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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경량전주 보급 딜레마 빠진 한전…10년 개발 ‘공염불’

‘친환경 FRP전신주 보급사업’ 왜 손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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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4.09.23 11:41:57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전경 (사진=CNB포토뱅크)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지난 2010년 중단된 경량전주 보급사업을 최근 다시 추진하려다 무산된 사실을 CNB가 단독 취재했다.

이 사업은 전국 800여만개에 이르는 콘크리트 전신주를 친환경 경량 소재인 FRP로 교체하겠다는 장기 과제로 10여년전 기획됐지만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온갖 잡음을 빚다 좌초된 바 있다. <관련기사 [단독]베일에 쌓인 한전 ‘전봇대 재판’ 불편한 진실(2013.12.13)>

이후 한전은 경량전주 시범설치 업체와 수년간 소송을 치렀고, 다시 이 업체와 손잡기 위해 성능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곡절을 겪다 결국 모든 게 백지화 됐다. CNB가 한전 전봇대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들춰봤다. (CNB=도기천 기자)

경쟁입찰 고집 결국 패착…응찰기업 전무
차량충돌실험 실패, 마지막 불씨마저 좌초
개발업체와 3년간 소송…상처뿐인 승리
한전 “입찰단가 한푼이라도 낮추려 했던것”

한전이 경량전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2000년대초 장기 과제로 콘크리트 재질의 전신주를 점차 친환경 소재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콘크리트 전신주는 수명이 30년에 불과해 폐기물로 처리하는 데만 매년 100억원 가까운 예산이 소요되고 있다. 또 2000kg이 넘는 무게로 설치와 철거가 쉽지 않다. 콘크리트 재질이다 보니 차량 추돌시 운전자가 중상을 입거나 숨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전이 창원기능대 김조권 교수팀과 손을 잡고 본격적인 경량전주 개발에 나선 것은 2005년경부터다. 김 교수는 한전 측에 자신들이 개발한 FRP전신주의 보급을 제안했고 한전이 이를 수락했다.

김 교수는 당시 FRP전신주 개발 분야의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 2003년 기존 2600kg짜리(16m기준) 콘크리트 전신주 무게를 350kg로 줄인 경량전신주 개발에 성공, 이듬해 경남도 과학기술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07년에는 공기압을 이용한 섬유강화 플라스틱제 전신주 제조에 관한 특허를 취득했다.

김 교수가 개발한 FRP전신주는 1기당 90만원선으로 30만원선인 기존 콘크리트 제품보다 비싼게 단점이지만 100% 재활용이 가능해 처리비용이 발생하지 않고, 수명도 80년이나 돼 콘크리트 전신주에 비해 경제성이 높았다. 두 사람이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 운반·설치가 용이한데다 100% 부도체라 감전사고의 우려가 없었다.

한전은 이런 김 교수의 기술력을 인정, 2007년 12월 김 교수가 개발한 FRP전신주를 시범설치키로 했다. 2008년부터 1년간 김 교수의 전신주 30기를 도로변에 설치, 시범 운영했는데 결과는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당시 시범운영을 진행했던 한전 배전처의 한 관계자는 “(시범설치 당시) 자재비용 뿐 아니라 설치노무비, 수명, 친환경성 등을 종합검토 했으며, 그 결과 김 교수의 전신주가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시범운용 결과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신개발기자재’가 돌연 ‘일반품목’ 둔갑

이후 한전은 2010년 3월 김 교수의 전봇대를 ‘배전용 FRP전신주’라는 이름의 신개발기자재로 채택, 본격사용을 결정했다. 

하지만 한전은 본격적인 경량전주 대량 생산을 앞둔 2010년 12월 FRP전신주를 돌연 일반품목으로 지정, 최저가 입찰에 들어갔다. 전신주 생산 경험이 전혀 없는 업체가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내 낙찰자로 선정했다. 이 업체는 기술력 부족으로 애를 먹다 결국 막대한 손실을 입고 손을 뗐다.

▲김조권 교수가 제작해 한전으로부터 ‘신개발기자재’로 채택된 친환경 FRP전신주. 무게가 가벼워 어른 두 사람이 들 수 있을 정도다. (사진=JTW제공)

김 교수는 한전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한전이 수의계약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수십억원대의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에서다. 2011년 7월 시작된 소송전은 올해 3월 대법원이 한전의 손을 들어주면서 막을 내렸다.  

당시 재판의 최대 쟁점은 김 교수의 FRP전봇대가 수의계약 품목에 해당 되느냐였다. 국가계약법상 신기술인증품이거나 한전에서 자체 선정한 개발선정품이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품목은 반드시 경쟁입찰을 거쳐야 한다. 

