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원하기
  •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 오탈자제보

[단독] 37년 만에 드러난 김재규의 ‘천경자 미인도 리스트’…그가 아꼈던 피아노는 없었다

전두환 신군부의 ‘김재규 증여재산목록’ 단독입수…온통 의문투성이

  •  

cnbnews 도기천기자⁄ 2016.12.22 11:41:45

▲CNB가 단독입수한 1980년 1월에 작성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증여재산목록’. 당시 계엄사령부가 작성해 재정경제부(재무부)로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건은 37년간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검찰이 미인도 진위 수사 과정에서 찾아냈다. 이 문건에는 무려 209개의 고가 물품이 표기돼 있다.

검찰이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인 근거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인도를 소장해왔다”고 밝혔지만 이에 대해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CNB가 단독입수한 당시 김 부장의 ‘증여재산목록’에는 미인도를 포함해 수백여점의 그림 등이 있었지만 이는 당시 재판과정에서 전혀 공개된 바 없기 때문이다. 재무부에서 문화공보부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미인도가 이관된 날짜도 앞뒤가 맞지 않다. 평범한 주택이었던 김 부장의 집에 어떻게 수많은 고가품들이 있었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CNB=도기천 기자)

당시 신군부 압수물품목록에 ‘미인도’ 등장 
검찰, 계엄사 자료 근거로 미인도 진품 결론
당시 재야인사들 “물품목록 자체가 조작된것”

검찰은 미인도 소장 이력과 전문기관의 과학 감정, 안목 감정 등을 종합한 결과 미인도는 진품으로 판단된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지난해 작고한 천경자 화백이 1991년 ‘미인도’가 위작(僞作)이라고 주장하며 시작된 진위 논란은 25년간 진실공방이 계속돼 왔다. 결국 지난 6월 천 화백의 유족들이 국립현대미술관 측을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사법당국에 고발했고, 검찰은 현대미술관으로부터 미인도를 제출받아 감정 조사를 벌여왔다.  

이날 검찰의 수사 발표로 오랜 세월 계속돼온 미인도 논란은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검찰이 진품의 핵심 근거로 제시한 ‘김재규 소장설’은 여러 의문을 낳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천 화백은 1976년 12월 대구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지인을 통해 당시 중앙정보부 대구분실장인 오모 씨를 소개받았다. 이듬해 오씨가 천 화백에게 그림을 구매하고 싶다고 부탁하자 천 화백은 미인도를 포함한 그림 2점을 건넸다. 이어 오씨의 처는 다시 김재규의 부인에게 미인도를 선물한 것으로 조사됐다. 

1979년 10월 김재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뒤 당시 전두환이 이끄는 계엄사령부(신군부)에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고 그즈음 미인도를 계엄사령부 산하 기부재산처리위원회(계기위)에 헌납했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검찰은 국가기록원과 육군본부 등에서 당시 김재규의 ‘증여재산목록’ 공문을 찾아 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검찰 주장은 1979년 12월 8일 신군부가 발표한 ‘김재규 비위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날 신군부는 “김재규가 공금 10억 횡령, 재직 당시 땅 2만평 매입, 5억원 비자금 조성, 수백평 호화주택 개축 등 비리를 저질렀으며, 집에서 자개장, 고려청자 등 고가 자기류와 고서화 1백여점이 발견됐다”고 언론에 알렸다. 

심지어 “주방 냉동실에 고기류가 즐비했고, 썩어서 버리면서도 한집에 근무하는 경비요원과 운전수에게는 먹이지 않았다” “유부녀를 간통 후 소실(후처)로 삼았다” 등 인신공격성 내용도 담았다. 

앞뒤 퍼즐을 맞춰보면, 김재규가 부정축재한 물품 중에 ‘미인도’가 있었고, 김재규는 ‘미인도’를 포함한 이 물품들을 국가에 헌납(증여) 했으며, 이때의 증여재산목록을 37년이 지나서 현재 검찰이 발견했다는 것이다.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는 1979년 12월 8일 ‘김재규 비위사실’을 발표했다. 최근 검찰은 당시 발표에 근거해 김재규가 미인도를 소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군부가 김재규를 파렴치범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비위사실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합수부 발표 내용을 보도한 당시 경향신문.


김재규의 집사 최종대 “집안에 값비싼 물건 없었다”

하지만 당시 김재규 구명 운동을 벌였던 학계·종교계 인사들은 하나같이 신군부의 주장에 의문을 품고 있다. 당시 발표가 부풀려졌거나 조작됐다는 것이다.   

