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계류중이던 비쟁점 법안 3백여 건 처리를 위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이상민(더불어민주당) 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터넷전문은행 성패의 키가 될 것으로 알려졌던 ‘은산분리 완화’를 내용으로 한 은행법 개정안의 19대국회 처리가 사실상 무산된 사실을 CNB가 확인했다.
12일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말 은산분리 완화 조항을 담은 은행법 개정안을 정무위에서 논의했지만 잠정 합의도 이뤄지지 못했다”며 “19대 국회의 남은 회기 중 처리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연말 여야는 30일과 31일 연속으로 본회의를 열어 고등교육법 개정안, 예술인복지법,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 계류중인 300여 건의 비쟁점 법안을 일괄 처리했지만, 은행법 개정안은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다.
새해 들어 지난 11일 임시국회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주된 논의는 선거구 획정안과 노동 5법(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법, 파견법, 기간제법)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은행법 개정안 논의가 진행될 틈이 없는 상황이다.
대다수 여야 국회의원들의 관심사가 다가올 4월 총선에 맞춰져 있고, 특히 ‘은산분리 완화’를 극구 반대해온 더불어민주당(구 새정치민주연합)이 탈당과 분당 등으로 내홍에 빠져있어 정부·여당과 협상 테이블을 만들지도 못할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은행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27일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의 협의 법안 목록에서 제외됨으로써 사실상 국회 통과가 무산될 것으로 예견됐었다.

▲인터넷은행 예비인가를 받은 카카오뱅크와 K뱅크 컨소시엄 주요 주주 내역. (자료=금융위원회)
‘대기업 자본’ 물 건너가
은산분리 완화를 담은 은행법 개정안이 발의된 이유는 해외에서 ‘핀테크의 총아’로 주목받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을 국내에서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다.
은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금하는 원칙을 이른다. 산업자본이 금융사를 소유할 경우, 대주주의 사금고로 전락하거나 계열사 간 금융지원 등으로 시장이 교란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현행 은산분리 규정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로 선정된 카카오와 KT는 인터넷은행의 지분을 10%(의결권 행사는 4%) 이상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인터넷은행이 설립돼도 핀테크 기술을 가진 ICT기업들이 경영권을 보유할 수 없다는 문제가 노출됐다.
실제로 KT컨소시엄의 ‘K뱅크’, 카카오컨소시엄의 ‘카카오뱅크’를 주도하고 있는 KT와 카카오의 지분 비율이 각각 8%(의결권 4%), 10%(의결권 4%)에 불과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행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김 의원은 현행 은행법의 은산분리 규제를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최대 50%까지 허용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지난해 10월 6일 대표 발의했었다.
앞서 같은 당 신동우의원도 지난해 7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을 제외한 산업자본’에 한해 최대 50%의 지분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김 의원의 개정안은 대기업도 50% 지분 소유가 가능하게 하고 있어 진일보한 법안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두 법안 모두 “(야당과) 정무위에서 논의했지만 잠정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김 의원실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해 11월 30일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로 선정된 카카오뱅크 윤호영 카카오 부사장(오른쪽)과 케이뱅크 김인회 단장이 30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사업계획 브리핑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뒷쪽은 이용우 한국투자금융 전무. (사진=연합뉴스)
2차 사업자 무기한 연기…앞날 안개속
은산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안이 좌초됨으로써 정부와 ICT업계가 ‘핀테크 활성화’를 내세우며 야심차게 추진해온 인터넷은행의 미래는 일단 안개속이다.
올해 6월로 예정된 2차 사업자 인가는 은행법이 개정된 이후 ICT기업 참여를 대거 유도한다는 것이 금융위원회의 원래 방침이었는데, 현재로서는 2차 사업자 인가 절차 자체가 무기한 연기될 전망이다. 법안 통과에 기대를 걸었던 KT, 카카오 등 인터넷은행 1차 사업자들 또한 맥이 빠지게 됐다.
KT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은행법 개정안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K뱅크 사업은 일정대로 추진될 것”이라면서도 “혁신은 혁신대로 요구하면서 룰은 기존의 룰을 따르라는 것이라 아쉽다”고 말했다.
K뱅크 컨소시엄은 KT(8%) 외에도 우리은행(10%), GS리테일(10%), 한화생명보험(10%), 다날(10%) 등 주주로 참여한 기업들이 20곳에 달해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카카오는 KT보다 다소 여유 있는 표정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현행법을 기준으로 사업을 준비했기 때문에 일정이 연기되거나 추진력이 약화될 가능성은 없다”며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것에 대비해 컨소시엄 내 파트너를 선정했기 때문에 경영을 주도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컨소시엄 참여기업 중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한국투자금융지주(50%)는 물론 국민은행(10%) 등 11곳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과의 관계가 우호적이라 10%지분을 갖고도 인터넷전문은행을 운용하는데 당장은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법 개정이 계속 미뤄지면 머지않아 두 회사의 인터넷은행 사업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정세현 경영컨설턴트는 “애초에 두 컨소시엄은 은행법 개정안 통과를 전제로 뭉친 것”이라며 “당분간은 모든 참여기업들이 한 배를 탄 심정으로 협력을 유지하겠지만, 개정안이 무기한 연기되면 개별 참여기업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 기회에 두 회사가 시장 장악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란 해석도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2차 사업자 선정이 미뤄짐으로써, 1차 사업자로 선정된 카카오뱅크와 K뱅크가 시장을 선점하고 이름을 알릴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이번 개정안 무산이 두 회사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CNB=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