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섭기자 | 2023.12.28 13:02:50
20대에 정치에 입문해 30대에 헌정사 최연소 제1야당 대표에 오르며 한때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27일 지난 10년간 자신이 직접 표밭을 가꾼 지역이자 정치적 고향인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숯불갈빗집에서 국민의힘 탈당과 함께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가칭 ‘개혁신당’ 명칭으로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서를 제출했으며, 시도당과 중앙당 등록을 최대한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정확히 12년 전인 지난 2011년 12월 27일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에 합류함으로써 여의도 정치권에 입문한 이 전 대표의 정치 인생은 30대 여당 대표에서 비주류로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에ㅔ 대한 신랄한 비판 끝에 탈당하는 등 파란만장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과거 영광과 유산에 미련을 둔 사람은 선명한 미래를 그릴 수 없지만오늘 내 선택은 내 개인에 대한 처우, 나에게 가해진 아픈 기억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고개를 들어 과거가 아닌 미래를 봤다. 비상 상태에 놓인 것은 당이 아니고 대한민국이다. 변화가 없는 정치판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전 대표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전후로 국민의힘의 책임 있는 모 인사로부터 총괄선대위원장 등 직위를 제안받았을 뿐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의 출마도 꾸준히 제안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해 “지금도 누군가는 대한민국의 위기 속에서도 상대를 악으로 상정하고 청산하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시민들을 이끌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는 신당과 ‘한동훈 비대위’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 위원장과 나는 경쟁자의 관계로 들어섰다. 한 비대위원장을 넘어서느냐가 내 도전과제는 아니라 다수 의석 획득이 정당이 목표”라며 “정치를 바꿀 수 있는 힘은 민주적 권력에서 나오기 때문에 선출되지 않은 지도부가 그런 일을 하기엔 상당한 부담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는 신당 창당 후 총선 전 국민의힘과 재결합·연대 가능성에 대해 “적어도 총선 전 재결합 시나리오는 부정하겠다. 총선 이후에도 연대 가능성은 약하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2016년부터 총선과 재보선 등 세 차례 서울 노원병 선거에서 연이어 낙선해 원내 입성에는 실패했으나, 장외에서 거침없는 언변과 반(反)페미니즘 활동으로 ‘이대남’(20대 남성) 팬덤을 형성해,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36세의 나이로 거물급·중진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최연소이자 유일한 ‘0선’으로 승리해 당 대표 자리에 올랐을 때는 ‘동풍’을 넘어 ‘태풍’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울러 이 전 대표는 이듬해 ‘세대포위론’ 등을 내걸고 대선을 비롯해 지방선거까지 연달아 승리로 이끈 뒤에는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는 30대 여당 대표로서 정치 인생의 정점을 찍었으나 자신이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이름 지은 당내 친윤(친윤석열) 그룹과 파열음을 낸 끝에 사상 초유의 대선에서 승리한 당 대표 징계로 사실상 당에서 축출됐다.
이후 이 전 대표는 당내 비주류의 길을 걸으면서 해병대원 사망 사건 수사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 등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을 강하게 비판했으며, 특히 지난 10월부터는 윤 대통령과 당의 변화가 없을 경우, 탈당과 신당 창당에 나서겠다는 메시지를 지속해 발신해 당내 일각에선 ‘붙잡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으나, 이 전 대표는 예고한 대로 27일 탈당과 신당 창당을 결단했다.
따라서 여야를 비롯한 여의도 정치권은 일정한 청년 지지층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을 선언한 만큼, 이미 제3지대에서 창당을 선언한 ‘새로운선택’ 금태섭 전 의원, ‘한국의희망’ 양향자 의원, 더불어민주당 탈당이 거론되는 이낙연 전 대표와의 연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는 등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6일 강력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들어선 국민이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의 존재가 ‘이준석 신당’의 파급력을 줄일 수 있다는 관측도 만만찮게 대두되고 있다.
이 전 대표가 이날 회견을 연 54평 규모의 상계동 갈빗집에는 취재진 60여명이 들어찼으며, 탈당 회견 단상에는 본인만 올랐고, 이 전 대표 측근으로 꼽히는 ‘천아인’(천하람·허은아·이기인)'은 함께하지 않아 파괴력은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가게에 다른 손님들은 없었으며, 가게 앞에서는 보수 유튜버 30여명을 비롯한 지지자 수십명이 몰려들어 “윤석열을 탄핵하라”, “이준석을 구속해라” 등의 구호를 외쳐 질서 유지를 위해 경찰이 배치되고 했다.
이 전 대표는 당초 국회 소통관을 예약했으나 이곳에서 회견한 이유에 대해 “상계동에서 내 뜻을 밝히는 것은 정치의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정치를 하는 이유를 다시 새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혀 ‘강남 8학군’ 이미지의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상계동 출신’인 자신을 대비하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