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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서울 야산 기업간판의 비밀…실제는 방공포 가림막

실체없는 ‘현대생명’ 간판 아직도 군 시설물 둔갑…안보불감증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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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4.04.09 15:40:19

▲방공포대 기지의 위장막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대생명’ 입간판. (사진=정의식 기자)

북한의 잇단 무인정찰기 남파로 방공망에 구멍이 났다는 비난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 한복판의 한 야산에 주둔하고 있는 방공포대 기지의 위장막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회사의 입간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는 인수·합병 과정에서 13년 전 사라졌는데도 해당 군부대는 이 사실을 방기한 채 해당 회사명과 로고를 위장용 입간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인근 시민들이 이 ‘희한한’ 조형물의 존재에 의문을 표하면서 ‘위장’의 의미가 사라져, 안보불감증이 또 도마에 올랐다. (CNB=도기천 기자)

‘현대생명’ 초대형 입간판 도심 복판 산꼭대기에
13년전 ‘현대생명’ 사라졌지만 군부대 ‘방치’ 
서울시 “녹지대에 기업광고판 허가 한 적 없어”

 
CNB가 단독 확인한 문제의 입갑판에 적힌 회사명은 ‘현대생명’이다. 서울의  모 야산 꼭대기에 주둔하고 있는 방공포대를 가리기 위해 특수제작 됐다. 육안으로 보기에 크기가 가로 20미터, 세로 3미터 가량의 초대형 규모였다.

현대생명 입간판과 또다른 조형물 1개는 브이(V)자 형태로 부대 외관을 가리고 있었다. V자 안에 건물 한 동 규모의 소규모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부대건물 옥상에는 대공포 등이 설치돼 있었고 초병 2~3명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CNB 취재진은 현장을 확인했지만 국가안보상 주둔부대의 명칭, 장소 등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문제는 ‘현대생명’ 입간판의 경우, 이 회사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대생명의 전신은 1989년 설립된 한국생명보험(주)이다. 2000년 1월 현대그룹에 흡수됐고, 그 직후 조선생명보험(주)을 흡수합병한 현대그룹은 두 회사를 합쳐 현대생명보험(주)을 세웠다. 현재 군부대를 감싸고 있는 ‘현대생명’ 입간판은 이때를 즈음해 탄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대생명은 2001년 3월 금융당국으로부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영업정지 명령을 받았으며, 2001년 6월 대한생명보험(주)에 계약업무가 이전됐다. 이때부터 현대생명은 기업역사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후 대한생명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2002년 한화그룹이 대한생명과 계열사 신동아화재보험, 63빌딩을 모두 인수했다. 그해 10월에 대한생명은 한화생명으로 간판을 바꿨다. 따라서 지금의 한화생명의 전신이 현대생명인 셈이다.   

하지만 군당국은 십수년간 간판 교체를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CNB와 만난 한 초병은 “오래전 군이 자체적으로 (입간판을) 제작해 위장막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위장간판에 표기된) 해당 기업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전했다.

해당 부대 관계자는 “상황파악을 하고는 있었지만 광고주(위장간판을 활용해 광고를 하겠다는 기업)가 없어 그대로 놔뒀는데 최근 새로운 광고주가 나타나 5~6월경 광고판을 교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기업의 모그룹도 입간판의 존재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현대계열 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대생명이 과거 현대그룹 계열인 것은 맞지만 어떤 연유로 산 위에 입간판이 설치돼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는 지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이 2000년대 들어 현대상선 등을 중심으로 하는 ‘원조’ 현대그룹을 비롯,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현대해상 등으로 분화되면서 현재는 ‘현대생명’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군 당국과 현대 측 말을 종합해보면, 문제의 입간판은 십수년전 해당부대의 상급부대가 부대 위장을 목적으로 설치한 뒤 광고비를 받아오다 해당 기업이 없어진 이후 새로운 광고주를 찾지 못해 현재까지 방치해온 것으로 보인다.

궁금증 커지며 위장효과 ‘제로’…되레 위치 노출돼

13년전 사라진 회사의 대형간판이 버젓이 서울시내 한복판의 야산 꼭대기에 내걸려 있자 시민들도 간판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위장간판은 인근 고층 건물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인근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회사원은 “회사 옥상에서 휴식을 취할 때마다 간판이 눈에 들어왔는데, 로고와 회사명(현대생명)이 너무 촌스러워 정체가 궁금했다”며 의문을 나타냈다.

더구나 간판 등 조형물 설치의 허가권자인 서울시는 야산·공원 등 녹지대에 광고 입간판을 설치하는 것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입간판의 정체가 더 궁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위장’이라는 본연의 목적이 상실된 지 오래다.

한 시민은 “현실에 맞지 않는 가림막(위장간판)으로 인해 오히려 방공기지가 노출된 셈이 됐다”며 “변화에 둔감한 군의 습성이 안보불감증을 불러 온 것 같아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시와 해당기업도 ‘군 시설’이라는 이유로 문제를 방기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CNB에 “위장간판이 중앙정부 소관인 군사시설물이라 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국방대학원 이전 문제, 항공대학교 비행기 소음 민원 등으로 경기도와 고양시가 국방부와 협의한 전례가 있어 이같은 서울시의 해명은 궁색해 보인다.

해당기업도 회사 로고를 고스란히 군당국에 맡긴 결과 결국 ‘안보’ 문제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했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군이 기업 위에 군림하던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잔재를 보는 것 같아 착잡하다”며 “기업이미지나 환경문제 등을 고려할 때 하루 속히 위장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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