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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평해전]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월드컵 열기에 묻힌 연평해전 사상자, 정치권 관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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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정숙기자 |  2015.06.28 09:57:39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영화가 끝났다. 여기저기서 ‘아~’ 하는 탄식소리가 들렸다.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자막이 다 올라간 뒤에도 한참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가슴은 분노를 넘어 먹먹해졌다. 휴먼감동실화인 영화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제작 로제타 시네마)’을 보고 난 뒤 느낌이다. 

한일월드컵 3·4위전이 있던 2002년 6월 29일. 북한 초계정 등산곶 684호는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침범, 우리나라 고속정 참수리 357호를 선제공격했다. 이 전투로 인해 윤영하 소령,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한상국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했다. 19명은 부상을 입었다. 북한은 3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684호는 반파된 채 퇴각했다. 우리 해군의 승전이었다. 

월드컵 응원에 모두가 웃고 떠들 때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처절한 전투를 치렀다. 숭고한 희생이었다. 하지만 뉴스는 단 한 줄 자막처리에 그쳤다. 당시 경기 시작 전 안정환·박지성 선수는 묵념을 했다.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조차 이들의 묵념 이유를 몰랐다. 두 선수가 ‘제2연평해전’으로 희생된 여섯 용사를 추모한 한 장의 사진은 기록에 남았다. 보는 이들을 더욱 뭉클하게 만든 사진이다. 

▲영화 연평해전 스틸컷

◇ “기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가슴 아팠다.”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새누리당 이병석·새정치민주연합 신기남 의원의 공동주최로 영화 ‘연평해전’ 상영회가 열렸다. 

“사실 큰 기대 안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잘 봤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김학순 감독을 만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이 많은 영화였다. 기획부터 제작까지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투자사는 CJ E&M에서 기업은행으로 변경됐다. 배급사도 NEW(뉴)로 바뀌었다. 시나리오는 대폭 수정됐다. 이미 촬영에 들어간 정석원 등 일부 배우는 하차했다.  

2013년 6월에는 제작비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 고심 끝에 대국민 크라우드 펀딩(인터넷모금)을 시작했다. 총 제작비 80억 원 중 20억 원이 이를 통해 모였다. 감독은 엔딩크레딧에서 후원자 7천여 명과 정석원 등에 대한 감사 표시를 했다. 

개봉일도 순탄하지 않았다. 당초 개봉일을 10일로 잡았다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인해 24일로 연기했다. 평택 2함대 해군 장병들과의 VIP 시사회 등 각종 홍보 프로모션도 취소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였다. 

하지만 이 같은 악재들은 오히려 호재로 바뀌는 분위기다. 27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연평해전’은 26일 22만7560명 관객을 동원해 3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누적 관객수는 56만475명으로 집계됐다. 주말을 지나 100만 명 돌파가 예상되는 등 흥행에 청신호가 켜졌다. 

영화는 2002년 6월 29일, ‘2002 한일월드컵’ 터키와의 3·4위전을 응원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동시에 “우리 모두는 살아서 돌아가길 원했다”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월드컵 4강 신화 속에 가려진 젊은 장병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장면이다. 이들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형, 오빠, 동생들이었다.

영화 전반부는 해군 장교 아버지를 둔 윤영하 대위(김무열 분)와 결혼식을 미처 치르지 못한 신혼의 조타장 한상국 하사(진구 분), 청각장애인인 어머니와 사는 의무병 박동혁 상병(이현우 분) 등 대원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았다. 대원들이 원칙주의자인 윤 대위의 눈을 피해 몰래 꽃게 라면을 끓여 먹는 장면은 딱딱해 보이기만 한 군생활의 전우애를 엿보게 한다. 

대원들이 함께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는 장면도 볼 만하다. 군인들도 일반 시민들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제각각 분장을 하고 응원을 펼치는 대원들의 모습에서 장소와 상관없이 뜨거웠던 월드컵의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영화가 끝난 뒤 윤 대위의 생전 인터뷰가 나온다. 그는 당시 “경기장에 갈 수는 없지만 온 국민과 함께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마음으로 응원하겠다”고 말해 이 부분에서 눈물을 쏟은 관객도 있다. 

영화의 백미는 전투장면이다. 김 감독은 현실감을 위해 실제 전투시간인 30여분을 영화 속에 그대로 옮겼다.

