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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천경자 미인도는 슬픈 현대사가 만든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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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2017.01.05 09:16:04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유족들이 미인도가 자신들 집에서 나왔다고 증언했다”(2016년12월 언론보도)

김재규를 파렴치범, 부정축재(不正蓄財)자로 만들기 위해 전두환 신군부가 미인도라는 ‘유령’을 탄생시켰다고 확신해온 기자는 해머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천경자 화백이 생전에 “자식 몰라보는 부모가 있느냐”며 시작된 미인도 논란은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김재규 측이 천 화백으로부터 입수해 소장해왔다”고 밝히면서 김재규의 부정축재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김재규를 보는 시각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독재자(박정희)를 쓰러뜨림으로써 민주주의를 앞당겼다는 평가와 함께 권력욕에 눈이 멀어 자신의 주인을 살해한 파렴치범이라는 혹평이 공존하고 있다. 

1979년 12월 12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김재규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숙청한 뒤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하나회 장교들에게 있어 김재규는 그야말로 악의 원천이 돼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쿠데타가 정당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재규의 비위 사실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집안에서 고서화 1백여점 등 수백여점의 고가물품들이 나왔다는 것을 비롯해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의 내용을 신문 지상에 올렸다. 

이때 등장한 것이 천 화백의 미인도다. 미인도가 김재규의 집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김재규는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히게 되는 논리 구조다.

CNB는 지난 7개월 간의 취재를 통해 미인도가 정말 김재규의 집에서 나왔는지부터 규명하려 애썼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터라 대부분의 김재규 지인들은 이미 세상을 등졌고, 아직 생존해 있는 이들도 뚜렷이 증언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유족 측은 언론 접촉을 피했다. 

이런 가운데 여러 자료와 증언을 통해 그가 지나칠 정도로 청렴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됐다. 10.26사건 재판에서 검찰조차도 김재규의 비위사실을 입증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를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뇌물이나 청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김재규의 박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37년간 세상을 등지고 살아온 그의 유족들이 미인도 진위를 가리는 검찰 조사에서 “당시 우리집에 걸려있던 그림이 미인도가 맞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1979년 10.26사건 직후 재판 모습. (당시 영상 캡처)


‘불편한 진실’ 따로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다시 김재규 유족 측과 접촉을 시도했다. 검찰의 수사기록도 면밀히 살폈다. 

인터뷰는 예상대로 무산됐지만 유족 측 관계자를 통해 당시 김재규의 집에 미인도가 흘러들어간 경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검찰은 김재규의 부하 직원인 오모씨가 천 화백으로부터 미인도를 입수했고, 이를 자신의 부인을 통해 김재규의 처에게 전했다고 발표했다. ‘천경자→오씨→오씨의 처→김재규의 처→김재규’ 순으로 미인도가 전달됐다는 것. 

하지만 오씨와 오씨의 아내, 천 화백과 김재규 모두 세상을 등진 터라 사실 확인 자체가 불가능하다. 오씨와 천 화백은 둘 다 생전에 미인도를 주고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망자(亡者)의 말은 무시됐다. 

그런데 김재규의 부인 김모씨는 아직 생존해 있었다. 아흔을 내다보는 그녀는 유족 관계자를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오래전에 친구(오씨의 처)로부터 선물 받은 그림을 떠올려보니 지금의 미인도라는 것과 비슷하다. 그게 진품인지 가짜인지는 모른다”

김재규 유족 측에 따르면, 오씨의 처와 김씨는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 둘은 여대생이 드문 시절인 1948년에 나란히 숙명여대에 입학한 동기동창이었으며, 오씨의 처가 김재규 남동생의 중매를 섰을 정도로 가까웠다고 한다. ‘진품인지 가짜인지 모른다’는 그녀의 말은 친한 친구로부터 받은 것이라 굳이 진품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삼십년 우정’이 ‘부정청탁’으로 둔갑

조각난 퍼즐을 맞춰보면 김재규, 오씨, 천 화백과는 전혀 무관하게 절친(김씨와 오씨의 처) 사이에 별 뜻 없이 한 점의 그림이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런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는 김재규에 대한 평가가 이미 규정돼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최고 권력자였던 중앙정보부장의 집에 누가 감히 가짜를 선물할 수 있었겠나”라는 편견, 그가 부정축재를 저질러 왔다는 믿음 등이다. 

그래서 삼십년 지기 친구 사이에 대단치 않은 그림 한 점(당시 천 화백의 가짜 그림이 유행하고 있었음)이 오갔을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 것이다.

진실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검찰이 짜맞추기 식으로 미인도 수사를 진행했다 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검찰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미인도 사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천경자, 김재규 모두 각기 다른 영역에서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천 화백은 파격적인 채색, 과감한 주제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이 시도는 한국 화랑계를 자극해 새로운 미술세계를 여는 밑거름이 됐다. 

김재규는 유신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했던 인물이다. 그에 대한 재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천경자는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이상한 예술가로 매도당하고 있으며, 김재규는 사리사욕에 눈이 먼 부정축재자로 몰리고 있다.

이 둘의 진실이 맞물려 있는 것이 미인도다. 미인도 앞에는 넘기 힘든 벽이 있지만 그래서 반드시 무너뜨려야하는 벽이기도 하다. 

이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혁명을 꿈꿨던 두 사람을 복원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역사가 두 사람을 기억하는 한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CNB=도기천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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