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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경상좌수영성 내탁식 성벽 확인… 복원정비 자료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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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변옥환기자 |  2019.03.14 14:00:10

경상좌수영성지 북쪽 성벽의 단면 모습. 성 외벽은 돌로, 그 안쪽은 흙으로 다져져 있다. (사진=부산시 제공)

부산 수영구에 있는 경상좌수영성(부산시 기념물 제8호)의 성벽이 외벽만 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다진 내탁식으로 축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산시는 시립박물관 문화재조사팀이 좌수영성 북문지 동쪽 정비사업부지 내 입회조사에서 확인된 추정 성벽을 지난달 18일부터 7일까지 수영구청의 의뢰로 시굴조사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상좌수영성은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도 동쪽 경상좌도의 수군을 관할하는 수군절도사영의 성이다. 처음 조선시대 동래 부산포에 있었으나 1406년에 울산 개운포로 옮긴 뒤 1534년 무렵 동래 해운포(지금 수영동)로 옮겼다. 그러다 1636년 해운포 선창 입구가 좁고 선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감만포로 이설했으나 그 위치가 왜관과 가까워 군사기밀 누설 위험이 커 1652년 다시 현재 위치로 돌아왔다. 이때 자리 잡은 수영성이 1895년 군제개혁 전까지 243년간 사용한 성이다.

조사결과 경상좌수영성은 성 외벽을 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채운 ‘내탁식(內托式)’으로 축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가로·세로 1~1.5m 정도 크기의 돌로 외벽을 쌓고 그 안쪽으로는 가로·세로 20~30㎝ 크기의 돌로 뒷부분을 2~3m 너비로 채운 뒤 6~7m 너비로 흙을 다져 8~9m 규모의 성벽을 만들었다.

 

좌수영성지에서 출토된 자기 조각. 받침에 梁山上(양산상)이라는 글자가 세겨져있다. (사진=부산시 제공)

또 조사지에서 주로 16~19세기 전반에 이르는 백자, 기왓조각 등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 이는 문헌에 기록된 좌수영성 운영 시기와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물 가운데 그릇 안쪽 네 군데에 태토(그릇을 만드는 흙)받침이 남아 있는 양질의 백자편이 수습됐다. 굽 측면에는 ‘梁山上(양산상)’이란 글자가 쓰여있었다고 문화재조사팀은 전했다.

16세기 백자의 특징을 보이는 이 유물은 분원(왕실, 중앙관청이 사용할 백자생산을 담당하던 사옹원 소속 가마)에서 만든 상품 백자를 양산지역 가마에서 모방해 경상좌수영 또는 관청에 공납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조사팀에 따르면 부산지역 출토 분청사기 가운데 ‘양산장흥고(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할 물품을 조달하던 관청)’가 적힌 사발은 조사된 적 있으나 백자의 경우는 이번에 처음 출토됐다. 이는 당시 백자의 제작과 유통 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조사로 지금껏 사례가 부족해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던 좌수영성의 성벽 축조수법을 확인하게 됐다. 차후 이 지역에 대한 복원정비의 기초가 되는 고고학적 자료를 확보했다는데 그 의의가 크다”며 “향후 외벽의 축조수법을 확인하는 추가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된 만큼 수영구청과 긴밀히 협의해 정비구간을 중심으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경상좌수영성지 북쪽 성벽 존재 확인을 위한 시굴조사 모습 (사진=부산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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