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로그램 무더기 하차…‘이동관 탄핵’ 힘 실어
내달 1일 탄핵 표결…與, 거부권 행사로 맞설 태세
총선 앞둔 방송 장악? 여야, 사활 건 ‘전면전’ 돌입
박민 KBS 사장이 취임과 동시에 전격 시행한 뉴스·시사프로그램 진행자 무더기 교체와 관련, 여당인 국민의힘 일각에서조차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등 이번 사태의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해당 프로의 진행자(앵커)들이 시청자·청취자와 작별 인사도 못한 채 하차 통보를 받고 떠났다는 점에서 야당은 이번 사태를 ‘쿠데타’에 비유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이동관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에 힘을 싣고 있다. 바꾸려는 자와 막는 자 간의 ‘용쟁호투’가 다시 점화된 것. 과연 누가 승기를 잡을까. (CNB뉴스=도기천 기자)
“박민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KBS 점령작전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 같다. 진짜 군사쿠데타를 방불케 한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1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방송 진행자, 방송 개편이 이렇게 전격적으로 이뤄진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박 사장 취임 첫날부터 편성규약과 단체협약 위반행위가 잇따르고 있다. 낙하산 사장이라고 오직 정권에 충실하고 KBS를 이렇게 무참하게 유린해도 괜찮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분명히 경고한다. 방송은 국민의 것이지 권력의 것이 아니다"라며 "당장은 자신의 방송 장악 시나리오가 성공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박 사장은 13일 취임과 동시에 ‘뉴스9’를 4년 동안 진행해온 이소정 앵커와 제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진행자 주진우 씨를 하차시켰다. 또한 월∼목요일 오후 2TV에서 방송하는 시사프로그램 ‘더 라이브’를 이날 결방하고 대신 드라마와 코미디 프로그램 재방송으로 메꾼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보도본부장 등 본부·센터장급 간부 9명과 주요 부서 국·부장급 보직자 60명을 교체하는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중 ‘주진우 라이브’와 ‘더 라이브’는 그동안 정부·여당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왔다는 점에서, 야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둔 ‘언론 길들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KBS는 “주요 종합뉴스의 앵커를 교체함으로써 KBS의 위상을 되찾고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 하겠다”며 이번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박 사장 또한 취임 하루 만인 14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공영방송으로서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정중히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주진우 라이브’와 ‘더 라이브’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간 보수단체들이 주장해온 ‘좌편향 방송’이라는 지적을 받아들인 셈이다.
KBS와 박 사장의 이번 조치에 대해 노조와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은 격앙된 분위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는 사측이 방송법과 단체협약, 편성규약을 위반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KBS 노조는 노사 단체협약과 편성규약에 따라 사측이 개편을 실무자와 협의해야 하고 긴급 편성 때는 교섭대표노조에 통보해야 하는데 이 같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조치들은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누구든 방송 편성에 관해 규제나 간섭을 할 수 없다고 명시한 방송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박 사장과 이번 개편을 지휘한 책임자들을 방송법 위반과 단체협약 위반 등 혐의로 관계당국에 고발할 예정이다.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준), 전국민중행동, 전국비상시국회의 등 진보성향 시민단체들도 이번 사태를 윤석열 정부의 언론장악으로 규정짓고 향후 촛불집회 등을 통해 대정부 비판에 나설 예정이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서도 “당황스럽다” “매끄럽지 않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14일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어제(13일) KBS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했는데 (출연 당일) 오후에 사회자가 바뀌었다고 통보를 받아 당황했다”며 “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어리둥절하게 느끼는 국민들도 분명히 있다는 점을 유념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자신의 SNS를 통해 ”비정상의 정상화는 니편을 죽이고 내편만 살리는 게 아니라 니편내편 할 거 없이 절차를 지키고 기회를 주고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권력이 사라지면 언론의 자유를 주장했다가 권력이 생기니 언론장악의 주구가 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 40대 직장인 여성은 CNB뉴스에 “출근길 운전하면서 (KBS 라디오 프로그램) ‘최강시사’를 듣고 퇴근길에는 ‘주진우 라이브’를 들었는데 둘 다 갑자기 사라져 당혹스럽다”며 “라디오 방송은 청취자와 앵커가 서로 소통하면서 만들어지는건데, 앵커가 청취자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하차했다니 황당하다. 이는 (KBS가) 청취자를 무시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여론이 들끓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동관 방통위원장을 압박하는 등 여권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사태의 꼭지점에 최근 취임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있다고 판단, 이 위원장 탄핵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CNB뉴스에 “이번 KBS사태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진행된 공영방송에 대한 무더기 과징금 부과, YTN 매각 추진, 수신료 분리징수를 통한 KBS 옥죄기 등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며 "이런 과정의 정점에 있는 언론장악 기술자가 바로 이동관 위원장인만큼, 이 위원장 탄핵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오는 30일 본회의 보고, 다음달 1일 표결을 목표로 탄핵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에 맞서 지난 13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효력 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따라서 이번 KBS 사태는 결국 국회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내년 4월 총선을 불과 5개월여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여야 모두 ‘이동관 탄핵’(민주당)과 ‘이동관 사수’(국힘)에 사활을 걸고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한 정치평론가는 CNB뉴스에 “만약 이동관 위원장이 물러난다면 그간 진행된 정부여당의 공영방송 개혁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여권은 탄핵안이 통과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 헌재심판 청구 등으로 맞설 것이 자명해 보인다”며 “이렇게 되면 탄핵이 사실상 불발되겠지만, 그렇더라도 민주당은 이 과정에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결국 양 진영 모두 탄핵 자체보다는 집토끼를 결집시키는 총선 전략의 일환으로 이번 사태를 끌고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