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인멸 염려’ 구속…특검, 한덕수·박성재 영장 기각 후 ‘분위기 반전’
‘독배’로 불리는 전직 국정원장들 수난사…정권교체 때마다 의혹 휘말려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이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계엄 당일 행적이 담긴 국정원 폐쇄회로(CCTV)를 고의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만 반출해 직무유기 및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이로 인해 특검팀은 계엄 선포 국무회의 수사 막바지에 다시 동력을 얻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1일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이 조 전 원장에 대해 정치 관여 금지의 국정원법 위반, 직무유기, 위증, 증거인멸,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국회 증언 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12일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조 전 원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전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알았음에도 국회에 보고하지 않은 것은 물론, 계엄 선포 뒤 국정원 홍 전 1차장으로부터 “계엄군이 이재명·한동훈 잡으러 다닌다”는 보고를 받고도 이 또한 국회에 알리지 않았다.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이처럼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미리 알았음에도, 국회에 즉시 보고해야 하는 국정원장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며, 특히 조 전 원장은 계엄 당시 홍 전 차장의 동선이 담긴 국정원 폐쇄회로(CCTV) 영상을 국민의힘 측에만 제공하고, 자신의 동선이 담긴 영상은 더불어민주당 측에 제공하지 않아 국정원법상 명시된 정치 관여 금지 의무를 위반한 혐의도 받고 있다.
따라서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국민의힘 측 의도를 알면서 CCTV를 제공하고, 본인 동선 CCTV를 제출하라는 민주당 요구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거절한 것이 정치 관여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으며,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허위 증언을 하고, 국회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등에 허위 답변서를 제출한 혐의도 영장에 기재됐다.
앞서 조 전 원장은 증언과 답변서 등을 통해 계엄 선포 이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포고령 등 계엄 관련 문건을 보지 못했고, 다른 국무위원들이 문건을 받는 것도, 못 봤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공개된 대통령 집무실 CCTV에는 국무위원들이 포고령 등으로 추정되는 문건을 받아 보고, 조 전 원장이 집무실을 나가면서 종이를 양복 주머니에 접어 넣는 모습이 포착됐다.
더구나 조 전 원장은 작년 3월 ‘삼청동 안가 회동’ 참석 멤버로, 국회와 헌재에 증인으로 출석해 윤 전 대통령이 안가 회동 당시 ‘비상한 조치’를 언급한 적 없다고 증언했으나 특검팀은 이 역시 허위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조 전 원장은 홍 전 차장이 윤 전 대통령과 통화 내역을 공개한 뒤 조 전 원장과 박종준 전 대통령경호처장과의 통화가 이뤄졌으나 이 같은 비화폰 기록도 삭제한 행위에 관여했다는 혐의(증거인멸)도 구속영장 혐의에 포함됐다.
그러나 조 전 원장은 영장 실질 심사에서 당시 체포 관련 내용에 대해 명확하게 보고받지 못했으며, CCTV 제공 역시 논란이 된 사안을 설명하기 위한 자료 제공 차원일 뿐 정치 관여 의도는 아니라고 소명하는 등 혐의 전반을 부인했으나 계엄 국무회의 당시 문건을 받지 않았다고 위증하고 허위로 답변서를 제출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이 ‘내란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 주요 인사를 구속한 것은 지난 8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후 처음으로 현재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한 박 전 장관과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 영장실질심사에 수사력을 모을 예정이다.
박 전 장관의 영장실질심사는 오는 1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며 추 의원의 영장실질심사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표결 여부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지만 최 전 원장의 구속영장 발부를 계기로 남은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편 조 전 원장의 구속으로 ‘독이 든 성배’로 불리는 국정원장직의 수난사도 주목을 받고 있다. 정권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국정원 수장은 정권교체 때마다 정치개입이나 사찰 등 각종 의혹에 휘말려 형사 처벌 대상이 됐다.
중앙정보부를 시작으로 안전기획부를 거쳐 지난 1999년 국가정보원으로 재출범 이후 국정원장을 지낸 16명 중 재판에 넘겨진 전직 국정원장은 조 전 원장을 포함해 10명이며, 그중 9명이 구속되는 등 국정원장직의 ‘수난사’가 되풀이 되고 있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