재야 원로 함세웅 신부(민주주의국민행동 상임대표)는 지난 6월 CNB와의 단독인터뷰에서 “당시 재판기록 어디에도 압수물품(고서화 등)에 관한 기록이 없다. 신군부가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김재규를 파렴치범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꾸며진 얘기”라고 주장한 바 있다. (관련기사: [단독] 함세웅 신부 김재규 집에서 천경자 미인도가 나왔다? 새빨간 거짓말”)

함 신부는 이돈명·강신옥 등 당시 재야 1세대 인권변호사들과 함께 종교계에서 구명운동을 이끌었던 터라 재판의 모든 과정을 기록해둔 인물이다.

2012년 <의사 김재규>를 발간한 백승대 도서출판 매직하우스 대표도 “책을 펴내면서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그가 비리를 저지르거나 부정축재를 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던 강신옥 변호사 또한 “김재규는 한 치의 사심도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죽음을 밑거름으로 민주 회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고 밝혔다. 

신군부가 집권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비위혐의를 씌웠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증여재산목록’에 뚜렷이 기재돼 있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검찰은 이를 근거로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밝혔지만, 당시 목록 자체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CNB가 당시 김재규의 ‘증여재산목록’을 단독 입수해 분석해보니 의문은 더 커졌다. 1980년 1월에 작성된 이 문건에는 김재규가 쓴 증여각서와 물품목록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당시 김재규의 유족과 변호인 등에 따르면, 그는 계엄사 합수부에 연행된 뒤 혹독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으며, 이 과정에서 재산포기와 헌납을 강요당했다. 이때 신군부가 김재규로부터 압수한 물품목록이 이번 검찰조사에서 나온 ‘증여재산목록’이다. 계엄사가 남긴 이 문건은 37년간 알려지지 않았다가 이번에 검찰이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입수했다.  

이 문건에는 무려 209개의 물품이 등장한다. 다이아 반지와 로렉스 시계 등 귀금속류가 97점, 고려청자 등 자기류가 7점, 동양화·붓글씨 등 고서화가 33점, 화장대·교자상 등 가구류가 19점, 8~10폭 규모의 병풍이 16개, 조각·박제 등이 10여점에 이른다. 

그림의 경우 작가와 작품명이 기록돼 있다. 천 화백의 미인도는 ‘천경자 미인도’로 뚜렷이 표기돼 있었다. 미인도 외에는 전부 오래된 동양화이거나 동양풍의 골동품들이다. 목록 중에 현대화(서양화풍의 동양화)는 미인도가 유일하다. 

이 많은 물품들이 정말 김재규의 집에서 나온 걸까. 당시 김재규가 거주했던 주택의 규모와 그의 지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여러 의문이 든다.      

김재규의 보문동 자택에서 집사(執事) 역할을 해온 최종대씨는 2013년 발간된 <김재규 평전(시사인북)>에서 “(10.26 직후에) 헌병들이 와서 집 안을 발칵 뒤집을 적에 값비싼 물건이나 보석 같은 게 하나도 없어서 헌병대장이 ‘여기가 중앙정보부장 집 맞나’ 했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당시 중앙정보부 대구분실장이었던 오모 전 대령은 91년 4월 여성동아 인터뷰에서 “부장님(김재규)은 누구와도 독대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부장님 집에 신년하례차 간부 30여명이 함께 방문한 적은 두 번 있지만 개인적으로 찾아간 적은 없다. 그곳이 개인적으로 찾아가고 할 곳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 얘기는 김재규가 수백점의 고가품들을 부정축재 했다는 신군부의 주장과 배치된다. 당시 접대문화로 볼 때 직접 대면하지 않고 고가품을 전달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함세웅 신부 또한 “김재규의 성북구 보문동 집에 가봤는데 그냥 평범한 한옥 주택이다. 수백점의 그림 병풍 도자기 등이 진열될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재정경제부의 1988년 자료에 따르면, 1980년 7월29일 계기위(계엄사령부 산하 기부재산처리위원회)에서 재무부로 미인도를 이관한 것으로 표기(왼쪽)돼 있다. 하지만 문화공보부의 공문(오른쪽)에는 1980년 5월3일 문공부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미인도를 이관한 것으로 표기돼 있다. ‘계엄사령부→재무부→→문공부→현대미술관’ 순으로 미인도가 이관됐다는 검찰의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다.


미인도만 유일한 서양화…피아노는 왜 사라졌나

특히 김재규가 딸에게 선물했다는 ‘피아노’가 증여재산목록에 없는 점은 의문을 더한다. 

