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야 국회의원 172명이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하면서 ‘사형제’가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억울한 희생자가 생길 수 있다는 사형제 폐지 주장과 흉악 범죄를 막기 위해 사형제는 존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는 상황이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놓고는 사형제 합헌론자와 위헌론자의 해석이 엇갈린다.
제110조 제4항에는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돼 있다.
이처럼 헌법은 ‘사형’을 명시했지만 ‘간접규정’이라는 점에서 ‘사형’이 위헌이냐 합헌이냐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제67주년 제헌절을 맞아 사형제에 대해 들여다봤다.
▲17일 국회의사당 건물에 제67주년 제헌절을 맞아 현수막이 걸려 있다.(사진=CNB)
◇ 여야 의원 172명 사형폐지법안 발의 “국민인권 보호”
헌법의 하위법인 형법 제41조 형법의 종류에는 사형이 규정돼 있다. 법정최고형인 사형은 내란죄와 살인죄 등에 대해 적용 가능하다. 과거 이념 대립이 심한 시절에는 내란죄 등으로 사형을 선고 받은 경우가 있지만 현재는 연쇄살인 등 흉악 범죄자들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있다.
1997년 12월, 연쇄살인 후 인육을 먹은 엽기행각을 벌인 ‘지존파’ 일당을 포함한 23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들이 사형된 후 18년째 사형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으로사형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야 의원 172명은 지난 6일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298명 재적 의원 중 과반 이상이 발의에 참여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인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에는 새누리당 의원 43명, 새정치연합 의원 124명, 정의당 의원 5명 등이 서명했다.
이 법은 사형을 감형이나 사면 없는 종신형으로 대체하자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유 의원은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 사건으로 1974년,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전력이 있다.
그는 이 법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헌법 제10조와 제37조를 들었다. 헌법 10조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헌법 37조 2항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 의원은 “이들 조항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생명권을 전제하며 기본권의 본질적 권리인 생명권을 결코 침해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다”면서 “인간의 생명은 인간실존의 근거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전제로 해 한편으로 국민에 의한 살인행위를 범죄로 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에 의한 인간의 생명의 박탈을 제도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또 “과거 사형을 집행했으나 그 중 분단국가 및 독재정권 하의 이념대립과 정권유지에 악용돼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 아픈 역사가 있다”며 “국제엠네스티에서도 2007년 12월 30일 한국을 세계 134번째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형폐지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며 “반인권적이고 비인도적이자 극단적으로 잔인한 형벌인 사형제를 법률로써 명백하게 폐지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형벌체계를 수립하고 인권선진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엠네스티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약 3분의 2 이상이 법적 또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다. 2013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법상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폐지국은 98개국, 일반 범죄에 대한 사형폐지국은 7개국이다. 사실상 사형폐지국은 35개국으로 법적 또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은 전 세계 198개국 중 140개국이며, 사형 존치국은 58개국이라고 유 의원은 밝혔다.
◇ 朴대통령은 사형제 폐지 신중론… 친박 중진은 폐지 동참
이번 사형폐지법안에 유 의원이 소속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대부분 동참했다. 주목받는 의원들은 새누리당 의원들이다. 특히 정갑윤 정우택 의원 등 친박(친박근혜) 중진 의원들도 동참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서명은 하지 않았지만 정의화 국회의장과 이인제 의원 등은 사형제 폐지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2년 사형제 폐지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기자간담회 등에서 “앞서 사형제 폐지 움직임이 있었을 때도 신중하게 고려할 일이지, 폐지할 일이 아니라고 했었다”며 “인간이기를 포기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흉악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을 저지른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경고 차원에서라도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유 의원이 사형선고를 받을 당시는 박정희 정권이었다. 이번 사형폐지법안 발의 이유부터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다소 껄끄러울 수 있다. 김무성 대표와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서명하지 않았다.
법조인 중에서도 검사 출신 의원들은 사형제 폐지에 부정적이다. 범죄자의 인권보다 피해자의 인권이 우선이라는 이유다.
대다수 새정연 의원들이 사형폐지법안에 서명했지만 임내현 의원 등은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은 최근 PBC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정서상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사형제를 당장 폐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 박민식 의원은 7일 자신의 SNS에 “유영철이 무고한 사람 20명을 죽였다. 유영철 인권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며 “억울하게 죽어간 피해자들의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형은 안 된다? 현재 우리나라 사형수 중 99%는 오판가능성이 제로”라며 “사형제도가 있으면 인권후진국이라는 발상이 어디서 나왔느냐. 일본은 며칠 전에도 사형집행이 있었다. 일본이우리보다 훨씬 인권후진국인가”라고 반문했다.