재판부는 “JTW가 생산한 FRP경량전주가 한전의 배전기자재 관리기준에 따라 시범사용을 거쳐 본격사용 결정을 받은 신개발기자재가 맞다”면서도 “그렇다고 본격사용 결정 계약이 체결되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손해배상 재판의 주요 요건인 당사자 간 ‘계약 성립’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22일 당시 입찰과 관련 “신개발기자재라 하더라도 전봇대 자체가 일반품목으로 분류돼 있어 경쟁입찰이 불가피했으며, 기존 콘크리트 보다 비싼 FRP재질을 사용하는 만큼 한 푼이라도 더 단가를 낮추기 위해 최저가 입찰을 진행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한전을 상대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민사재판의 핵심인 계약 사실에 대한 입증이 부족해 비록 패소했지만, 3년간의 재판과정에서 자신이 개발한 FRP전주가‘ 신개발기자재’라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므로 이를 근거로 정치권에 한전의 부당함을 알리는 한편 사정당국에 당시 입찰과정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올해 초 검찰이 한전 배전처 안팎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으며, 당시 입찰과정에서 비리가 없었는 지를 살폈다. 김 교수도 최근 검찰에 출두해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또 K국회의원 보좌관을 통해 한전에 문제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자 한전 측은 다시 김 교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 교수 측에 JTW가 개발한 경량전주를 매년 소량씩 설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는가하면 회사를 폐업하면 재판비용을 청구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또 JTW가 2008년 시범설치한 경량전주를 뽑아 지난 2~3월경 차량 충돌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한전의 이런 행태가 ‘과거 흔적 지우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교수는 CNB에 “경량전주의 장점을 희석시키기 위해 뜬금없이 차량충돌실험을 진행했고, 자기들 마음대로 안전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재판비용을 미끼로 폐업을 종용하고 있는 것도 JTW가 한전과의 협력 하에 신개발기자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꼼수”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전 측의 폐업요구를 거부하는 한편 충돌실험의 부당성을 배전처 등에 통보했지만 아직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한 상태다.

반면 한전 측은 CNB에 “차량추돌로 인한 배선선로 훼손 등이 갈수록 잦아지면서 과거 김 교수측이 개발한 경량전주의 성능을 다시 한번 검토해보자는 내부 의견이 있어서 자체적으로 충돌실험을 진행했던 것으로, 재판이나 외부민원과는 무관하다”며 “의외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와 없던 일이 됐다”고 밝혔다.   

또 폐업을 종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존재하지 않는 회사(폐업상태)에는 재판비용을 청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내부규정에 따라 김 교수 측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국내 최초로 친환경 FRP전신주를 개발한 창원기능대 김조권 교수. (사진=도기천 기자)

충돌실험 ‘마지막 카드’였나?

김 교수의 경량전주를 바라보는 한전의 진짜 속내는 뭘까? 앞뒤 상황으로 볼 때 한전은 ‘김 교수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에서 초경량 FRP 전신주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곳은 김 교수의 JTW가 유일하다. 워낙 전문적인 분야라 세계적으로도 FRP전신주를 생산하는 회사는 미국 세익스피어사와 캐나다의 RSI사 등 3~4곳이 전부다. 

한전은 잦은 전봇대 추돌·감전 사고로 인해 현재 콘크리트 전주를 경량전주로 바꾸라는 안팎의 여론에 직면한 상태다.

그렇다고 3년 동안 소송전을 벌인 김 교수와 다시 손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JTW의 경량전주를 다시 사용하게 되면 과거 경쟁입찰을 고집하다 보급이 무산된데 대한 책임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JTW 단독 응찰이 될 가능성이 높아 다시 경쟁입찰을 진행하기도 어렵다. 

이래저래 한전 입장에서는 김 교수의 전봇대를 사용할 수도, 안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 차량충돌실험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FRP전신주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명분을 ‘추돌 사고시 안전성’ 여부로 찾으려 했다.

실험을 진행했던 한전 엔지니어링처 관계자는 “(차량충돌) 테스트를 했던 목적은 전봇대 추돌사고가 잦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한해 기존 전봇대를 FRP로 대체하기 위해서였다”며 “과거에 (김 교수의 경량전주를 대상으로) 행했던 전반적인 성능테스트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밝혔다.

김 교수의 전봇대가 신개발기자재로 채택될 2010년 당시 내구성·강도실험·경제성·친환경성 등에 있어 후한 점수를 받았던 만큼 이번에는 다른 명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한전에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도 작용했다.

하지만 충돌테스트 결과 FRP가 쉽게 부러져 한전의 계획이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이로써 경량전주 보급사업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한전 고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볼 때 경쟁입찰을 다시 진행해 봤자 JTW 수준 보다 나은 업체가 응찰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며, 따라서 경량전주 사업을 당분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전봇대 차량추돌사고로 전력공급 차단은 물론 운전자가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는 경우가 잦아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최근 전남 화순군 화순읍 너릿재 터널 출구 지점에서 화물차량이 전봇대를 들이받고 전도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같은 상황을 한전 스스로가 자초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키 힘들어 보인다. 2005년부터 JTW와 손잡고 만들어낸 신개발기자재(FRP경량전주)를 단순 일반품목으로 취급해 최저가 입찰에 부치고, 이로 인해 3년간 소송을 벌이다 이런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FRP전신주 기술력의 해외유출 우려도 있다. 한전의 파트너였던 김 교수는 현재 모잠비크 정부와 기술제휴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독자적인 국내기술력이 외국으로 넘어갈 지도 모를 상황이다.

김 교수는 CNB와 만나 “우리나라도 경량전주를 생산할 수 있는 복합소재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 전재산을 투자해 10여년간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해 왔는데, 한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기망했다”며 “최대 공기업으로서 이런 결과가 초래된데 대한 책임을 지고 지금이라도 성의있는 태도를 보이기 바란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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