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5차 촛불집회에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150만 시민이 나와 촛불을 밝혔다. (사진=도기천 기자)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광화문 촛불집회의 참가자 수가 매주 토요일마다 100만 여명 안팎에 이르면서 KT·SK텔레콤·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비상이 걸렸다. 트래픽 폭증에 대비해 각종 장비를 확충해야 하기 때문.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실상 ‘버티기’를 선언한 터라, 이통사들 또한 주말마다 비상근무체제를 이어가야 할 처지가 됐다. CNB가 본의 아니게(?) ‘촛불’에 동참하게 된 이통사들의 광화문 여정을 따라가 봤다. (CNB=선명규 기자)
3만 촛불 ‘버벅’, 150만 촛불 ‘쌩쌩’
집회 참가 폭증…주말마다 ‘비상근무’
늑장대응에 “여론 살폈냐”는 지적도
지난달 가족과 광화문 집회에 참가한 40대 주부 A씨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눈 깜짝할 사이 군중 속에서 초등생 자녀를 잃어버렸기 때문. 남편과 흩어져 찾아 나섰지만 전화도 메시지도 두절 돼 불안감이 커졌다. 다행히 경찰이 마련한 미아보호소에서 가족들은 재회했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통신 장애는 3만여명이 모인 지난달 29일 1차 촛불집회부터 감지됐다. 광화문 광장에 시민이 모여들수록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는 현상이 반복됐다.
이 같은 불편이 접수되자 KT와 SK텔레콤은 지난 5일 열린 2차 집회에 차량형 이동식 기지국 한 대씩을 파견했다. 그러나 광화문에 예상보다 많은 20만명이 모이자 이마저도 무용지물이 됐다. 문자 메시지 하나를 전송하는 데 5분이 넘게 걸리기도 했고, 음성통화는 연결이 됐다 안됐다를 반복했다.
▲서울 광화문에 20만 시민이 촛불을 들고 나온 지난 5일, KT와 SK텔레콤은 원활한 통신 서비스 제공을 위해 이동식 기지국을 1대씩 배치했다. (사진=미디어몽구 트위터 캡처)
일주일 뒤 3차 촛불집회에는 100만 시민이 모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이통3사는 광화문 일대를 중심으로 장비 증설에 나섰다.
KT는 광화문과 시청 주변에 이동식 기지국 5대를 배치하고, 집회 참가자들이 무료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 접속장치 액세스 포인트(AP) 12대를 설치했다. SK텔레콤 역시 이동식 기지국 5대를 보내고, 이 일대 기지국 용량을 최대 두 배 증설했다. LG유플러스는 이동식 기지국 2대를 배치하고, 기지국 18개소를 추가로 마련했다. 평소보다 3배 많은 트래픽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정값을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이통사들이 통신장애 해소를 위한 시도를 했음에도 여전히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휴대전화 먹통’으로 인한 불편을 겪었다. 인파 대비 지원 시설이 부족했던 탓이다.
3차 집회에 참가한 40대 한 남성은 “지방에서 올라온 지인과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전화가 안 걸려 난감했다”며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덜 모인 청계천 밑으로 내려가니 잠깐이나마 연결이 돼 가까스로 만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대세 기울자 뒤늦게 서비스 개선
100만 시민의 목소리가 전달된 것일까. 이통3사는 지난 19일 열린 4차 촛불집회부터 지원 장비 규모를 대폭 늘렸다.
KT는 광화문에 이동식 기지국 5대를, 시청에 3대를 파견했다. LTE·3G 기지국을 총 171대 설치하고 와이파이 AP는 38대로 늘렸다. SK텔레콤은 지난 집회와 마찬가지로 이동식 기지국을 5대 배치했지만 용량을 평소보다 2배 가량 늘렸다. LG유플러스는 광화문에 이동식 기지국 8대를 배치한 데 더해 기지국을 42곳에 추가 증설했다. 트래픽 과부화를 막기 위해 통신장비 설정값을 평상시 보다 약 3배 늘렸다.
누리꾼들은 지난주(3차) 집회보다는 적지만 60만명(주최측 추산)이나 모였는데도 통신상태가 원활했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지난 25일 5차 촛불집회를 앞두고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이 서울 광화문 주변에 이동식 기지국을 설치하고 있 다. 이튿날 열린 집회에는 사상최대인 150만 시민이 모였으나 통신장애 등으로 인한 불편은 제한적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이후 150만명이 모인 26일 5차 촛불집회는 통신사들의 지원규모가 한층 커졌다.
KT의 경우 이동식 기지국은 전과 동일하게 8대를 파견했지만, LTE·3G 기지국을 지난주보다 두 배 이상 많은 346대 설치했다. 와이파이 AP도 71대로 대폭 늘렸다. SK텔레콤도 이동식 기지국은 지난번과 동일한 5대를 배치했지만, 트래픽 수용량을 4.5배 늘렸다. LTE·3G 기지국은 400대를 설치했다. LG유플러스는 광화문 주변에 이동식 기지국을 지난주보다 2대 많은 10대를 배치했다. 여기에 기지국 75대와 와이파이 AP 13대도 추가로 증설했다.
통신사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때늦은 감이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 눈치를 보다가 대통령 퇴진 여론으로 분위기가 기울자 뒤늦게 서비스 개선에 나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매주 촛불집회에 참여해 왔다는 박성범(45) 씨는 “(전화·카톡이 불통됐지만) 워낙 인파가 많아서 통신사들도 어쩔 도리가 없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충분히 기술적으로 지원이 가능한데도 그동안 안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일침을 놨다.
실제로 통신사들이 본격적인 촛불집회 지원에 나선 시점은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처음으로 80%(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기준)를 넘어선 이후에 열린 지난 12일 3차 촛불집회 때부터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촛불집회에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기존 장비들이 감당하지 못해 차츰 증설한 것이며,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한 건 전혀 아니다”며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