 찾기 힘들며, 하나같이 재벌을 규제하려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 유승민 후보, 심상정 후보는 미묘한 온도차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현재의 재벌을 적폐·구태세력으로 규정해 개혁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문 후보는 “재벌이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전면적인 지배구조 혁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계열공익법인·자사주·우회출자 등을 통한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차단하고, 다중대표소송제·집중투표제 등을 도입해 오너 일가를 견제하겠다는 게 주요 정책이다. 총수 일가의 금융계열사(보험·증권사 등) 지배를 금지하는 금산분리 강화도 천명했다.  

안 후보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벌 총수일가의 지배력 남용을 막기 위해 지주회사 요건과 규제를 강화할 생각이다. 특히 통합금융감독시스템을 도입해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 △계열사 간 출자를 적격자본에서 공제하는 그룹 자본적정성 평가시스템 시행 △그룹 전체의 위험관리 및 지배구조에 대한 감독시스템 도입 등을 시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유 후보는 △일감몰아주기 원천 차단 △총수일가 개인회사 설립 금지 △집단소송제·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심 후보는 한발짝 더 나간다. 구로공단 미싱사 출신임을 선거포스터에 내건 그녀는 재벌 3세 경영권 승계를 금지하고, 독점 구조를 만들 경우 지분을 강제 매각토록 하는 계열분리·기업분할명령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대기업이 해마다 설정한 경영목표치를 넘어선 이익을 얻었을 경우, 사실상 사회에 환원토록 하는 초과이익공유제도 내놨다.  

반면 홍 후보는 이렇다 할 재벌개혁 정책이 없다. 대기업 강성노조 문제를 해결해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고, 기업 활동을 막는 각종 규제를 풀겠다고 공약했다. 

이처럼 재벌 정책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CNB에 “빠른 의사 결정과 과감한 투자 등 재벌의 장점이 분명히 있음에도,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재벌을) 범죄 집단으로만 보는듯하다”며 “재벌 정책이 규제일변으로만 가고 있어 기업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요 후보들이 ‘대선 효과’에만 매달리면서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재벌사>의 저자 이한구 교수는 CNB에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은 정경유착인데 이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재벌 내부 얘기만 하고 있다”며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청와대부터 제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작은 정부가 돼야 시장자율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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