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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사사(社史)②] “설계기업에서 시공능력 4위 종합건설사로”…현대엔지니어링의 50년 도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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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정의식기자 |  2024.02.16 09:33:59

정주영 선대 회장 선견(先見)으로 탄생
중동 특수 이어 개도국 수주 ‘승승장구’
앞으로의 50년은 ‘미래 가치 창조 기업’

 

1981년 10월 13일 삼천포화력 1호기 Stator 상량식. (사진=현대엔지니어링)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한길을 걸어온 기업들이 있다. 이에 국내 대표적 장수(長壽) 기업들의 태동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짚어보고 미래 비전을 소개하는 <미니사사(社史)> 시리즈를 새로 연재한다. 두 번째는 설계 전문회사로 출발해 50년 만에 시공능력 4위의 종합건설사로 도약한 현대엔지니어링이다. <편집자주>


 

[미니사사(社史)①] “교육이 민족의 미래”…교보생명의 66년 교육 외길(上)

 


“엔지니어링 기술 육성을 통해
그룹의 성장과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겠다”

- 고 정주영 현대그룹 초대회장


1974년 2월 11일 현대엔지니어링의 전신인 ‘현대종합기술개발’이 설립됐다. 현대건설 기술사업부의 확대 개편을 통해서였다. 초대 대표이사에는 임봉건 현대건설 고문이 취임했으며,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동 92의 1번지였다.

현대종합기술개발의 출범 배경에는 고 정주영 선대회장의 의지가 있었다. 엔지니어링 산업이 국가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제조업과 중공업의 발전을 이끌 기술집약 산업이라는 사실을 통찰했던 것.

 

고 정주영 현대그룹 초대회장. (사진=아산나눔재단)

현대건설의 자회사로 설립된 현대종합기술개발은 건설, 토목, 수자원, 화공, 도로 등 각 분야에서 복합사업을 수행할 전문적 기술을 제공하는 종합기술용역회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창립 직후인 1974년 5월 임계 다목적댐의 상세설계를 시작으로 대구시 하수도 기본계획사업, 목포항 정비 기본계획 등을 수행했다. 이듬해에는 서울 중랑천 하수 처리장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창립 첫해, 총 14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1억 17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한 현대종합기술개발은 3년여 만에 연간 매출액 70억원을 달성할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세계 시장 향한 거침없는 도전



해외시장 진출도 적극 시도했다. 1980년 사우디아라비아 알코바 담수화 및 가스처리 프로젝트는 그룹의 기술지원 차원이 아니라 현대엔지니어링의 이름을 내 건 첫 해외사업이었다. 현대건설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턴키 방식으로 수주한 사업으로 신규 시장 개척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성과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알코바 담수화 및 가스처리 프로젝트 현장. (사진=현대엔지니어링)

1982년 3월 현대종합기술개발은 ‘현대엔지니어링’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현대그룹 내 종합엔지니어링 회사로 그 역할과 위상을 제고했다. 조직체계를 개편해 수자원부, 도로부, 항만부, 전기부, 기계부, 화공부, 농공부, 상수도부, 하수도부 등 총 9개 부서로 재편, 운영 효율화를 도모했으며, 4월에는 업계 최초로 기업 부설 기술연구소인 ‘현대기술연구소’를 설립해 기술 차별화에 주력했다.

1985년 1월에는 국내 민간업계 최초로 해외 컨설팅을 수행했다. 네팔 전력청에서 발주한 네팔 제5차 및 6차 전력사업을 수주한 것. 이 사업은 입찰 평가기준이 최저가 입찰이 아닌 자격 및 업무 수행방법, 사업적경험 및 기술적 능력에 있었으므로 수주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업 수행 능력을 대외적으로 공인받을 수 있었다.

 


IMF 위기와 합병 & 재출발



1997년 1월 현대엔지니어링 회장에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부회장이 취임했다. 정몽헌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현대엔지니어링은 1997년을 ‘글로벌 경영’의 원년으로 설정했다. 인도네시아 다자라트 지열발전소 수주로 글로벌 경영의 포문을 연 현대엔지니어링은 한 해 동안 파키스탄 피르코 가스전 개발사업, 몽골 다란자가드 열병합발전사업, 그리스 헬레닉 아스프로피르고스 정유사업 등을 차례로 수주했다.