당시 김재규는 변호인을 통해 “피아노는 내가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에게 오랜 전에 사 준 것이니, 나의 모든 재산을 빼앗아도 좋지만, 그 피아노만은 제발 환수 조치에서 면하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물품 목록에는 피아노가 빠져있다. 화장대, 교자상, 전화대, 촛대, 심지어 만년필·볼펜(펜류 16개)까지 있지만 피아노는 없었다.

신군부는 김재규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려고 했었다. 김재규의 동생 김항규씨는 형이 사형당한 뒤에는 경북 봉화에 있는 현불사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했다. 현불사에 위령탑이 들어서자 전두환 정권은 ‘김재규 위령탑’으로 간주해 파괴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김재규가 아끼는 피아노를 남겨뒀을 리 만무해 보인다. 

‘계엄사령부→재무부→문공부→현대미술관’으로 미인도가 옮겨갔다는 검찰 조사도 앞뒤가 맞지 않다. 

검찰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1980년 2월 미인도를 재무부에 처리하라고 맡겼고 재무부는 영등포 대한통운 물류창고에 2개월간 보관하다가 문화공보부에 인수를 요청했다. 문공부는 다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미인도를 이관했다. 

그런데 CNB가 당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계엄사가 재무부에 이관한 날짜는 7월 29일, 문공부가 현대미술관에 미인도를 이관한 날짜는 5월 3일이었다. ‘계엄사령부→재무부→→문공부→현대미술관’이라는 순서가 맞지 않다. 

▲검찰은 중앙정보부 대구분실장인 오모 씨가 천경자 화백에게 그림을 구입해 김재규 측에 전했다고 밝혔지만, 앞서 오씨는 91년 4월 여성동아 인터뷰에서 전달 사실을 부인했다.


“천 화백에게 받은 그림은 미인도 아냐”

미인도의 입수 경위에 대해서도 여러 의혹이 남아있다. 

검찰은 중앙정보부 대구분실장인 오모 씨가 천 화백에게 그림을 구입해 김재규 측에 전했다고 밝혔지만, 오씨는 생전에 언론인터뷰에서 “천 화백에게서 그림 한 점을 받은 일은 있지만 천 화백이 돈을 받지 않아 다시 그림을 돌려줬다. 그 그림은 2호 정도 크기로 4호 크기인 미인도와는 다른 그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천 화백 또한 생전에 “오씨에게 그림 한 점을 준 적이 있는데, 현대미술관이 갖고 있는 미인도가 아니다. 크기가 작고 전혀 다른 그림”이라고 말했다.  

만약 물품목록이 부풀려졌거나 조작됐다면 한 가지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신군부가 김재규에게 부정축재 혐의를 씌우기 위해 비위사실을 꾸몄다면, 이 물품들은 10.26사태(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직후 구속 수감된 여러 인사들의 집에서 나온 물품들일 수 있다. 

여러 기록과 증언을 종합해보면, 신군부는 10.26사건과 12.12쿠데타(전두환 등이 1979년 12월 12일 군수뇌부를 제거하고 군부를 장악한 사건)를 거치며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김재규 일가 등 수십여명에 이르는 인사들의 재산을 일부 또는 전부 몰수했다. 이때 모은 물품들의 일부가 김재규 비위사실의 증거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다. 

▲배용원 형사제6부 부장검사가 지난 19일 ‘미인도’가 진품임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 액자에 담긴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이 보관해온 미인도다. 검찰은 미인도가 진품인 근거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인도를 소장해왔다”고 밝혔지만 이에 대해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인도는 왜곡된 역사 바로잡을 열쇠

이처럼 ‘미인도’는 격랑의 현대사 속에서 어디선가 등장했고 그 진실은 지금도 묻혀있다.  

천 화백은 생전에 “작품은 자기 새끼 같은 것이다. 자기 새끼를 못 알아보는 어미가 있느냐”는 말을 남긴 채 만리타국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천 화백의 유족 측은 ‘미인도가 가짜’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앞서 ‘미인도’를 감정한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연구소 또한 검찰의 진품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유족 측 배금자 변호사는 CNB에 “검찰이 밝힌 미인도 소장 과정과 감정 결과 모두 받아들일 수 없으며, 끝까지 진실을 규명 하겠다”고 강조했다. 

결국 미인도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작품 자체의 진위 여부를 떠나 굴곡의 역사를 바로잡는 고난한 작업일지 모른다. 

(CNB=도기천 기자)


▲ CNB뉴스, CNBNEWS,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