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가 별세한 후, 콘텐츠 저작권을 제대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3일 문화계에 의하면 최근 인기 만화,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의 창작자 중 한 명인 이우영 작가가 젊은 나이에 사망한 후, 콘텐츠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려는 움직이고 일고 있다.
‘검정고무신’은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초등학생 기영이, 중학생 기철이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다. 1992~2006년 ‘소년챔프’에 연재된 후 45권 분량의 단행본, 애니메이션 등이 만들어졌다. 이우영, 이우진 작가가 그림, 이영일 작가가 글을 담당했다.
이중 이우영 작가가 이달 12일 인천시 강화군의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는데, 이 작가가 ‘검정고무신’ 저작권 지분을 갖고 있는 대행사와의 법적 공방으로 생전에 고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정고무신’의 지분이 더 많아진 대행사가 이우영 작가가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사용한 일에 대해 법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리지 않았으며, 정당한 수익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 작가 측 설명이다.
이우영 작가는 1972년생으로 공주대 만화예술학과를 중퇴하고 대한민국영상만화대상 TV시리즈 부문 우수상, 한국방송대상 애니메이션 부문 우수작품상, 대한민국 만화대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이와 함께 ‘구름빵’ 백희나 작가의 매절 계약 논란, 이상문학상을 주최하는 문학사상의 불공정 계약서와 작가들의 수상 거부 및 절필 선언, ‘아몬드’ 손원평 소설가가 창비의 연극 제작을 사전에 알지 못해 계약을 종료하고 해당 소설책이 절판된 일 등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다시 일었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창작자 권리를 보호하고 불공정한 계약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적, 제도적 대책을 강화한다며, 약자의 위치에 있는 작가가 계약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법률 지식으로 계약이 이뤄져 원저작자임에도 자신의 저작물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제·개정 검토가 진행되고 있는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에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제3자 계약 시 사전동의 의무 규정을 포함해 창작자의 저작권 보호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올해 6월 고시할 예정이다. 매니지먼트 위임계약서 개정, 2차적저작물작성권 이용허락계약서 신설, 양도계약서 신설 등이다.
만화 분야를 포함한 문체부 소관 15개 분야 82종 표준계약서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고, 창작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내용을 개선해 공정한 계약 환경을 만들고 현장의 목소리를 수시로 파악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만화, 웹툰 분야 등 창작자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저작권 교육을 연 80명에서 500명으로 확대하고, ‘알기 쉬운 저작권 계약사례 핵심 가이드’를 마련해 공정한 계약을 돕고, 만화 분야 불공정 상담창구인 ‘만화인 헬프데스크’ 운영, 찾아가는 표준계약서 교육을 통해 불공정 계약을 방지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공정상생센터의 신고접수를 위해 협력하는 단체를 13개에서 16개로 늘리고, 법률, 노무 등 컨설팅도 상시로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신고 접수와 컨설팅 지원을 확대한다고 부연했다. 당사자 간 원만한 분쟁 해결을 위해 한국저작권위원회의 분쟁 조정 제도를 적극 활용하도록 안내하고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도 최근 출판사나 콘텐츠 제작사 약관에 1~2차 저작권에 대한 불공정한 조항이 있는지 다시 살펴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씨소프트 게임 ‘리니지’의 원작 만화가인 신일숙 작가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만화가협회는 홈페이지에 이우영 작가의 명복을 빈다는 배너를 설치하고, 만화가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해 목소리를 더했다.
한국만화가협회를 포함해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도 만들어졌다.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는 한국만화가협회와 한국웹툰작가협회, 한국원로만화가협회, 한국여성만화가협회, 한국만화스토리작가협회, 대전만화연합, 대구경북만화인협동조합, 부산경남만화가연대 등이 참여하고 있다.
대책위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며, 이우영 작가를 죽음으로 내몰 만큼 괴롭힌 회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반드시 승리해 작가의 명예를 되찾고, ‘검정고무신’ 캐릭터인 기영이, 기철이, 막내 오덕이와 그 친구들을 유가족의 품으로 되돌려 드리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대책위는 대행사가 ‘검정고무신’ 전체가 아니라 일부 캐릭터에 대한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이며, 이에 대해 사망한 이우영 작가에게는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은 채 법의 테두리로 괴롭힌 점을 문제로 꼽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5년 동안 콘텐츠 불공정행위 의혹 18건을 조사했지만, 중징계 조치가 없었던 점도 지적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이 공정위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 간 출판 및 콘텐츠 제작업체 불공정행위 현황’ 자료를 분석해 이같이 비판했다.
김희곤 의원은 “이번 이우영 작가의 별세로 출판사와 콘텐츠 제작사의 불공정 계약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며, “공정위가 콘텐츠 제작사의 불공정 행위에 강력하게 제재해 출판사와 콘텐츠 제작사 업계의 불공정 거래 행위가 근절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