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닌 ‘고객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공간’이 ‘문화’로 채워지고 있다. 전시회를 열고 테마파크를 꾸민다. 하지만 2% 부족한 점도 있다. CNB가 서울 시내 백화점들의 ‘문화쉼터’를 다녀왔다. (CNB=김수식 기자)
사진‧미술‧정원…각양각색 변신
온라인 맞선 무기는 고객 소통
자주 탈바꿈 못해 식상한 점도
백화점 업계가 단순한 쇼핑공간을 넘어 고객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사진을 테마로 한 ‘291 photographs(이하 이구일 포토그랩스)’가 눈에 띈다. 이곳은 예술에 기반을 둔 매장을 뜻하는 ‘아트 비즈니스 플랫폼’이다. 지난해 4월 잠실 월드타워 에비뉴엘 5층에 약 661㎡(200평) 규모로 문을 열었다.
회사 측은 고객들이 사진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이구일 포토그랩스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의 사회적 역할을 탐구하고 신진 작가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단체인 ‘협동조합 사진공방’, 그리고 ‘반도 카메라’와 함께 1년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탄생했다.
이구일 포토그랩스는 ▲사진‧전시 ▲스튜디오 ▲서적‧커뮤니티 ▲카메라 등 네 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재미있는 건 전시된 사진에는 아무런 정보도 나와 있지 않다. 오롯이 사진뿐이다. 이는 작가나 작품명에서 받는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진에 대한 느낌만으로 작품을 판단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아래에 있는 서랍을 열어보면 된다.
신세계백화점은 옥상에 주목했다. 강남점 11층 옥상에는 야외 정원 ‘S가든’을 열었다. 잔디광장 느낌의 ‘이벤트 가든’,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게 모래로 꾸민 ‘플레이 가든’, 미로 정원으로 꾸민 ‘메이즈 가든’, 탁 트인 경관을 자랑하는 ‘풀 가든’ 등의 테마공간으로 구성됐는데, 데이트 장소로도 손색없어 보였다.
옥상에 오르면서 차가운 날씨에 과연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괜한 염려였다. 바람 쐬러 나온 사람은 물론, 사진 찍는 커플도 있었다. 이 옥상정원에서 만난 한 고객은 “백화점 안에만 있었더니 더워서 잠시 땀을 식히려고 올라왔다. 시원하고 좋다”며 “옥상을 꾸며 놓으니 좋다. 요즘 루프탑(Rooftop) 공간이 유행이지 않나. 여름에는 더 예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특별한 공간을 갖춘 곳은 강남점 뿐이 아니다. 본점 옥상에서는 다양한 미술품들을 만날 수 있으며, 대구점은 백화점 최상층과 옥상 공원을 아우르는 신개념 테마파크를 선보이고 있다. 센텀시티점은 탐험과 놀이, 휴식을 테마로 ‘주라지’ 공원을 만들었다.
현대백화점도 문화공간을 제공하는데 적극적이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이 대표적. 판교점 내 별도 건물에 있는 이 미술관은 연면적 2736㎡(약 830평) 규모로 2개의 전시실, 그림책으로 구성된 열린 서재, 어린이 대상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는 3개의 교육실 등 다양한 시설과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그곳에 가보니 동심(童心)의 세계였다. 문에 들어서자 빨간 자동차가 맞이했다. 그 뒤로 다채로운 공간이 펼쳐졌다. 국내외 그림책을 볼 수 있는 서가, 공간 자체가 캔버스가 되는 오픈 창작 공간, 영화상영과 강연 등이 진행되는 미디어룸 등이 그것.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인상적이다. 커다랗고 동그란 모양의 계단은 아이들이 앉을 수 있게 꾸며졌다.
미술관을 둘러보는 동안 한 어린아이가 엄마와 함께 앉아 그림책을 한 장씩 넘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언가 설명하려고 애쓰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에서 이 공간의 ‘존재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갤러리아백화점(한화갤러리아)은 대전 도룡동에 최근 오픈한 VIP라운지 메종 갤러리아에서 ‘프린트 베이커리’ 팝업 스토어를 진행하고 있다. 1층 전시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행사는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에서 운영하는 미술 대중화 프로젝트 중 하나다. 메종 갤러리아는 VIP 전용 공간이지만, 1층 전시공간과 지하 1층 가구 쇼룸(비아인키노), 카페 등은 일반 고객도 이용 할 수 있다.
백화점 측은 “베이커리에서 빵을 고르듯, 미술품이 소수만의 ‘비싼 것’이 아닌 누구나 더 많은 이들이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값진 것’이 되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했다”며 “누구나 미술품을 감상하고, 또 큰 부담없이 소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행사는 다음 달 14일까지 진행된다.
‘식상함’ 극복이 승패 열쇠
이토록 백화점업계가 문화공간 조성에 공력을 쏟는 이유는 고객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CNB에 “소비자들이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지고, 온라인 마켓들의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이 지속되자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백화점, 마트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자사로 고객들을 유인하기 위해 매장을 방문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콘텐츠들을 발굴해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래형 매장으로 탈바꿈 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들이 쇼핑 방식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데, 이에 백화점업계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상태”라며 “1층에 명품이나 화장품, 주얼리를 배치해오던 기존 공식까지 과감히 깨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2% 부족한 점도 있다. 한번 탈바꿈 한 채 그대로 머무는데서 오는 식상함이 그것이다. 한 소비자는 “백화점에 신기한 공간이 생겼다고 하면 쇼핑도 할 겸 가보지만 거기까지다. 그걸 다시 보기 위해 두번 찾아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콘텐츠를 얼마나 자주 바꿔주느냐에 흥행 승패가 갈린다는 얘기다.
(CNB=김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