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를 결정한 이후 중국의 경제 보복에 따른 한국 기업들의 피해는 여러 업종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이 장기화 되면서, 국내 면세점 업계와 항공업계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제 보복이 완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사드 배치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중국과의 분위기가 더 냉랭해지고 있다. 이에 CNB는 국내 유통업계의 실상을 두 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사드 여파를 최전선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는 면세점업계다. 다음 편에서는 항공업계를 다룬다. (CNB=김유림 기자)
한미정상, 사드 배치 사실상 확정
중국인 입국자수 절반 이상 줄어
보복 장기화되면 면세점 폐업사태
지난 3월 시작된 중국 정부의 방한 단체관광의 전면 금지 조치가 어느덧 4개월을 지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인 관광객은 25만3359명, 전년 동기 대비 64.1% 감소했다. 올 1월부터 5월까지는 199만7985명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 305만여명이 입국한 것과 비교하면 100만여명의 유커가 줄어든 것이다.
이런 흐름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에서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했고, 한미공동성명에서 ‘한·미·일 3국 협력 증진’ 등의 내용을 포함하면서 중국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사드 보복에 활기를 잃은 제주공항. (사진=연합뉴스)
국내 관광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인의 급감은 면세점 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특허권 남발로 새로 문을 연 후발 주자들과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으며, 면세점 운영을 포기하는 곳까지 나왔다.
한화갤러리아는 제주공항 출국장 면세점의 운영권을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계약을 맺었으나 다음달 31일자로 영업을 조기 종료한다고 공시했다. 앞서 한화갤러리아가 사업권을 따낼 당시만해도 해당 점포의 연매출은 600억원에 달했고, 유커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사드 보복으로 제주를 찾는 중국인이 80~90% 급감하면서 심각한 적자가 이어졌다. 이에 한화는 공항공사 측에 한시적으로 임대료 인하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결국 특허권 반납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CNB에 “사드 보복이 시작된 이후 매출액이 월 임대료를 밑돌 정도로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올해 연말까지 임대료 인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계약 종료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두타면세점은 영업시간을 대폭 단축하며 국내 최초 심야면세점 타이틀을 내려놓았다. 사진은 두타면세점 전경. (사진=김유림 기자)
지난해 5월 처음으로 면세사업에 진출한 두산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당초 두타면세점은 동대문상권을 고려해 ‘올빼미 쇼핑’을 차별점으로 내세우며 업계 최초로 새벽 2시까지 영업한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 자정으로 2시간 앞당긴 데 이어, 최근에는 오후 11시로 영업시간을 대폭 단축했다. 통상적으로 시내 면세점의 영업 종료 시간이 오후 9시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심야면세점을 포기한 셈이다.
또 관세청 입찰 당시 제시한 면세면적도 대폭 줄였다. 두타면세점은 9개층에서 총 1만6825㎡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리뉴얼 공사를 통해 2개층을 없애면서 2870여㎡의 면적이 축소됐다. 루이비통, 샤넬 등 명품 브랜드 유치 실패로 경쟁력이 악화되면서, 이미 들어서있는 브랜드들의 탈출 러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4월을 기점으로 뮤지크와 스틸러, 발망, 듀퐁, 겐조, 비비안웨스트우드 등 15개 명품이 철수했으며, 제이에스티나와 루이까또즈, 콰니, 오그램 등의 브랜드는 입점을 앞두고 계약을 해지했다.
하나투어의 자회사 SM면세점은 지난해 영업손실액이 전년보다 323% 급증하면서, 매장 2개층을 줄여 운영하고 있다.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은 최근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지류 홍보물 등의 규모를 기존보다 약 30% 축소, 신세계면세점 역시 불필요한 경비를 줄이기 위해 직원들에게 지급한 법인카드 회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중국관광객들로 붐비던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위 사진)이 올해는 한산한 모습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업계 1위 롯데면세점은 창립 37년만에 처음으로 ‘연봉 반납’이라는 자구책을 꺼냈다. 회사 측은 지난달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팀장급 간부사원 및 임원 40여명이 연봉의 10%를 자진 반납하기로 결정하고 결의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급여 반납을 결정한 임직원들은 대부분 2003년 사스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직접 경험한 평균 15년 이상의 경력의 베테랑들이다. 장선욱 롯데면세점 대표는 사내게시판에 직접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오픈을 앞두고 있는 신규 사업자들은 개장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는 지난 5월 관세청에 서울 시내 신규면세점 영업 시작일을 늦춰달라고 공식 건의했다. 지난해 말 특허 심사를 통과한 현대백화점과 신세계 등을 비롯해 총 9개 사업자들은 관세법에 따라 올해 안에 영업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사드 여파로 영업환경이 나빠 연말에 문을 열면 파리만 날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동화면세점 담보 주식을 둘러싼 호텔신라와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 간 갈등이 소송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면세업계의 적자가 이어지자 경영권을 서로 미루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호텔·면세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호텔신라와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두 재벌은 44년 역사의 서울 1호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2013년 동화면세점 주식 30.2%를 담보로 설정해, 김 회장에게 600억원을 빌려줬다. 상환 날짜가 도래하자 신라 측은 “현금으로 갚으라”로 요구했지만, 김 회장은 “담보 설정된 주식을 가져라가”며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또 앞서 두 번의 특허권 전쟁에서 고배를 마신 SK네트웍스는 23년 만에 면세점 사업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 워커힐면세점은 2015년 11월 특허권 수성에 실패해 지난해 5월 영업을 종료했으며, 그해 12월 재도전했지만 실패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특허상실 이후 면세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오는 12월 특허가 만료되는 롯데면세점 코엑스점 입찰에도 불참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애국심에 호소하며 인민들이 ‘사드 보복’에 나설 것을 유도한 이후, 중국 현지 한 음식점 문앞에 큰 글씨로 “한국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쓰여있다. (사진=연합뉴스)
과거 폐업사태 재현되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면세점 폐업이 속출했던 이른바 ‘버블 붕괴’가 다시 재현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 등 대형 국제행사를 전후로 국내에 외국인 관광객이 갑자기 늘어났다. 이에 정부는 면세점 활성화 정책을 펼쳤고, 1980년대 후반 시내 면세점 수가 29개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1990년대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제주 동화면세점(1995년 10월 폐업), 경주 동화면세점(1998년 3월), 부산 동화면세점(1999년 6월), 경주 남문면세점(2003년 5월), 제주 한진면세점(2006년 6월) 등 줄줄이 문을 닫았다. 대기업인 애경그룹 계열사 AK면세점은 인천공항에서 적자 누적을 견디지 못하고 2009년 롯데호텔(롯데면세점)에 흡수 합병됐다. 20여년 사이 무려 17개 면세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한때 롯데와 신라 등 주요 면세점들은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알고 보면 이들 역시 IMF를 거쳐 경쟁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기업들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시내 면세점 수를 조절하고, 멀쩡히 운영하던 곳을 폐업시키는 행위 자체가 면세사업을 망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은 사실 관광산업임에도 관세청은 백화점처럼 단순한 유통업으로 보고, 특허권을 남발해 또다시 공급 과잉이 터진 것”이라며 “아무리 유커가 늘어났다고 해도 관광 수요는 한정돼있고, 그 중 쇼핑 수요는 더더욱 국한돼있다. 정부가 면세점 수를 조절하기보다는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하(下)편에서는 사드 위기를 맞고 있는 항공업계의 현실을 다룹니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