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이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박사’의 영면 49주기를 맞았다고 11일 밝혔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별도의 추모행사는 열지 않았다.
유일한 박사는 일찍부터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기업경영으로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한 인물로, 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한 ‘참 기업인’으로 평가 받는다.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을 떠난 유 박사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1926년 31세가 되던 해에 귀국, 국민건강 향상과 교육을 통한 기술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유박사는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일념으로 1936년 유한양행을 주식회사체제로 전환했다. 1939년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채택한 데 이어 1962년에는 국내 두번째로 주식공개를 결정했다. 1969년에는 경영권 상속을 포기하고 전문 경영인에게 사장직을 물려줬다. 이후 회사는 51년이 지난 현재까지 평사원 출신의 전문경영인을 선출하고 있다. 현재 약 1800명의 회사 임직원들 중 유일한 박사의 친인척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유일한 박사의 사망 이후 공개된 유언장 속 내용도 사회에 귀감이 됐다. 장남 유일선 씨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는 유언과 함께 손녀 유일링(당시 7세)양 앞으로 학자금 1만달러만 남겼다. 딸 유재라 씨에게는 유한중·공업고등학교 일대 5000평 규모 부지를 상속하면서 ‘소유주식을 비롯한 모든 재산들은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에 쓰도록 한다’고 유언했다. 유재라 씨는 1991년 세상을 떠나면서 본인이 갖고 있던 주식 등 200억원대의 재산 모두를 사회에 기부해 대를 잇는 노블레스 우블리주 정신을 드러냈다.
한편 유 박사는 작고 이후 CIA의 비밀문서 공개를 통해 생전 해외에서의 지속적인 독립운동 행적이 알려져 다시 한번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