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 세 곳 중 한 곳이 부채 이자도 갚지 못할 정도로 재무구조가 열악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대기업 중견기업 할 것 없이 갈수록 재무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모처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내수경기가 거품이란 지적이 나온다. 발등에 불 떨어진 당국은 이들 ‘좀비 기업’에 금융혜택을 주지 못하도록 은행권 통제에 나섰고, 기업들은 새 먹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LG경제연구원이 21일 628개 비금융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부채상환능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도는 기업 비율은 2010년 24.7%에서 올해 1분기 34.9%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수치로, 이 비율이 1배 미만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내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값이 작을수록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이 나쁘다는 뜻이다.
1 미만이면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조차 댈 수 없다는 뜻이어서 사실상 존속가치가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런 좀비기업이 최근 5~6년간 급증하는 추세다. 각각의 통계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CNB가 최근 6개월 내 발표된 각종 지표들을 분석해보니 갈수록 재무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좀비기업 수가 2009년 2698개(12.8%)에서 지난해 말 3295개(15.2%)로 증가했다. 특히 대기업 중 좀비기업 비중은 2009년 9.3%에서 지난해 14.8%로 늘었다.
재벌닷컴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14회계연도 기준 매출액 1조원 이상 157개 상장사(금융회사 제외) 중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인 상장사는 모두 37개사로 전체의 23.6%에 달했다.
특히 이같은 통계는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이자 비용이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업이익이 그만큼 더 쪼그라들었음을 의미한다. 최근 4년 새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단계적으로 내려가 현재 사상최저인 1.5%다.
이에 따라 매출액 1조원이 넘는 기업들의 이자비용은 지난해 10조9534억원으로 전년의 11조4121억원보다 4.0% 감소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은 전년 58조2188억원에서 52조7752억원으로 9.4%나 줄었다.
특히 조선사와 정유사들은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며 극심한 업황부진의 단면을 드러냈다.
지난해 1조9233억원의 영업손실로 최악의 실적을 낸 현대중공업의 이자보상배율은 -22.4배로 전년 6.3배에서 급감했다. 이자보상배율은 현대미포조선이 -97.3배로 가장 낮았고 한진중공업도 -0.8배에 불과했다. 쌍용자동차(-68.5배)와 삼성전기(-31.5배)도 영업해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지난해 적자 전환한 에쓰오일(S-oil)은 -6.8배, 태광산업은 -6.4배를 각각 나타냈다. 적자를 지속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각각 -1.0배와 -0.1배로 집계됐다.
이자보상배율이 2년 연속 1 미만인 49개 기업 중 절반이 넘는 25곳(51%)이 30대 그룹 계열사였다.
현대중공업 계열이 3곳으로 가장 많았고 SK, LG, 한화, 한진, 동부그룹 계열사가 각 2곳씩이었다.
삼성, GS, CJ, LS, 대림, 현대, OCI, 금호아시아나, KCC, 동국제강 등도 1개 계열사가 포함됐다.
기업별로는 삼양그룹 계열사인 삼남석유화학의 지난해 이자보상배율이 전년보다 107.4 악화된 -250으로 최악을 기록했다. 다음으로는 물류업체인 유라코퍼레이션으로 지난해 영업적자는 442억원, 이자비용은 5억원으로 이자보상배율은 -84.3을 기록했다.
이어 현대미포조선(-71.7), 쌍용자동차(-67), 현대삼호중공업(-52.3) 등도 영업적자로 인해 이자보상배율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계룡건설산업(-4.2), 한화건설(-3.8) 등 25곳도 이자보상배율이 0에 못미쳤다.
영업이익은 내고 있지만 부채 규모가 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대기업도 19곳이나 됐다.
LS네트웍스와 코오롱글로벌, KCC건설은 이자보상배율이 0.1이었고 대한전선·한진해운·한국철도공사도 0.2에 불과했다.
GS건설·티케이케미칼·한라·CJ푸드빌은 0.4, 아시아나항공·하이프라자 0.6, 한화케미칼 0.7, STX 0.8, SK해운·대창·대한항공 0.9, 두산건설·삼동 1.0 등으로 집계됐다.
업종별로는 건설이 12곳으로 가장 많았다. 중동 등지에서 저가 수주한 프로젝트 때문에 수익성이 후퇴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석유화학과 조선·기계·설비 업종이 뒤를 이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좀비기업 가운데 옥석을 가리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우선 부채가 많은 좀비기업을 순차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시중은행의 부실채권 관리 회사인 유암코(연합자산관리)를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로 활용키로 했다.
이에 따라 유암코는 앞으로 IBK기업은행과 함께 주로 좀비로 분류되는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또 금융위원회는 대출이나 보증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기업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는 은행 직원과 영업점에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여신 심사 때 기업 펀더멘털 외에 업종 전망을 추가해 반영토록 하고, 한계기업 정리를 못하는 은행에는 대손충당금을 더 쌓게 하는 부담을 지울 방침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이달 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기업 대출 가이드라인 등을 담은 여신심사 개선안을 올해 안에 내놓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기업들도 살길을 찾고 있다. 포화상태에 이른 이통3사들은 새 먹거리 찾기에 혈안이다. KT는 통신서비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터넷은행 진출을 서두르고 있고, SK텔레콤은 최근 정기주총에서 ‘수출입업 및 수출입 중개·대행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연구개발(R&D) 비용을 대폭 늘려 주력 및 전략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경기침체와 국제 유가 하락으로 37년 만에 적자를 본 SK이노베이션은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정보전자·배터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유통업계는 내수침체로 백화점과 마트가 몇 년 째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면세점 시장과 복합쇼핑몰 등 신성장 사업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롯데백화점·현대백화점·신세계·호텔신라 등 전통적인 유통공룡들 말고도 현대산업개발·SK네트웍스·한화갤러리아·두산 등이 면세점 사업에 진출했거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앞다퉈 미래 먹거리에 힘을 쏟고 있어 수년 내에 주력 사업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부실기업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이 언제까지 금융권에 의존할 수만은 없지 않겠느냐. 영토 확장은 IT 분야부터 정유·중공업 등 전통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업종을 불문하고 현재진행형”이라며 “이대로라면 10년 후에는 LG가 자동차를 만들고, CJ가 이통 전문기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