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으로 1천만 관객 배우가 된 황정민(서도철 역)이 또 한 번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을지 기대되는 가운데, 재벌가 유전무죄에 공분하는 관객들의 울림도 함께 커지고 있다. (CNB=최서윤 기자)
SK가 최철원 전 회장 ‘매값 폭행’ 모티브
반성 없는 재벌 민낯…조태오는 현재진행형
이 영화는 한국 재벌의 어두운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그려 냈다. 비단 안하무인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 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땅콩 회항, 롯데 사태 등 주주도, 국민도 안중에 없는 재벌의 민낯이 영화 속 ‘신진그룹’과 클로즈업 되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류승완 감독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영화 속 모티브가 된 사건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공의에 합당한 악당을 생각하다보니 괴물 같은 인물이 만들어진 것 같다. 누가 연상되지만 콕 집긴 어렵지 않겠냐”고 답했다. 일부 기업인들의 일탈을 모티브로 했음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기자는 2010년 6월, 종로 SK 사옥 앞에서 시위를 하던 화물차주 유 모 씨를 만나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유 씨는 “동서상운에서 일하다가 M&M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부당하게 계약해지 당했다. 운송료 인상 과정에서 화물연대 소속으로 투쟁하다 SK에 미운털이 박혔고, 바로 자를 수 없으니까 1년 동안 날 내보내기 위해 온갖 압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당시 SK에너지는 아스팔트 용액 운반을 위해 5개의 운송사를 지정해 사용했다. 화물차주들에게 용역을 주는 운송사인 M&M에 SK에너지가 압력을 넣으면서 계약이 해지됐다는 것이 유 씨의 주장이었다.
이후 유 씨는 당시 M&M 대표였던 최철원 씨에게 불려가 야구방망이와 주먹으로 폭행 당한다. 최철원은 유 씨에게 맷값으로 2천만 원을 건냈다. 바로 이 최철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최 회장은 계열사 자금 450억 원을 빼돌려 선물·옵션에 투자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3년6월을 확정 받아 복역하다 영화 개봉 며칠 뒤인 8월15일, 광복절특사로 풀려났다. 류 감독은 '오비이락'(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라 말하겠지만 참으로 우연치고는 시점이 절묘하다.
그렇다고 조태오를 최철원 전 대표에만 비유하기에는 영화가 주는 울림이 너무 크다. 영화는 ‘맷값 폭행’을 모티브로 삼고 있지만, 관객은 더 많은 것을 떠올린다.
맞고 들어온 아들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해 보복 폭행에 나섰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영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인천 아시안게임 때 경기장 경비 중인 경찰관들에게 욕설을 퍼부은 혐의로 ‘모욕죄’ 적용이 검토됐던 남종현 대한유도회장((주)그래미 대표이사 회장)이나 출발하고 있는 비행기를 세운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도 뜨끔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차라리 영화 속 배 기사(정웅인 역)처럼 실컷 맞고 맷값이나 듬뿍 벌었으면 좋겠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기성 회사채를 발행해 동양에 투자한 투자자 4만여 명에게 수조 원대 피해를 입힌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 1800억 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구자원 LIG 회장과 두 아들인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은 선량한 개미투자자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전 재산을 날리고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이들 입장에서 보면, 배 기사의 처지가 되레 부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에서 ‘권선징악’이라는 결말을 내린 듯하지만 ‘반성없는 재벌’의 모습을 부각함으로써 물음표를 남겼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철원 전 대표는 2011년 2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다.
검찰은 항소심이 끝난 지 13일 만에 피해자 유 씨를 업무방해와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사건을 맡은 검사는 이듬해 SK건설의 전무급 임원으로 영입됐다.
류 감독은 끝까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는 조태오의 모습을 통해 ‘SK판 맷값 폭행’이 현재진행형임을 말하려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조태오의 대사는 오래 여운이 남는다. “이 나라는 기업하는 사람들을 다 죄인 취급해.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나라 굴리면서.”
(CNB=최서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