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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조언은 됐고 그냥 놔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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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4.10.16 09:23:14

지난달 19일 서울시 청년일자리센터. 통계청은 올해 3년 이상 장기 미취업 청년 23만 8000명 중 3년 이상 취업 준비없이 보낸 청년이 8만 2000명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선택의 연속이다. 고를 게 천지다. 어차피 이거 아니면 저건데 결정을 못해서 머리가 지끈거린다. 택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동안 거친 시험은 일도 아니다. 시험장에서 난제를 맞닥뜨렸을 때 써먹은 방법이 있었다. 눈을 흐릿하게 뜨고 보기 중 가장(그나마) 선명하게 보이는 번호를 고르는 거다. 시험에서는 그래도 됐지만 결혼은 다른 문제다. 아무거나 걸려라 식으로 대충 고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기가 많은 탓도 있지만 헤매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여기에 자꾸 집착하다보니 결정이 더뎌진다. 남 시선과 내 의사 사이에서 탭탠스를 춘다. 그러다보니 제자리걸음이다. 결단력은 진즉 결딴났다. 훈수가 넘친다. 생화 장식은 필수며
신혼여행은 휴양지가 좋고 웨딩카는 돈 아까우니 하지 마라. 여기에 정확히 반대되는 의견도 있지만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타나곤 한다. 내가 뭘 골라도 누구는 왜 그랬냐고 할 게 뻔하다. 무엇보다 이젠 내가 뭘 하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는 게 문제다.

이것도 저것도 못 정하겠으니 아무 것도 하기가 싫다. 알아서 하면 좋겠는데 여기저기서 이래라저래라 하니 부아가 난다. 결혼 5회차 이하 훈수 금지 푯말을 메신저 프로필에 걸어두고 싶다. 기한은 나의 결정력이 회복될 때까지다. 나는 지금 스스로 아무 것도 못하는 지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결정은 나아간다는 뜻이다. 마음을 먹었다는 뜻이다. 곧 실행에 옮긴다는 뜻이다. 옆에서 왈가왈부하면 결정은 지연된다. 그러니 정체될 수밖에 없다. 조언을 가장한 최악의 참견은 이거다. 뭐가 좋다가 아니라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옳지 않다고. 뭐를 선택해도 실패일 것만 같은 좌절감만 주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아무 것도 하기가 싫다.

늦장가 가는 주제에 아직 정신 못 차린 게 분명하다. 푸념이나 할 때가 아닌데. 난무하는 충고에 무기력 상태에 빠진 중년 남자의 눈에 요즘 청년들이 들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냥 쉰다는 청년들 말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3년 이상 취업하지 않은 청년은 지난 5월 기준 23만 8000명이었다. 직업 교육을 받는 등 취업 준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집 등에서 그냥 시간을 보냈다”고 응답했다. 여기서 ‘그냥’을 응시하다가 이 청년들에게 동류의식을 갖게 됐다. 그냥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수많은 조언, 첨언, 충고에 중언과 부언이 얹히면 ‘그냥’이 된다. 그 속성은 자포자기와 닮았는데 대체로 시간이 지날수록 정도가 짙어진다. 이를테면 ‘집에서 그냥 쉰’ 청년 비중이 3년 이상일 때가 가장 높은 것처럼. 그냥 쉬었다는 응답은 미취업 기간 6개월 미만일 때 20.5%에서 6개월 이상∼1년 미만일 때 26.4%로 상승했다. 3년 이상이 되면 34.2%까지 올라간다.

경기 침체, 양질의 일자리 부족 같은 근본적 문제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의 어쭙잖은 참견이 어떤 활동도 하지 않는 ‘그냥’의 상태에 이르게 했을지도 모른다. 주제넘게 누구한테 참견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요즘 온갖 조언에 시달리다보니 하고 싶은 말은 있다. 조언은 됐고 그냥 좀 놔두세요.

(CNB뉴스=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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