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부기자 | 2021.06.05 12:57:39
"을왕리에 가보았다고 말하지 말라...밤을 지새워 보지 않고서"
누구나 한번쯤 가봤을 인천 을왕리해수욕장을 언급하면서, 박정구 시인은 최근 발표한 4번째 시집에서, 이틀밤을 뜬눈으로 지새보지 않았다면 감히 을왕리를 가봤다고 말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박정구 시인은 지난 5월 초 시인동네 시인선 151 시집(출판 문학의전당) "오늘은 제가 그리움을 빌려야겠습니다"를 출간했다. 전라남도 신안의 작은 섬 출신인 그의 시집 제목에는 지금까지 모두 섬이 있었지만, 이번 4번째 시집에서는 섬이 사라졌다.
1998년 출간한 첫 시집 "떠도는 섬", 2003년 두번째 시집 "섬같은 산이 되어", 2015년 세번째 "아내의 섬" 등 모두 섬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이번 2021년 네번째 시집은 그냥 그리움만 남아있다. 시집에 늘 소개돼 왔던 자신의 사진도 없어졌는데, 그 이유도 궁금하다.
박정구 시인에게 있어서 섬은 아버지, 어머니의 알레고리다. 더 나아가 모든 이별하는 것들의 상징이다. 마치 산처럼 절대 떠나지 않을 것 같던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것들이 섬으로 묘사돼 떠내려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그가 빌려야만 했던 그리움은 낯설어 더 사무치게 느껴진다.
세월호 속 인양되지 못한 父子의 그리움
이번 시집에 수록된 부자(父子)라는 시에서는 그리움이 객관화 되고 모두의 슬픔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시가 당시 세월호 속에서 인양되지 못한 아버지와 아들, 권재근 님과 권혁규 군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의 내용 중에는 "아들아 어서 나가거라, 아빠 같이 가요. 혼자서는 나갈 수 없다고 부르짖을 때 바다는 하늘을 잡아 당기고 하늘은 끝내 바다가 되었다."라고 적혀있다.
박정구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어머니와 사별의 아픔을 언급하고 있는데 "몇 번의 여름이 가고 그해 가을, 어머니는 아버지가 부르신다며 홀연히 단풍나무 숲으로 떠났다. 더는 미련 가질 여유조차 없이 고향까지 팔았다. 홀가분했다. 이제부터 미치도록 그리워지는 것까지 참고 견디는 일만 남았다"라고 썼다.
"파도와 모래바람의 설운 과거를 들어보라"
그러면 왜 박정구 시인은 을왕리를 언급하면서 이틀밤을 뜬눈으로 지새워보지 않았다면 가보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그 시의 일부 내용을 보면 "살다가, 살아가면서 춥고 배고프면 묻지말고 을왕리에 와보라. 와서 이틀쯤 밤을 새워보라. 바다 모퉁이 허름한 주막 바다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갯바람 쏟아진 술상을 마주놓고 파도와 모래바람의 설운 과거를 들어보라"라고 씌여 있다. 시인은 아마도 우리보다 더 힘든, 더 아픈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를 듣지 않고 바다를 가봤다고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을왕리로 가서 바닷 바람 맞으며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싶은 그런 시(詩)다.
박정구 시인은 1995년 '문학과 의식'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외에도 산문집 설악에서 한라까지, 백두가 한라에게, 푸성귀 발전소 등 다수가 있다. 한하운 문학상 본상, 경기문학상 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고양문화재단 대표, 고양예총 회장, 고양시 원당신협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CNB= 경기 고양/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