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기우제? 걸릴때까지 투자
당첨확률은 게임사만 아는 ‘비밀’
논란 커지자 ‘법으로 규제’ 추진
전문가들 “게임 정보 공개해야”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골자로 한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개정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그간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 습득확률을 공개하며 ‘자율규제’를 시행해왔지만, 여전히 사행성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자율규제 영역을 법제화하겠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업계는 다시 촉각을 세우고 있다. (CNB=김수찬 기자)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 내에서 ‘뽑기’ 형식으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랜덤박스 및 뽑기(갓챠), 캡슐형 유료아이템 등으로도 불린다. 이용자는 그 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때까지 많은 돈을 써야 한다.
이렇다보니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과거부터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에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컴투스, 게임빌, 카카오게임즈, 크래프톤, 펄어비스 등 주요 게임사가 회원으로 속한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는 2014년 11월부터 확률형 아이템 상품별 습득확률을 공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자율규제’를 시행해왔다.
그러나 일부 게임사들은 해당 정보를 여전히 공개하지 않았다. 자율규제인만큼 강제성이 없기 때문. 또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2중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부 게임이용자 연합회는 불매 운동을 벌였고, 최근에는 게임사 사옥 앞에서 트럭 시위까지 진행했다.
논란이 격화되자 정치권은 확률형 아이템 운영을 법으로 규제하기로 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소속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 2016년 발의된 ‘게임법 개정안’을 전체적으로 뜯어고치는 법안이다.
개정안에는 확률형 아이템 습득률 공시를 담은 조항이 담겼다. 개정안에 따르면 게임사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종류별 공급확률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등을 표시해야한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으로 게임이용자가 유상으로 구매하는 게임 아이템 중 구체적 종류, 효과 및 성능 등이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유상 아이템과 무상 아이템을 결합하는 경우도 유상 아이템으로 포함시키면서 그 범위를 넓혔다.
또한, 이를 위반할 경우 영업정지, 등록취소, 폐쇄 조치, 벌칙을 부과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법제화시켜 강제성을 부여하고,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게임업계 “게임법 개정안, 진흥 아닌 규제”
게임업계는 게임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개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산업 ‘진흥’이 아닌 ‘규제’에 가깝다며 방향성이 틀렸다는 것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 15일 게임법 개정안에 우려를 표하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의원실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협회는 의견서에 “고사양 아이템을 일정 비율 미만으로 제한하는 등의 밸런스는 게임의 재미를 위한 가장 본질적 부분 중 하나”라며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 연구하며 사업자들이 비밀로 관리하는 대표적 영업 비밀”이라고 주장했다.
게임의 재미와 영업 노하우를 이유로, 확률형 아이템의 운영 정보를 공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현재 확률형 아이템은 ‘변동 확률’ 구조로 돼 있어 그 확률이 이용자의 게임 진행 상황에 따라 항상 변동되며, 개발자와 사업자도 확률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확률형 아이템을 만드는 게임사조차도 정확한 수치를 모른다는 의미다.
또한 “개정안에 명시된 확률형 아이템의 정의도 불명확하고,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별 공급 확률 등을 제공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협회는 이외에도 ▲등급분류 예측 가능성 침해 ▲광고 선전 제한과 관련한 표현의 자유 침해 ▲가상현실(VR) 등 신기술에 대한 고려 부족 ▲위임규정 많음 ▲국내 대리인 지정과 관련해 불분명한 규정 등을 이유로 들며 게임법 진흥법이 아닌 규제법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업계 역시 협회의 주장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CNB에 “국내에 법인을 두지 않은 해외 게임은 법률 집행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며 “국내 게임사만 엄격한 규제에 묶이게 되는 공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게임사와 이용자 간 시각차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양측 간 조율을 통한 협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소통 창구를 늘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업계·정치권 대립…유저들, 규탄 목소리 높아져
게임업계가 확률형 아이템 공시 의무화에 반발하자, 각종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업계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 역시 게임산업협회를 정면 비판하면서 대립의 골은 더욱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게임 이용자들은 협회 의견서에 적힌 ‘변동 확률’ 표기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현재 공개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이 변동되는 것이라면, 현재 자율규제를 통해 표기한 확률도 전부 조작이 가능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론이 들끓자 협회는 즉각 진화에 나섰다. 많은 조항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표기상 오해가 발생했다면서 의견서 내용 일부를 변경한 것이다. 게임사가 게임 내 확률 요소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문구는 삭제했다.
협회 관계자는 CNB에 “처음 의견서에 표기된 변동 확률 모델은 일부 해외 게임사가 운영 중인 시스템이다. 마치 모든 게임이 변동 확률로 운영되는 것처럼 오인돼 이 부분을 변경했으며, 실제로 국내 게임에서 이용자가 우려하는 확률 조작은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협회의 입장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게임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상헌 의원은 지난 18일 “협회의 주장대로 자율규제 준수율이 80~90%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면 법제화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강원랜드 슬롯머신조차 당첨 확률과 환급율을 공개하고 있는데 협회가 왜 반대하는 것인지 반문했다.
이 의원은 일본, 미국, EU, 영국, 중국 등 해외 사례를 들며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밝혔다.
실제로 영국은 확률형 아이템의 도박적 성격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분류하고 미성년자에게 확률형 아이템 판매를 금지할 것을 유럽 게임심의위원회(PEGI)에 권고했다. 네덜란드는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과 유사하다고 지적했으며, 벨기에 역시 게임 내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 자체를 금지했다. 중국도 2017년부터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공개하고 있으며, 아이템 획득 기대 횟수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게임업계가 적극적으로 정보 공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신년 간담회에서 “정보공개의 정확성에 법적 책임을 물어 규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문제를 확인받기 위해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NB=김수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