김진태 의원도 12일 CNB와 통화에서 “사형제 폐지는 언어도단이다. 오히려 사형 집행을 실시해야 한다”며 “형사소송법은 법무부 장관에게 사형판결이 확정되면 6개월 이내에 사형을 집행하라고 했지, 국민정서를 살펴보고 나서 결정하라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법무부장관이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라며 “사형폐지법안은 어차피 통과되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물타기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법을 잘 지켜 준법질서를 세울 책임이 정부에게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인태 의원을 대표로 여야의원들과 종교인들이 6일 국회 정론관에서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사형폐지법안, 20년 동안 7번 발의… 여론은 ‘부정적’
사형제 폐지법안은 지난 15대 국회 이후 20년 동안 7번 발의됐다. 과거 6차례 발의는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에는 통과할까.
여당 내에서는 우선 회의적이다. 김진태 의원은 통과하기 어렵다고 봤고, 이한성 의원도 19대 국회 막바지인 상황에서 법안도 많이 미뤄져 있어 결론이 쉽게 날지 모르겠다고 전망했다.
헌법재판소장과 법무부장관도 사형제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지난 2013년 후보자 시절 사견임을 전제로 “현재로서는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웅 법무장관도 지난 7일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사형제는 철학과 형사 정책적인 문제, 국민의 법 감정, 국제적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유영철(21명 살해) 강호순(8명 살해) 같은 희대의 살인마에게 매년 수천만 원의 국민혈세가 들어간다는 점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김진태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2012년)에 따르면, 사형수 한 명당 연간 소요되는 비용은 약 2189만원으로 집계됐다.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58명 중 절반인 29명은 독거실을 배정받아 사용 중이다. 근로 작업에 참여하는 인원도 39.7%(23명)에 그쳤다.
박민식 의원은 “유영철 한 사람 보호하는데 1년에 국민세금으로 수천만 원씩 쓰고 있는데, 앞으로 수십 년간 예산이 못 잡아도 20억~30억 원”이라며 “국민 70%가 사형제가 존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인데 그렇다면 당연히 국민들의 이런 뜻을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영철의 경우 지난해 성인물 불법 반입에 이어 소지품 검사를 받다가 “나는 이미 끝난 사람, 건드리지 마라” 등 폭언을 하며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법무부는 부인했지만 교화되지 않는 흉악범죄자들을 위해 세금을 낭비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론도 여전히 곱지 않다. 지난 10일 공개된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3%가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7%에 머물렀다(7~9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1명 대상 휴대전화 RDD방식. 표본오차는 ±3.1%포인트. 95% 신뢰수준. 응답률 18%).
때문에 몇 십 년 전 시국 사건의 중심에 서서 국가변란기도(國家變亂企圖)를 이유로 사형을 선고 받은 유인태 의원과 수 십 명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살인죄로 사형이 선고된 유영철에게 ‘인권 보호’는 다르게 적용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다음은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 발의의원 명단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강동원 강창일 권은희 김경협 김관영 김광진 김기식 김기준 김동철 김민기 김상희
김성곤 김성주 김승남 김영록 김영주 김영환 김용익 김우남 김윤덕 김춘진 김태년 김한길
김현 김현미 남인순 노영민 노웅래 도종환 문병호 문재인 문희상 박광온 박기춘 박남춘 박민수 박범계 박병석 박수현 박영선 박완주 박주선 박지원 박혜자 박홍근 배재정 백군기 백재현 변재일 부좌현 서영교 설훈 송호창 신경민 신계륜 신기남 신정훈 신학용 심재권 안규백 안민석 안철수 오영식 오제세 우상호 우원식 우윤근 원혜영 유기홍 유대운 유성엽 유승희 유은혜 유인태 윤관석 윤호중 윤후덕 은수미 이개호 이목희 이미경 이상민 이상직 이석현 이언주 이원욱 이윤석 이인영 이종걸 이찬열 이춘석 이학영 이해찬 인재근 임수경 장병완 장하나 전병헌 전순옥 전정희 전해철 정성호 정세균 정청래 정호준 조정식 주승용 진선미 진성준 최규성 최동익 최민희 최원식 최재성 최재천 추미애 한명숙 한정애 홍영표 홍의락 홍익표 홍종학 황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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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최서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