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로서 알베르 카뮈(1913~1960)는 이런 말을 했다. “기자는 그 날 그 날의 역사가이다”.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기자의 글은 엄중한 것이며, 후대를 위해 하루하루를 성실히 기록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반세기 전 카뮈의 말에 동의한다는 표시로 기자는 두 가지 기록 장치를 뒀다. ‘취재수첩’이란 노트와 문서 파일이다. 그날의 중대한 뉴스부터 소소한 소식까지 갈무리한다. 사실 디지털 시대에 문서 파일 하나면 충분하겠지만, 내 것이라 여겼던 저장소가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뒤 굳이 손으로 옮겨 적는 행위를 동반한다. 고질적인 의심 증세와 컴퓨터가 나의 기록을 삼켜버리는 알고리즘을 깨닫지 못한 탓이다. 21세기의 신뢰도 낮은 이 기록 장치를 카뮈 역시 알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하는 일을 하는 사람’(記者)에 충실하려는 최소한의 발버둥을 점검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한 장만이 남은 달력을 어루만질 때면, 지난 일 년 간 어떤 하루가 쌓여 왔는지 노트를 뒤적여 보게 된다.
이 노트에는 뉴스가 나만의 역사가 아니듯, 동시대를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이들과 함께 겪은 일들이 퇴적돼 있다. 단순 키워드만 나열해도 ‘그런 일이 있었지’라며 맞장구를 칠만한 내용들이다.
요즘 같은 빅데이터 시대엔 공감 주제를 수치화 하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검색 빈도를 분석해 그래프로 제공하는 ‘네이버 데이터랩’이나 ‘구글 트렌드’를 보면, 당대의 관심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 서비스 페이지에 시기를 한정하고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면 검색빈도를 0부터 100까지 수치화 해 보여준다. 100에 도달한 검색어는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선’이란 이름으로 가려져 있던 ‘그분’은 줄곧 0을 유지하다가 실체가 드러난 10월 들어 100으로 치솟았다.(지난 몇 달 새, 어쩔 수 없이 그 이름을 숱하게 들어야 했던 모두를 위해 여기에서 만큼은 언급하지 않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밝혀지는 사건의 내막과 계속해서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들 역시 100수준의 ‘인기 검색어’가 됐다.
100에 근접한 키워드가 취재수첩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제한된 몇 가지 단어, 더욱이 ‘배드 뉴스’를 계속해서 기입해야 하는 일은 상상 이상의 피로를 동반한다.
외면하고 싶어도 옮겨 적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겨준 카뮈를 원망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 피로도 높은 단어들을 대체할, 이왕이면 눈과 귀가 청량한 단어들을 2017년에는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