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교회가 ‘일부일처혼’ 제도화
호모 사피엔스, 생존 선택권 잃어
종족 번식·문화적 진화 막은 이유는?
이 지구상에서 호모 사피엔스처럼 큰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동시에 일부일처의 짝을 이루고 살아가는 포유동물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포유류에 비해 인간들은 자기 자식을 기르는 데 막대한 노력과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고대 사회에서도 예비 엄마들에게는 자녀 양육을 위해 도움과 보호, 음식, 의복, 주거 등의 자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예비 엄마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방법은 주변에서 가장 유능하며 자원이 많고 지위가 높은 남성과 결혼해서 그에게 자신의 아이가 곧 남성의 핏줄임을 분명히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남자가 아버지로서 확신의 강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투입해 아내와 아이를 위해 기꺼이 부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특히 지위가 높은 남성이 일부다처혼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진화된 심리를 형성했을 것이다. 문화적 진화론자들은 이런 심리적 성향을 자신의 배우자와 강력한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여 남성들이 배우자와 그들의 자녀에게 기꺼이 투자하도록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일부다처혼의 사회에서 젊은 여성과 그 가족은 순수한 일부일처 사회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잠재적 남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기혼 남성이나 미혼 남성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기에 여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 배우자 선택에서 유리하다.
수렵채집인 사회에서 특정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능한 사냥꾼의 첫째 부인이 되는 것보다 훌륭한 사냥꾼의 둘째 부인이 되는 것이다. 일부일처의 규범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의 선택까지 제약하며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상대와 결혼하는 것을 가로막는 제도일 수도 있다. 인간들에게 불리한 일부일처제를 강력하게 제도화한 것은 중세기의 교회로 알려져 있다.
인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씨족과 혈통은 심리적으로 강력한 제도이지만 동시에 큰 약점을 가진다. 그것은 한 세대만 자녀를 낳지 못해도 혈통이 끊기므로 모든 세대에서 후계자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구통계학적인 분석에서는 한 세대는 전체 가족의 20퍼센트가 같은 성별만을 낳고, 20퍼센트는 출산하지 못하거나 아예 출산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상속을 받을 수 있는 후계자가 한 명도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문화적 진화는 어떻게 하든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입양, 일부다처혼, 재혼 등 다양한 상속 전략을 고안해 낸 것이다.
입양은 적절한 성별의 상속자가 없는 가족이 친척으로부터 상속자를 만드는 것이다. 일부다처혼의 경우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상속자를 낳지 못한 남성은 새로운 부인을 얻어 상속자를 가질 때까지 계속 시도한다. 일부일처제 사회에서는 상속자를 얻는 데 혈안이 된 이들은 아이를 더 잘 낳는 배우자를 얻기 위해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재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중세 교회는 종족들의 문화적 진화 전략을 무조건 가로막으려고만 했다고 한다. 그것은 교회가 모든 후처 제도를 단호하게 금지했으며, 또 사생아 개념을 교묘히 이용하여 상속 전략으로서의 일부다처혼을 잠식한 것이다. 기독교 이전 유럽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일부다처혼이 펴져 있었다. 부유한 남성들은 본처가 있는 데도 후처를 더 만들 수 있었다. 상속자가 없는 경우에는 상속자를 만들기 위해 조상에게 중요한 의례 제물을 바치고, 토지와 작위를 물려받도록 후처의 자녀를 승격시킬 수 있었기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세기의 교회가 일부다처혼을 금기로 내세우므로 해서 집안에 후처를 들이지 못하고, 이혼한 뒤 젊은 부인과 재혼하여 상속자를 낳는 것을 아예 차단했다. 심지어 적법한 이혼을 하더라도 재혼은 할 수 없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회가 입양, 일부다처혼, 재혼 등을 강제로 제한한 것은 혈족의 계보가 결국 끊어진다는 의미다. 이런 강제적 제한 아래 유럽의 많은 왕조조차도 상속자가 없어서 절멸하게 된 것이다. 결국 교회가 내세운 ‘결혼 가족 강령’의 근친상간 금지로 인한 이런 절멸은 결과적으로 교회에 큰 재정적 이익을 안겨주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또 다른 새로운 수입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혼인 무효 인증서를 판매하는 대가였다고 한다. 재혼은 당시 교회법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일정한 조건이 맞아 교회가 봐주면 첫 번째 결혼을 무효화 할 수 있었으며, 이런 강력한 비합리적인 편법은 면죄부와도 흡사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중세기 유럽의 경우 나라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교회의 자산은 날로 늘어나 어떤 나라는 전 국토의 절반에 가까운 토지를 차지했다.
이처럼 교회의 부의 축적과 자산의 증대는 개인들이 후계자를 만들기 위한 입양, 일부다처혼, 재혼과 같은 다양한 상속 전략으로서의 문화적 진화를 일부일처제로 강제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호모 사피엔스는 일부일처혼을 제도화했기에 다른 종(種)에 비해서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구병두((사)한국빅데이터협회 부회장/ 전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주)테크큐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