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통업체에 진열된 설 명절 선물세트. (사진=김유림 기자)
유통업계가 설 대목을 잡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김영란법 시행 후 처음 맞이하는 명절인 만큼 ‘5만원’이라는 선물 상한선을 맞추기 위해 각종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로 채우거나 조기를 빼고 고등어를 넣는 등 실속형 선물세트가 새롭게 등장했다. (CNB=김유림 기자)
‘유통 빅3’ 몸집·가격 줄이기 경쟁
4만 9천원 ‘쇠고기 세트’도 등장
2030 위주 편의점 업계는 딴나라
지난해 9월 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어느덧 100여일이 지나 첫 명절을 맞이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공직자와 언론인, 교직원 등이 이해당사자로부터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상을 받게 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주요 유통업체들은 설 연휴를 앞두고 5만원 이하 선물세트 마케팅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롯데마트는 이번 설부터 ‘선물세트 가이드북’을 개편했다. 기존에는 신선, 가공, 생활용품 등 카테고리별로 나눠 제안하는 식이었으나, 올해부터 1만원대, 2만원대, 3만원대 등 가격별로 책자 구성을 달리했다. 또 기존 수입육 선물세트의 규격인 3kg 이상을 이번 설에는 2kg로 축소하며 포장재 등도 최소화해 5만원 이하로 가격을 맞췄다. 통조림, 샴푸 등 기존의 5만원 미만 공산품 선물도 전년 설 대비 30% 이상 추가 확보했다.
이마트는 김영란법에 맞춰 ‘한우 미니 세트’를 이번에 처음 기획했다. 매장에서 딱 필요한 만큼 원하는 양과 부위를 선택하면 제작해주는 형태다. 또 굴비 대신 민어와 수입 조기를 사용한 ‘긴가이 석태’ 등을 등장시켰다.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판매하고 있는 김치 선물세트. (사진=워커힐)
고급화를 추구하며 비싼 가격 위주로 명절 선물을 출시했던 특급 호텔들도 5만원 이하 선물을 대거 내놓기 시작했다. 앞서 법 시행 직전 명절인 지난해 추석 때는 일부 호텔만 선보였던 것과는 달리 거의 모든 호텔이 판매하고 있다.
‘롯데호텔 서울’은 표고·영지·대추로 구성된 버섯 세트를 4만5000원, 장 실속 세트를 5만원에 판매한다. 더 ‘플라자호텔 서울’은 일본 명장이 만든 젓가락 세트 4만9000원, 디퓨저 세트를 4만원에, ‘JW메리어트호텔 서울’은 원두커피, 올리브 오일, 발사믹 식초, 티, 와인 등 14가지 품목을 5만원 미만으로 구성했다. ‘그랜드 워커힐 서울’은 대추야자 세트 4만9000원, 워커힐 수제 초콜릿을 1만4000원부터 4만8000원에, 수펙스 명품 김치 소형 포장 세트(400g)를 4만6000원에 선보이고 있다.
그랜드 워커힐 관계자는 CNB에 “지난해 추석 때는 시범적으로 5만원 이하 선물세트 한 개만 선보였지만, 올해는 김영란법 시행 후 처음 맞이하는 명절인 만큼 품목 수를 전년보다 더 늘려 준비했다”고 말했다.
▲고급화를 추구하던 백화점들은 올해 설 처음으로 고등어와 돈육 선물세트를 내놨다. (사진=MBC뉴스 캡처)
콧대 높은 백화점업계 역시 고급화 전략을 줄이고 실속형 선물세트에 주력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청탁금지법에 맞춘 선물을 지난해보다 60% 늘렸다. 처음으로 선보인 돼지고기 선물세트와 4만9900원짜리 ‘랍스터’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고가 선물에만 적용되던 무료배송 서비스를 5만원 미만 선물군에도 확대 적용했다. 설 배송 특별기간에 업계 최초로 3~5만원 상품을 무료로 배달해주는 ‘L배송’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기존 프리미엄 선물세트의 중량을 줄여 ‘소포장’ 상품을 대폭 늘렸다. 9만원에 판매하는 ‘명인명촌 미본 합’의 구성을 줄인 ‘명인명촌 미소 합’을 4만8000원에, 기존 20마리로 구성된 ‘영광 굴비 세트’를 10마리로 줄여 5만원, 지난해 2.8kg에 10만원에 판매하던 ‘호주 정육 세트’를 1.4kg으로 소포장해 4만9000원에 출시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신선식품 선물세트 중 수입산 품목 비중을 지난해보다 57%나 늘렸다. 작년 설 외국산 선물세트로 연어 한 가지만 선보였지만, 올해는 갈치·새우·명란·참조기까지 총 5가지 군으로 확대했다. 게다가 비싼 굴비를 대신한 고등어 선물세트까지 등장시켰다. 국내산 고등어를 손질해 천일염으로 간을 한 ‘고등어 세트’와 안동에서 전통방식으로 염간 한 ‘안동 간고등어’를 5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대에 맞춰 5만원 이하 선물세트를 준비하면서, 가성비가 높은 수입산 품목이 늘어나게 된 것”이라며 “외국산이라고 해도 품질과 맛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븐일레븐에서 설 명절을 맞이해 판매하고 있는 악기와 전산소품. (사진=세븐일레븐)
반면 편의점업계는 김영란법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CU는 1인 가구를 겨냥한 소형 가전제품 선물세트를 판매한다. 다스베이더 알람시계(5만원), 스톰트루퍼 랜턴(3만5000원), 체지방 체중계(2만5000원), 미니 믹서기(4만2000원), 램플로우 조명(4만6000원), 핸디 청소기(6만원), 멀티 밥솥(7만2000원), 눈 마사지기(9만5000원) 등 20여 종이다. 수면 패턴과 하루 칼로리 소모량 등을 분석하는 샤오미 밴드, 1회 충전으로 10시간 재생할 수 있는 샤오미 블루투스 스피커 등 중국 IT기업의 샤오미 전자제품도 10여 개 품목으로 구성해 판매하고 있다.
GS25는 스타워즈 비히클 2종(스타워즈E7 엑스위파이터/퍼스트오더 스페셜포스 타이파이터)과 어른들의 색칠하기 열풍을 불러온 ‘비밀의 정원+파커카스텔 36색세트’, Sole 어쿠스틱 기타와 우쿨렐레 PK-24C를 판매한다.
세븐일레븐은 휴대가 간편하고 배우기 쉬운 우쿨렐레(14만8000원)부터 입문용 통기타(16만9000원), 수제 하모니카로 유명한 호너 하모니카(19만6000원)를 선보였다. 레고 스타워즈 퍼스트오더 스노우피더(7만8000원) 시리즈 3종과 소니 비디오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4(44만3000원),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new 3ds x(23만7000원) 등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키덜트 상품을 판매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편의점은 주력 소비층인 2030 세대를 고려해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사한 선물 구색과 다르게 기존 틀을 깬 개성 있는 선물세트 출시가 활발해지고 있다”며 “여기에 셀프선물을 하는 싱글족과 키덜트족의 특성까지 더해 김영란법을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주로 공무원과 언론종사자에 국한되는 만큼 이에 해당되지 않는 비율이 높은 젊은 층일수록 이 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얘기다. 청년층 실업률이 높은 것과 무관치 않아 씁쓸한 대목이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