하지만 이후 IMF 외환위기가 닥쳤고, 1999년 1월 현대그룹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1999년 5월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과 발전적 합병을 이뤘다. 그룹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건설 및 엔지니어링 부문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한 결단이었다.

 

2001년 2월 28일 현대엔지니어링 독립법인 출범 후 처음 실시한 창립기념식. (사진=현대엔지니어링)

현대건설은 합병 이후 기존 토목과 건축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플랜트사업 비중을 높이면서 1999년 한 해 해외건설 수주가 40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해외 건설시장에서 약진했지만, 분위기는 곧 급반전했다.

1999년 일시적으로 호실적을 보이던 현대건설은 환율 하락으로 해외 매출액이 감소하고 수년 간 이어져온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2000년 11월 정부가 단행한 2차 기업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다시금 구조조정 방안 마련에 나선 현대건설은 조직 및 기구 슬림화를 검토하며 현대엔지니어링을 재차 분사하는 방안을 도출했다.

이에 따라 현대엔지니어링은 2001년 1월 서울 종로구 세종로 178번지를 사업장 소재지로 법인 설립 등기를 완료했다. 신임 대표이사에는 방정섭 당시 현대건설 엔지니어링사업본부장이 선임됐다. 같은 해 2월에는 현대건설과의 영업 양수도 계약을 체결,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에서 분사, 독립법인으로 재출발하게 됐다.

 


블루오션 전략이 들어맞다



새롭게 출발한 현대엔지니어링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개발도상국 인프라 시장을 공략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70~80년대의 중동 특수와 90년대 아시아시장의 호황을 거쳐 해외 건설 시장의 중심이 저개발 이머징 마켓으로 이동했다고 본 것. 판단은 적중했다.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유럽, 중남미 등 세계 5대 권역에 권역별 사업본부를 운영하며 집중 공략에 나선 현대엔지니어링은 세계 곳곳에서 승전보를 전했다.

주요 건설업체들이 아직 중동신화에 기대어 있을 때 현대엔지니어링은 주저없이 새로운 시장에 도전했다. 특히 신흥 공업국과 저개발 자원부국을 파고든 블루오션 전략은 현대엔지니어링의 해외 진출 전략이 시장 다변화를 넘어서 엔지니어링 신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완전한 이동’을 지향했음을 의미했다.

구체적 성과를 들여다보면, 2003년에는 파키스탄 BADIN 원유처리 설비 기본설계 용역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하수 처리시설 사업을 수주했다. 이어 2005년 필리핀 세부 200MW 화력발전소 기술자문 용역, 2007년 베트남 중캇(Dung Quat) 폴리프로필렌 플랜트 사업, 태국 시프코 160MW 복합화력발전소 사업 등 세계 각지에서 각종 산업시설 수주 및 구축에 전력했다.

 

적도기니 몽고모시 고가수조. (사진=현대엔지니어링)

특히 2005년 아프리카 적도기니에 진출해 몽고모 상수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이후 적도기니에서만 수자원 프로젝트 관련 사업을 연이어 수주하는(5500억 원 규모, 2013년 11월 기준) 성과를 거뒀다.

2007년 4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도 진출했다.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 니켈 광산 내에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로, 암바토비 광산은 연간 최대 6만 톤의 니켈 생산이 가능한 세계 3대 광산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 프로젝트에서 발전소 기본 및 상세설계와 건축설계를 포함해 배관, 전계장의 기자재 구매 업무를 총괄적으로 맡았다.

동남아 신흥국들에 대한 공략과 알제리, 적도기니, 마다카스카르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선전은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동시에 획기적인 매출 증대를 가져왔다. 그 결과 현대엔지니어링은 2007년 한 해에만 국내외에서 총 200여 건의 프로젝트를 수주, 국내 엔지니어링 업계 최초로 ‘수주 1조원’을 달성했고, 2008년에는 전체 실적의 65%를 해외에서 거두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2009년에는 마침내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금융위기 속에서도 선전하며 수주 2조 9000억원, 매출 1조 1000억원을 기록,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70%를 넘기는 성장신화를 썼다. 2015년에는 창사 이래 최초로 ‘해외수주 실적 1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 편입·현대엠코 합병으로 재도약



