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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원대, 창원국가산단 지정·성산패총 발굴 50주년 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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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양혜신기자 |  2024.09.26 17:45:17

창원국가산업단지 지정 및 성산패총 발굴 50주년 기념 학술대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국립창원대 제공)

국립창원대학교는 대학본부 인송홀에서 창원국가산업단지 지정 및 성산패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성황리에 개최했다고 26일 밝혔다.

성산패총은 창원지역 고대 사회의 중심지로, 청동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다양한 유적이 발굴된 복합 유적지다. 특히 야철지 유적이 확인돼 창원지역이 고대 철 생산과 교역의 중심지였음을 밝혀냈다.

지난 1973년 창원국가산단 조성 과정에서 발견된 이 유적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국가사적으로 지정됐으며 야철지 유적은 창원에 국가기계공업단지를 조성할 당위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 그러나 50년 동안 제대로 된 발굴조사나 학술발표회가 없었고 올해 창원국가산업단지 50주년 행사에서도 제외됐다. 이에 국립창원대박물관,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해동문화재연구원이 공동으로 이번 학술발표회를 추진하게 됐다.

이 자리에서 50년 전 성산패총 발굴조사를 이끈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는 ‘창원 성산패총 발굴의 회고’라는 주제로 당시 패총과 야철지 발굴 상황과 보존 경위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어 성산패총의 세계사적 중요성, 해상 교역과 교류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현열(해동문화재연구원)은 '성산패총의 조사 현황과 종합 정비 계획 수립'을 주제로 성산패총의 산성이 두 개였으며 가야시기에는 토성이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석성이었다고 밝혔다. 안홍좌(국립창원대)는 ‘성산유적으로 본 창원지역 정치체 연구’에서 성산과 가음정 일대가 고대 창원의 정치체인 골포국과 탁순국의 중심지였다고 주장했다. 양화영(국립창원대)은 ‘성산패총으로 본 남해안의 생활유적’이란 주제로 성산패총과 가음정동이 거대한 마을로 연결돼 있었으며 근해 어업뿐만 아니라 원해어업을 통해 수산물을 획득했다고 설명했다. 소배경(삼강문화재연구원)은 '성산패총 야철지와 그 주변'에서 야철지를 분석하며 철 생산과 교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성현(중부고고학연구소)은 ‘성산산성의 축조 기법과 의미’에서 성산토성과 성산석성의 축조 방법을 설명하며 성산산성이 고대 정치체인 탁순국의 도성이었음을 발표했다.

종합토론에서는 50년 전 발굴된 성산패총의 복합 유적 성격을 반영해 ‘성산유적’으로 명칭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한 창원지역 고대 정치체의 중심지인 성산패총에 대한 추가 학술조사가 필요하다는 점도 논의됐다.

국립창원대 박민원 총장은 "이번 학술대회는 창원국가산단 지정 5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였으며 창원의 고대 정치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면서 "성산패총이 그 중심에 있었으며 앞으로 창원대가 지역 역사를 밝히고 유적 보존에 앞장설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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