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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변 윤동주 시인 생가, 부실 재개관 논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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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손정민기자 |  2023.12.22 09:20:28

서울 광화문광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색채 이미지로 복원된 윤동주 시인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국 연변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부실하게 재개관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 문학계에 의하면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시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올해 7월 보수를 이유로 폐쇄됐다가 지난 10월 말 재개관했다.

하지만 이달 국내 방송사에서 현장을 확인한 결과, 보수공사 후 재개관이라는 룽징시의 입장과 달리 건물 등의 보존 상태가 열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정과 기부함이 치워지고, 문에 걸려 있던 ‘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적힌 현판도 바닥에 내려놓았다. 윤 시인이 다니던 생가 내 명동교회 건물은 위험주택 접근금지라는 표시가 붙어 있고, 금이 가거나 허물어진 흔적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윤동주 시인 생가 관리인은 정치적인 이유로 폐쇄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공사가 주된 이유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 시인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시 ‘서시’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잘 알려져 있다. 윤 시인은 1917년 중국 지린성 룽징시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함경북도 청진시이며, 명동소학교와 룽징은진중학교, 평양숭실중학교, 룽징광명중학교, 연희전문학교, 릿쿄대와 도시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해방 전인 1945년 2월 16일 사망했다.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시에 있는 윤동주 시인 생가. (사진=연합뉴스)

짧은 생애 동안 중국과 일본이 식민지배하던 조선, 일본 등에서 살았다. 태어났을 때의 국적은 중국 또는 일본 식민 상태의 조선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은 1948년 수립되어, 윤동주 시인 등 몇 명의 독립운동가들은 무호적 상태였다. 지난해 8월 국가보훈처가 윤 시인 등 무호적 독립운동가 156명에게 정부의 직권으로 가족관계 등록을 진행했다. 대한민국 국적을 최근에야 찾았다.

중국 포털 사이트의 분류도 일부 바뀌었다. 중국의 바이두는 백과사전에 윤동주 시인의 국적을 중국, 민족을 조선족으로 분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항의와 공론화로 최근 윤 시인의 조선족 표기가 삭제됐다. 하지만 국적은 여전히 중국으로 남아있어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윤 시인의 국적을 반드시 한국으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연변 지역은 한민족으로 분류되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영토가 있었으며,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1932년부터 1945년까지 만주국이라는 이름의 괴뢰 국가로 불리는 나라를 세우기도 했다. 일본에 의해 조선이 합병된 후에 많은 조선인 또는 독립운동가들이 이 지역에서 항일 운동을 하기도 했다. 광복과 남한과 북한의 분단이라는 역사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나 항일 예술인 중에 소속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경우로 풀이된다.

윤동주 시인은 일본 대학에서 공부하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큐슈의 후쿠오카형무소에서 28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윤 시인이 일본의 생체실험에 이용된 희생자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매우 아름다운 한국어 시를 묶은 유고 시집을 남겼다. ‘서시’ 외에도 ‘별 헤는 밤’ ‘십자가’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의 시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서울 광화문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된 문학 특별전시. 윤동주 시인의 코너 모습. (사진=손정민 기자)

대한민국에서는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대 내에 윤동주기념관, 종로에 윤동주문학관, 전라남도 광양시에 윤동주 시인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등이 보존 운영되고 있다. 정병욱 씨는 윤동주 시인의 친구인 국문학자로, 일제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본가의 어머니에게 윤 시인에게서 받은 육필 시집 원고를 목숨처럼 소중한 것이니 잘 간직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초까지 국민에게 개방된 서울 광화문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화체육광광부 주최로 열린 문학 특별전시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 청와대를 거닐다’의 주요 문인 4명 중 1명으로 꼽혔다. 윤동주 시인의 문학세계를 조망하는 코너와 미디어아트 작품 등이 전시되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 방문할 때 찰스 3세 국왕이 런던 버킹엄궁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찰스 3세 국왕은 윤 시인의 시 ‘바람이 불어’의 한 구절인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While the wind keeps blowing, My feet stand upon a rock. While the river keeps flowing, My feet stand upon a hill)’를 낭송했다. 찰스 3세 국왕은 한국이 놀라울 정도로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도중에 자아를 보존하고 있는 것은 해방 직전에 불운하게 작고한 윤동주 시인이 예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며, 이 시를 인용한 배경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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