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원으로 시작해 CEO 자리 올라
男 중심 금융권서 女샐러리맨 신화
끝없는 도전…첨단플랫폼으로 승부
증권업계 최초의 여성 CEO, ‘유리천장’ 깬 디지털 선구자, ESG 전도사….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에게 따라붙는 여러 수식어다. 박 대표는 KB증권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증시 부진을 딛고 로보어드바이저 강화, 마이데이터 구축 등 최첨단 플랫폼 사업을 통해 돌파구를 열고 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박정림 대표는 한국 증권업 사상 처음으로 여성 CEO에 오른 인물이다. 1986년 외국계은행에 행원으로 입사해 금융권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국민연금, 기획재정부에서 심의·운영위원 등으로 일하며 정부 금융정책 분야의 실무를 쌓았다. 2004년 KB국민은행과 인연을 맺은뒤 WM사업본부장 등을 거쳐 2014년 국민은행 사상 두 번째 여성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2019년 김성현 대표와 함께 KB증권의 각자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돼 증권가를 놀라게 했다. 2020~2021년 역대급 실적을 바탕으로 김 대표와 함께 2년 연속 연임에 성공했다.
박 대표는 KB증권의 디지털 플랫폼 구축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부문을 맡고 있으며, 김 대표는 IPO(기업공개) 등 기업투자 분야를 전담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3년간의 디지털 혁신 성과는 박 대표의 리더십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박 대표가 주도한 모바일 주식거래 플랫폼 ‘M-able mini(마블 미니)’는 주식 거래 관련 기능과 콘텐츠를 간소화해 주식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앱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외 주식 소수점 매매’ 기능을 담아 미국 주식을 1000원 단위로 매매할 수 있으며, 전문가가 진행하는 증권 방송을 보며 투자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2021년 8월 출시후 4개월 만에 다운로드 50만회를 넘어섰고 지금은 100만회를 내다보고 있다.
디지털 광폭행보…플랫폼 빠르게 혁신
2019년 1월 나온 ‘글로벌원마켓’도 눈길을 끈다. 환전 수수료 없이 국내 주식과 글로벌 5개국(미국·중국·홍콩·일본·베트남) 주식을 원화로 교차 거래할 수 있는 업계 최초 서비스다. 또 무료 해외 주식 실시간 시세 서비스인 ‘실시간 Lite’도 ‘서학개미’들에게 KB증권의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KB증권은 금융권 최대 화두인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마이데이터는 여러 금융사에 흩어져 있는 개인금융정보들을 수집해 맞춤형 금융상품 추천 등 신사업에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KB증권은 지난 2월 마이데이터 전용 앱 ‘마블링’을 출시해 다양한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마블링은 자산 조회를 비롯해 △포트폴리오 진단 △주식종목진단 △고수의Pick △은퇴준비진단 등 맞춤 투자 특화 콘텐츠를 제공한다. 입출금, 카드내역, 주식매매 등 전체 거래내역을 한데 묶어서 보여주는 ‘자산달력’을 통해 보다 쉽게 금융자산을 관리할 수 있다.
‘추천기관 연결하기’를 통해 간단한 인증 절차만으로 32개 금융기관에 연계된 나의 모든 자산이 한 번에 표시된다. 금융거래 정보를 연결하고 앱 첫 화면에 진입하면 나의 예적금, 부동산, 대출, 보험, 투자자산 등을 모두 합한 오늘 순자산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 보여준다. 일일이 여러 금융 앱에 접속하지 않아도 마이데이터 앱 하나만으로 자산 관리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마이데이터는 KB금융그룹 차원에서 수년째 공들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최고의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No.1 금융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며 “온라인 플랫폼인 KB스타뱅킹과 계열사 앱들 간 상호 연계 강화에 모든 역량과 자원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KB스타뱅킹은 KB증권의 ‘Easy 주식 매매’ 서비스를 비롯, KB국민카드의 ‘KB Pay 간편결제’, KB손해보험의 ‘스마트 보험금 청구’ 등 KB금융 6개 계열사의 핵심 서비스와 연계돼 있다. 계열사 간 시너지를 통해 고객 각자에게 ‘맞춤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전략이다.
제휴 확장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업계서 호평
KB증권은 인공지능(AI)이 시장상황과 투자자 성향을 고려해 알아서 투자하는 ‘로보어드바이저(투자일임)’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세계적인 자산 시장 위축에 따른 증시 부진 상황에서 떠나는 투자자를 붙잡을 대안으로 꼽힌다.
KB증권은 경쟁사들이 본격적으로 관련 서비스를 내놓기 전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19년 디셈버앤컴퍼니, 쿼터백자산운용과 손잡고 비대면 투자일임 서비스를 출시했고, 작년에는 파운트와 비대면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일임 서비스를 내놨다. 올해는 콴텍이 출시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비대면 투자일임 앱에 KB증권 계좌를 탑재했다.
작년 9월에는 서비스형 뱅킹(Baas·Banking as a Service) 인프라도 구축했다. BaaS 플랫폼으로 비대면 계좌개설뿐 아니라 주식주문 등 투자일임 서비스에 필요한 다양한 금융인프라가 갖춰졌다.
박 대표는 미래 먹거리 분야에도 로보어드바이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십조원에 이르는 퇴직연금시장이다. 박 대표와 KB증권은 퇴직연금이 증시침체의 대안이 될 신수익원이라 판단, 지난달 20일 연금 관련 정보를 비대면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이루다투자일임과 연금 제휴 서비스를 오픈했다. 해당 서비스는 이루다투자일임의 ‘든든(DNDN)’ 앱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박 대표는 로보어드바이저 분야를 직접 챙기며 관련 부서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퇴직연금 제휴서비스 오픈 당시 “비대면 채널을 선호하는 2030세대들이 연금 관련 정보를 편하게 접하면서 스스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라며 “앞으로도 연금 서비스가 필요한 다양한 연령대와의 고객 접점 확대를 위해 외부 플랫폼과의 제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KB증권 손이 닿지 않은 투자일임 업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한편 박 대표는 ESG 경영혁신에 있어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취임 이듬해인 2020년 국내 증권사 최초로 이사회 내 ESG 위원회를 설립하고 전담 조직을 만들어 경영혁신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작년 4월에는 ESG 지수에 연계된 ELS 상품 ‘KB able ELS 1703호’를 발행했으며, 9월에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만든 체크카드(에이블스타플러스 카드)로 주목받았다.
이처럼 앞장서 ESG를 실천한 결과, KB증권은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지배구조 부문 평가에서 증권업계 최고 점수인 A등급을 받았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