2011년 4월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일원으로 편입됐다. 2011년 4월 1일 현대건설 계동사옥 대강당에서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현대엔지니어링, 현대건설 등 건설자회사 임직원 6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회가 열렸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건설을 엔지니어링 운영, 기획 역량이 강화된 고부가가치 엔지니어링 중심의 글로벌 국가 대표 기업으로 육성할 것”을 강조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건설 역군이라는 자부심과 한국 건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함께 도전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 2014년 4월 1일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엠코를 합병했다. 합병비율은 1:0.18로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엠코를 흡수 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시공능력평가 13위인 현대엠코와 국내 엔지니어링 부문 1위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을 계기로 현대엔지니어링은 성장성이 높은 오일, 가스 개발 사업 등 신성장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2011년 4월 1일 현대자동차그룹 편입 후 마련된 임원 만찬에서 기념 메시지를 전하는 정몽구 명예회장. (사진=현대엔지니어링)

이후 국내외에서 이례적인 수주행진이 이어졌다. 우선 2014년 1월 합병 발표 직후 우즈베키스탄에서 30억 달러 규모의 가스액화시설 건설 공사를 수주했다. 2월에는 중동에서 초대형 공사를 수주했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이라크에서 60억 4000만 달러 규모의 ‘카르발라’ 정유공장 건설 공사를 수주했다. 이는 당시 국내 건설업계가 따낸 해외 단일 플랜트 공사금액으로는 역대 최대였다. 또 5월 필리핀을 시작으로 9월에는 말레이시아, 12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연이어 석탄화력발전소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동남아시아 발전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다.

주택시장에서도 두드러진 행보를 보였다. 현대건설의 주택 브랜드인 ‘힐스테이트’를 공동 사용하면서 서울 서초, 용인 서천, 광교 신도시 등지에서 분양 완판 행진을 기록했다.

합병의 최대 효과는 사업 포트폴리오 최적화였다. 해외와 국내 사업 비중이 각각 53%:47%로 적절하게 배분됐으며, 화공과 전력 플랜트가 전체의 41%, 건축 및 주택이 39%, 토목 등이 20%로 글로벌 시장 변동성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업구조를 갖추게 됐다.

 


“종합건설사 초월한 가치창조기업 되겠다”



2024년 2월 11일은 현대엔지니어링이 창립 50주년을 맞은 날이다. 50년 전인 1974년 29명에 불과했던 임직원 수는 7000여 명으로 늘었고, 설립 초기 1.1억원 수준의 매출은 2023년 10조원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사업 초기 한 해 동안의 수주액은 5억원 수준이었으나, 지난 2022년 수주 물량은 15조원을 돌파했다. 2023년 기준 시공능력평가 4위의 종합건설사로, 진출한 해외국가만 65개국에 달한다.

아파트 브랜드인 ‘힐스테이트’와 지식산업센터 브랜드 ‘현대 테라타워’ 등을 필두로 한 건축사업과 플랜트사업, 자산관리사업, 전기차충전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사우디, 미국, 폴란드 등 해외에서도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세계적 EPC 기업이 됐다.

 

2월 6일 현대엔지니어링 본사 계동사옥에서 진행된 ‘현대엔지니어링 창립 50주년 기념식’ 행사에서 홍현성 대표이사가 임직원에게 미래 비전에 대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현대엔지니어링)

미래 비전 달성을 위한 신사업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기존 사업과 더불어 폐플라스틱 에너지화(P2E), 소형모듈원전(SMR, MMR), 수소, 해상풍력, 태양광 등 차세대 에너지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지난 6일 현대엔지니어링은 서울 종로구 계동 본사에서 ‘현대엔지니어링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열고, 100년 기업 도약을 위한 미래 비전인 ‘NEXT HEC(Hyundai Engineering Co.,Ltd)’를 공개했다.

이날 홍현성 대표이사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최종 목적지는 국내 대표 종합건설사가 아니다”라며 “미래 50년,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종합건설사를 초월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기업”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어 “더 이상 건설에만 얽매이지 않고, 우리의 경영 패러다임을 건물이나 시설 등을 공급하는 ‘목적물 전달’에서 경제·인류·자연 등 우리 삶 전반에 가치를 전하는 ‘가치 제공’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CNB뉴스=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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