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삼성가 맏사위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이혼 판결이 나온 가운데, 재벌 총수의 딸과 결혼한 사위들의 향방이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SBS, KBS, 강적들 캡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첫째 사위의 이혼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순간 운명이 바뀐 재계의 ‘남자 신데렐라’(그룹 총수의 사위)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오너 일가 못지않은 초고속 승진으로 ‘경영 신화’를 창출하기도 했지만, 아내와 등을 져 회사를 떠난 경우도 적지 않다. CNB가 재벌가 사위들의 롤러코스터 인생사를 그들의 경영행보를 중심으로 들여다봤다. (CNB=김유림 기자)
그룹 총수 사위들 ‘경영 신화’ 창출
일부는 회사 말아먹고 법정에 서기도
성적표 좋아도 이혼하면 회사 떠나야
한국 재벌가의 백년가약은 ‘그들만의 리그’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촘촘한 ‘그물망 혼맥’을 통해 부(富)를 넓혀왔다. 양측 집안이 소유한 회사들 간의 시너지는 물론 사돈 간에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는 등 실익이 컸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재벌 간의 정략결혼이 아닌 ‘사랑’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배우 고현정, 정대선 현대 비에스앤씨 사장-노현정 전 아나운서, 채승석 애경개발 사장-한성주 전 아나운서 등 재벌가 자제와 유명 연예인이 화촉을 밝히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재벌가로 시집 간 ‘미녀 스타’들은 연예계 활동을 중단하고, 배우자의 내조와 육아에 전념하면서 가정 주부로서의 조용한 삶을 살았다. 당시나 지금이나 ‘재벌가 며느리’는 전통적인 의미의 ‘현모양처(賢母良妻)’여야 했다.
하지만 재벌가 사위들은 상황이 다르다. 처가가 이끄는 회사에서 ‘사장님’ 소리를 들으면서 활발하게 경영에 참여하기도 하고, 오너 자제만큼 지분을 보유하기도 한다. 심지어 아들이 없는 기업의 경우 ‘열 아들’보다 ‘사위 한 명’이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위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내면서, 그룹 회장 자리를 물려주는 경우까지 있다.
‘사위 신화’의 원조, 담철곤 오리온 회장
대표적인 예로 한때 자산순위 38위까지 올랐던 동양그룹은 사위가 총수 자리에 올라 재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고 이양구 창업주는 1989년 별세하면서 금융과 제조는 맏사위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에게, 제과부문은 둘째 사위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에게 물려줬다.
회사를 물려받은 후 담 회장은 중국 시장 진출에 주력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폐쇄적인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폈으며, 한중 수교도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부 임원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담 회장은 중국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꿰뚫어 보고 1991년 국내 기업 오너 가운데 최초로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현지 시장을 공략했다.
담 회장은 “현지에 뼈를 묻어라”라는 전략으로 현지화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 결과 2007년 1414억원에 불과하던 중국 매출은 2012년 1조원을 돌파하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또 담 회장은 2008년 건강과 즐거움을 더한 ‘닥터유’를 탄생시키며 제과업계에 ‘웰빙 열풍’을 불러왔다. 합성첨가물을 빼고 지방과 나트륨 등 몸에 해로운 성분을 최대한 줄인 닥터유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오리온은 닥터유 출시 한해 동안 400억 원의 매출을 기록, 그 다음해인 2010년 6월에는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하며 쾌속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해 오리온은 총 2조3863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영업이익도 2015년보다 9% 증가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2017년 미국의 제과전문지 ‘캔디인더스트리’가 발표하는 제과기업 순위에서 국내 1위, 세계 14위를 기록했다. 뒤이어 롯데제과가 16위, 크라운해태제과가 21위에 올랐다.
하지만 담 회장의 결혼 스토리는 순탄치 않았다. 담 회장은 대구에서 한약방을 하던 화교의 2세였다. 중학교 3학년 서울외국인학교로 유학을 오게 되면서 같은 반 친구 이화경 오리온 부사장(이양구 창업주 둘째딸)을 처음으로 만나 사랑을 키워왔다.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마음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변하지 않았고,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이들 부부는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재계에서 ‘잉꼬부부’로 불릴 만큼 부부관계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2011년 담 회장이 오리온그룹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을 당시 증인으로 나선 이 부회장이 법정에서 눈물로 호소하며 남편을 옹호한 일화는 유명하다.
▲안용찬 애경그룹 부회장 겸 제주항공 대표. (사진=제주항공)
낙하산 신화, 안용찬 애경 부회장
백년손님 안용찬 애경그룹 부회장 겸 제주항공 대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양대 산맥 체제를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안 대표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맏딸과 결혼한 뒤 1995년 적자에 시달리던 애경산업 사장 자리를 맡게 된다. 입사 초기에는 ‘회장 사위 낙하산’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그러나 취임 하자마자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던 브랜드를 철수하고 불필요한 제품을 없애는 등 내실 위주의 경영을 펼쳐 곧바로 애경산업을 흑자로 돌려세웠다.
이후 처남인 채형석 애경 총괄부회장은 안 대표의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해 항공사업을 진두지휘 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사업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간 탓에 제주항공은 5년 연속 적자에 시달렸고, 업계 안팎에서는 애경의 항공 사업이 얼마못가 무너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기대 이하의 성적에도 안 대표의 처가는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2011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매출 7476억원, 영업이익 584억원을 기록하며 LCC 업계 1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지난 2분기에는 중국의 사드 보복과 비수기 악재에도 불구하고 매출액 40.7%, 영업이익이 2448.0% 증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신정훈 해태제과 대표이사와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오른쪽)이 지난해 5월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해태제과의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장인-사위 ‘윈윈’, 허니버터칩 탄생
크라운해태제과는 장인과 사위의 ‘찰떡궁합’ 경영을 과시하고 있다. 신정훈 해태제과 대표는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의 딸 윤자원씨와 백년가약을 맺은 후 우수한 경영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신 대표는 베인앤컴퍼니 재직 당시 크라운과 해태의 인수합병을 주도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2005년 해태제과의 상무로 입사하게 된다.
