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구니스’에서 악동들은 보물 지도를 발견함으로써 집을 떠나 모험에 나설 수 있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찰리는 황금 티켓을 찾고서야 비로소 초콜릿 공장에 가게 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사무직원이 한 어머니에게 세 통의 전사 통지서를 발송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무도 라이언 일병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해리포터’에서 벽난로 속을 날아다니는 수백 통의 편지가 아니었다면 해리가 호그와트로 떠날 수 있었을까?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그래픽 소품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지만, 가끔은 이야기를 촉발시키는 중요한 상징물이 된다. 때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멘들스 박스처럼 영화 자체를 상징한다. 이 박스를 만든 애니 앳킨스는 웨스 앤더슨을 비롯해 스티븐 스필버그, 토드 헤인즈 등과 작업한 영화 그래픽 아티스트다. 이 책은 멘들스 박스를 비롯해 애니 앳킨스가 제작한 각종 그래픽 소품 170여 점과 여기에 얽힌 비하인드, 그리고 영화 그래픽 디자인의 세계를 담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래픽 소품이란 기껏해야 ‘종잇조각’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보, 신문 머리기사, 절박한 러브레터 등 종잇조각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모험을 향한 부름에 답하도록 그를 낯선 세계로 초대한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 책은 짚는다. 또 영화 그래픽 디자이너는 이와 같은 종잇조각을 만드는 사람이며, 이들이 창작해 내는 그래픽 소품은 카메라의 예리한 눈을 통과해야 하므로, 자체가 중요한 등장인물이라고 강조한다.
애니 앳킨스 지음, 이미숙 옮김 / 3만 5000원 / 시공아트 펴냄 / 2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