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사업만 의존했다간 문 닫을 판
‘아파트 디톡스’ 된 에너지시설 사업
원전·해상풍력 등 다양한 분야 진출
아파트 등 주택건설에 의존하던 대형건설사들이 신사업을 다각화하며 먹거리 영토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주택 경기의 장기 침체에 따른 현상이다. 특히 건설사들은 원전, 해상풍력발전 등 에너지시설 건립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CNB뉴스가 현황을 들여다봤다. (CNB뉴스=김민영 기자)
건설업계에 일명 ‘아파트 디톡스(해독)’ 바람이 거세다. 신성장 산업으로 진출해 주택 경기 침체를 돌파하기 위해서다.
실례로 삼성물산은 지난 5월 일본 현지 대기업과 손잡고 새로운 방식의 소형모듈원전(SMR) 건설공법을 공개했다. 기존 원전 구조물 벽체는 현장에 거푸집을 만들고 철근과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방식이었지만 삼성물산이 이번에 공개한 벽체는 공장에서 강판 사이에 콘크리트를 넣어 만들었다. 삼성물산은 일본 요코하마 IHI 공장에서 주요국 관련기업들이 참석한 가운데 강판 콘크리트 벽체 모듈화 실증을 선보이고 완성품을 인도하는 행사를 가졌다. 삼성물산은 이번 실증으로 루마니아 SMR 시공사로 활약할 발판을 마련하는 한편, 앞으로 화력발전소 대체용 SMR 발주가 예상되는 동유럽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계획이다.
북유럽과 미주(美洲) 원전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현대건설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컨소시엄(협력체)을 구성해 지난 6월 핀란드 국영 에너지 기업 포툼과 핀란드 신규원전 건설을 위한 사전업무착수계약(EWA)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지난 3월 현대건설-웨스팅하우스 컨소시엄을 사전업무착수계약 대상자로 선정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원전 부지 평가, 인허가 관련사항 점검 등 사업 후속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현대건설은 지난 2월 미국에서 2030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팰리세이즈 SMR-300 FOAK 프로젝트(사업)’에 공식 착수한 바 있다. 당초 계획대로 연말에 착공하면 국내 기업이 해외에 착공하는 첫 SMR 사업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DL이앤씨는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 자회사 ‘카본코’를 설립, 지난해 북미 진출에 성공했다. 캐나다 비료업체 ‘제네시스 퍼틸라이저스’는 앞으로 카본코 CCUS를 적용한 비료 공장을 운영하게 된다. 천연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블루(친환경) 암모니아’를 뽑아내 비료를 생산하는 친환경 공장이다. 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105만여 톤의 비료를 생산하게 된다. 총 계약 금액은 3500만달러(약 486억7100만원) 규모이며, 2026년까지 프로젝트를 마칠 계획이다.
비료의 핵심 원료인 암모니아를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카본코는 기술 성숙도가 높고 대규모 포집이 가능한 아민(amine) 계열의 흡수제를 기반으로, 연간 약 7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한다. 포집된 이산화탄소는 파이프라인으로 약 10km 떨어진 지하 저장소에 보내 영구 저장된다. 이산화탄소를 제거한 블루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한편, 이를 원료로 친환경 비료까지 생산하는 구조다. DL이앤씨는 폐갱도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저장하는 한국 국책 산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육상 탄소 저장소 개발에 뛰어든 것은 처음이다.
포스코이앤씨는 해상 풍력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노르웨이 국영 에너지 기업 ‘에퀴노르’와 협력해 세계 최대 부유식 해상 풍력발전 사업을 국내에서 추진하고 있다. 울산항에서 70Km 떨어진 해상에 부유식 해상 풍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대형 사업으로 발전 용량은 750메가와트(MW), 연간 44만 가구에 공급 가능한 규모다. 세계 해상 풍력발전 규모가 누적 용량 기준 올해 81기가와트(GW)에서 2030년 228GW, 2050년 1000GW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포스코이앤씨는 해상 풍력발전용 특수선박 기술 개발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또한 해상풍력사업의 기술 경쟁력 확보와 원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그룹사인 포스코와의 협업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특히 포스코의 고성능 후판 강재를 활용한 독자 설계 기반의 부유체(Floater)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GS건설은 기존 주택사업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건축물을 여러 부품(모듈)으로 나눠 공장에서 제작한 뒤, 이를 현장으로 옮겨 조립하는 모듈러 주택 분야에 기술력을 집중하고 있다.
모듈러 주택은 OSC(Off-Site Construction) 공법을 활용해 공장에서 주요 구조물의 70% 이상을 사전 제작한 뒤, 현장으로 운반해 설치하는 방식으로 짓는다. 이러한 공법은 ▲철근콘크리트 공법 대비 공사 기간 단축 ▲건설 중 배출되는 탄소·폐기물 저감 ▲공장 작업 최소화 등 잠점이 많다. 건설업계 인력난 해소는 물론 안전사고를 줄이는 효과도 기대되며, 공장에서 모듈을 제작해 품질이 균일하므로 부실시공 우려도 피할 수 있다.
이처럼 건설업계가 신사업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기존 주택사업 방식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인건비와 원자재값 상승으로 주택원가율이 치솟아 이익률이 악화하고 있으며, 인구 감소세에 따른 주택수요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법원이 공고한 건설사 회생·파산 사건은 모두 41건에 달한다. 종합건설사 폐업 신고는 2022년 362건에서 2023년 581건으로 뛰더니 지난해에는 641건으로 2009년 이후 최고조에 달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CNB뉴스에 “국내 주택건설에만 의존하면 덩치를 유지하기는커녕 폐업을 피하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주택 산업을 대신할 차세대 먹거리로는 단연 성장성이 뛰어난 친환경 신사업, 그중에서도 에너지 기반 시설 건설 사업이 1순위로 꼽힌다”고 말했다.
(CNB뉴스=김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