낙하산이라는 논란이 불거졌지만, 2008년 해태제과의 ‘멜라민 검출 파동’의 위기 상황 속에서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수습하면서 자질과 능력을 검증 받게 된다. 소비재기업은 리스크를 어떻게 해결 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달려있어, CEO의 진가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다.
신 대표가 이룬 성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14~2015년 대한민국을 달콤한 감자칩에 빠뜨린 ‘허니버터칩’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신 대표는 기획 단계부터 전 과정을 진두지휘 했다. 새로운 감자칩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모두 분석했다. MSG를 대신할 천연 감미료로 프랑스산 발효 버터와 꿀을 밀어붙여 허니버터칩만의 고소함과 달콤한 맛을 찾는데 1등 공신 노릇을 톡톡히 했다.
또 신 대표는 지난해 윤 회장이 수차례 실패를 맛봤던 해태제과 상장을 성공시켰다. 허니버터칩 열풍에 힘입어 공모주 청약에만 2조3000억원이 넘는 시중자금이 모였고,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공모주 청약 경쟁률은 264.9:1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이 집중됐다.
직장인 출신 신데렐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보수적인 재계에서 톡톡 튀는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위도 있다. 바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 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의 남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 외에도 현대커머셜, 현대캐피탈 등 현대차그룹의 금융계열사를 총괄하고 있다.
앞서 정 부회장은 1987년 현대종합상사 기획실장으로 근무하다가 현대정공 동경지사담당으로, 현대정공 미주법인장, 현대모비스 기획재정본부장, 기아차 구매본부장을 거쳐갔다. 이후 2003년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을 맡으면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현대카드는 현대자동차 직원만 쓰는 카드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부진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이 수장으로 오면서 광고와 서비스, 업무 전반에 혁신적인 디자인을 도입하고, 폴 매카트니, 메탈리카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초대하는 슈퍼콘서트를 여는 등 창의적인 마케팅으로 금융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그 결과 삼성카드와 신한카드를 꺾고 현재(2017년 7월 기준) 카드 브랜드 평판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사진=SBS 캡처)
반면 경영을 잘못해서 회사를 망친 사위도 있다. 동양그룹의 맏사위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은 2013년 ‘동양 사태’로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자신도 교도소에 수감된 신세로 전락했다.
동양 사태는 동양그룹이 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수조 원대 부실 회사채(CP)를 발행해 5만여 명의 피해자를 낳은 사건이다. 이로 인해 동양그룹은 2014년 사실상 공중분해 됐으며, 현 전 회장은 사기성 회사채 판매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이혼으로 막 내린 ‘임우재 신화’
한편 총수 딸과의 이혼으로 높은 지위를 내려놓고 회사를 떠난 경우도 있다.
지난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이 17년 결혼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 사장이 임 전 고문을 상대로 낸 이혼 소송에서 법원이 이 사장의 청구를 받아들여 “이혼하라”고 선고했다. 법원은 재산 분할을 위해 이 사장이 임 전 고문에게 86억여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법원은 또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이 사장을 지정했다. 임 전 고문은 한 달에 한 번만 자녀를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임우재 전 삼성전기 상임고문이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가정별관에서 열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의 이혼소송 항소심 변론준비기일에 참석한 후 법원을 나오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두 사람은 1999년 백년가약을 맺을 당시 ‘삼성가 장녀와 계열사 평사원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임 전 고문은 삼성가에 입성함과 동시에 삼성전기 기획팀 상무보, 전무, 부사장 자리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러나 2014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실상 경영 일선에게 배제되기 시작했다. 2015년 12월 인사에서 상임고문으로 좌천됐고, 지난해 연말 비상근 자문역으로 발령 나면서 사실상 퇴사했다. 통상적으로 임원이 상임고문에서 비상근 자문역이 되면 퇴사로 간주하는 것이 관행이다.
현재 임 전 고문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지난 4일 대리인을 통해 이혼 소송 1심 재판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서울가정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임 전 고문이 항소함에 따라 앞으로 이들의 이혼 소송은 서울고법 가사항소부가 심리한다.
자유연애를 선호하는 현대가에도 백년해로를 이루지 못한 커플이 있다. 신성재 전 현대하이스코 사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셋째 딸 정명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다.
신 전 사장은 1995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한 후 1997년 정 전무와 연애를 한 끝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이후 현대하이스코 이사, 전무, 부사장 등 초고속 승진을 거쳐 입사 10년만인 2005년 현대하이스코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신성재 전 현대하이스코 사장(왼쪽)이 2011년 현대하이스코 당진 2냉연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현황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현대하이스코)
특히 신 전 사장의 부친이 운영하는 중소업체 삼우는 현대가를 사돈으로 맺으면서 폭풍 성장을 이뤄냈다. 1999년 현대차의 1차 협력사로 지정되면서 당징에 공장을 짓고, 자동차용 강판 사업에 뛰어들면서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2014년 신 전 사장이 정 전무와 파경을 맞이했고, 그 해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현대하이스코 지분도 전량 매도했다. 삼우 역시 현대차와 거래가 단칼에 끊어지진 않았지만, 예전만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 SK계열사인 선경정보시스템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던 샐러리맨 김준일씨는 최태원 SK 회장의 여동생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과 결혼했지만 2005년 헤어졌다. 당시 선경 마그네틱의 기획부장으로 근무하던 최 회장이 업무적으로 자주 만나던 김씨를 동생에게 소개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