전투 장면은 한국 전쟁영화 최초로 3D로 재현됐다. 바다 위를 넘나드는 탄환들과 공격으로 무너지는 함교, 총알을 맞고 부상당한 대원의 고통 등을 표현하기 위해 특수효과가 동원됐다. 생동감 있는 해상 장면을 위해 배우와 스태프들은 군함과 고속정을 타고 직접 바다로 나가 촬영했다. 

먼저 발포하지 말라는 교전수칙 때문에 북한군의 발포를 예상하면서도 손을 쓸 수 없어 희생 장병이 늘어난 장면에서 관객들은 분노했다.  

영화 초반은 다소 지루하다는 의견도 있다. 2003년 영화 ‘비디오를 보는 남자’로 데뷔한 김 감독은 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해 왔다. 이 영화 또한 흥미 위주의 영화는 아니다. 대원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있는 사실을 보여주려한 해군 출신 감독의 의도를 생각한다면 지루하지만은 않다. 

▲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 정치권이 관심 가져야 할 영화 ‘연평해전’

영화 ‘연평해전’은 개봉 전부터 이념 논쟁이 제기됐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월드컵 폐막식 관람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뉴스 장면이 영화에 삽입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그 때 상황과 유가족들의 심경을 느끼게 해 주는 장면이다. 없어서는 안 될 이른바 ‘팩트’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장면이기도 하다.  

김학순 감독은 25일 CNB뉴스와 대화에서 이념 논쟁에 대해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어떻게 보느냐는 표현의 자유이고 생각의 자유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당시 전사자 합동영결식은 정부 주도가 아닌 해군장으로 치러졌다.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명칭도 ‘서해교전’이었다. 한상국 중사의 부인은 정부의 홀대에 분노해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감독은 이런 것들을 다루지 않았다. 논란을 최대한 피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다.
 
사실 이 영화는 여야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영화다.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 장병들의 명예회복은 정치권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25일 국회상영회는 여야 의원들이 공동 주최했다. 이병석 의원은 국회 부의장 재임 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할 때 급여에서 일정액을 후원했다. 동료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뜻 깊은 일에 함께 동참하자고 권하기도 했다. 해군장교 출신인 신기남 의원은 두 아들이 해군 출신이다. 2005년 ‘서해교전 전사상자 후원회’를 만들어 유가족들을 지원해 왔다. 

통상 국회에서 하는 행사는 국민의례, 애국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진행된다. 이날은 6·25한국전쟁 65주년으로, 영화 상영 전 연평해전 전사자 등에 대한 묵념의 의미가 더해져 뜻 깊었다. 주호영 의원과 신 의원의 해군 동기인 주승용 의원 등도 참석해 영화를 관람했다. 

‘서해교전’ 명칭을 ‘연평해전’으로 바꾼 이명박 전 대통령은 25일 영화관을 찾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병수 부산시장 등은 오는 29일 관람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이 영화를 단순 관람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영화가 끝난 뒤 자막에는 크라우드 펀딩에 동참한 정치인들의 이름이 올라갔다(강석호 김성찬 김세연 김종태 김진태 김태원 김학용 류성걸 박상은 박창식 서상기 심윤조 심재철 신기남 유승민 유승우 윤재옥 이병석 이상일 이진복 이학재 정갑윤 최경환 한기호 의원, 김기현 박진 조윤선 전 의원 등). 당시 월드컵 조직위원장이었던 정몽준 전 의원은 제작비로 1억 원을 기부한 바 있다.  

이제는 영화 제작비 지원을 넘어 연평해전 전사자들의 예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 전사자들은 ‘전사’가 아닌 군인연금법에 따른 ‘공무상 사망자’로 처리됐다. 유가족에게는 3천만 원만 지급됐다. 이후 2004년과 2013년에 관련법이 개정됐지만 이들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이에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5일 전사자·부상자에 대한 보상을 확대 지급하는 내용을 담은 ‘제2연평해전 전투수행자에 대한 명예선양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새정치연합 안규백 의원은 24일 군인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발의했다.

관련법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본회의를 언제 통과할지는 알 수 없다. 

앞서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하면서 파독근로자들의 처우에 관심이 모아졌다. 박명재 의원은 4월 2일, 파독 광부·간호사에 대한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두 달이 더 지난 6월 15일에서야 소관위인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됐다. 

영화가 주목 받을 때 ‘반짝’ 관심은 경계해야 한다. 연평해전 전사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시급한 만큼 관련법 통과를 위해 국회가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때다.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영화 '연평해전' 국회 시사회에 여야 의원들이 상영에 앞서 묵념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승우 의원, 주호영 의원, 최순조 작가, 이병석 의원, 김학순 감독, 신기남 의원, 주승용 의원.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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