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식기자 |
2015.06.19 14:04:16
▲지난 2일 박근혜 대통령이 전남 여수시 여수엑스포에서 열린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서 축사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6월 현재 예정된 17곳 중 12곳 개소
남은 5곳 중 4곳 7월 중 오픈 예정
메르스 창궐에 펀드 증액 압박까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공약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지역 거점인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센터)’가 전국 각지에 잇따라 문을 열어 어느새 예정된 17곳 중 12곳이 정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대구 센터(삼성)가 최초 오픈한 이후 경북(삼성), 대전(SK), 광주(현대차), 충북(LG), 부산(롯데), 충남(한화), 경기(KT), 경남(두산), 전북(효성), 강원(네이버), 전남(GS) 센터가 순차적으로 문을 열었다. 남은 5곳은 서울(CJ), 인천(한진), 세종(SK), 제주(다음카카오), 울산(현대중공업) 등이다.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상반기 내에 나머지 5곳의 센터를 모두 오픈한다는 계획이지만, 제주 센터(다음카카오)를 제외한 나머지 4곳은 모두 6월을 넘겨 7월중에나 개소가 가능할 예정이며, 심지어 서울 센터(CJ)는 “하반기 중 오픈한다”는 계획만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듯 주요 센터들의 오픈 일정이 미뤄지고 있는 것은 때아닌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의 여파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날로 금액이 커지고 있는 창조경제혁신펀드의 부담이다. 지난해 개소한 여러 센터들은 대부분 300억원~500억원대의 펀드를 조성했으나, 최근 개소한 센터들은 광주 1800억원, 부산 2300억원, 강원 1050억원, 충남 1525억원 등 막대한 금액의 펀드 조성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기업들에게 펀드 증액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정부의 요구에 따르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외에도 경영실적 악화, 중앙정부와 지자체간 불협화음 등 혁신센터의 앞길에는 다양한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지난 1월 28일 제주KAL호텔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원희룡 제주지사,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지역기업·지자체·유관기관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다음카카오에 따르면, 이달말 개소식을 열 예정인 제주 센터는 아직 정확한 개소식 일정을 잡지 못했다.
6월이 불과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개소식 일정이 확정되지 못한 것은 때아닌 메르스의 창궐 때문이다. 그간 각 지역의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빠짐없이 참석해온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메르스로 인해 예정됐던 미국 국빈 방문까지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특히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내에서 메르스 3차 감염자까지 발생한 시점에 여수에서 열린 전남 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골든타임을 실기(失期)했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어, 여러모로 참석 일정을 정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아직 박 대통령은 제주 센터 개소식에 참석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고, 경우에 따라서는 예정된 개소식이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악재는 또 있다. 제주 센터의 연계 기업인 다음카카오가 지난 16일부터 국세청 특별세무조사를 받게 된 것.
국세청은 16일 오전 조사4국 조사요원 50여 명을 투입해 경기도 성남시 소재 다음카카오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일반적인 정기세무조사보다 강도가 높은 특별세무조사인 터라 다음카카오측은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가지 악재에도 불구하고 제주 센터 개소식은 예정대로 이달말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여러 상황들 때문에 아직 행사일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6월말로 예정된 개소식이 연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CNB에 전해왔다.
한편, 제주 센터는 지난달 전정환 다음카카오 파트장을 센터장으로 임명했으며, 사무실은 제주벤처마루 3∼4층에 마련됐다. 주요 사업은 다음카카오·NXC 등 제주도 연고기업과 지역산업 간 창조경제 협력체계 구축, 풍부한 신재생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풍력발전·전기자동차 연관산업 육성, IOT 기반 스마트관광산업 등이다.
울산 센터, 현대중공업 ‘경영난’ 골치
지난 2월27일 박주철 울산대 산업경영공학부 교수를 센터장으로 선임하고 3월경 재단법인 설립까지 완료하면서 상반기 중 개소식을 열 예정이었던 울산 센터는 결국 7월중으로 일정을 수정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개소 일정은 7월 중순께로 맞춰졌지만, 메르스 확산 등의 변수 때문에 정확한 일정은 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개소가 불과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도 연계 기업인 현대중공업이 펀드 투자규모를 확정하지 못한 것이다.
혁신센터 연계 기업들은 최소 300억원(삼성)에서 최대 2300억원(롯데)에 달하는 대규모 펀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는데,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조원이 넘는 적자를 내 대규모 투자를 하기 어려운 상황. 사상최악의 실적을 기록해 1300여 명을 퇴직시키는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단행해야 했던 터라 노사 관계도 최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아직 미래부·지자체 등과 구체적 분담비율을 정하는 문제 등이 남아있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대략 1000억원 내외에서 펀드 규모가 정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한편, 울산 센터는 남구 무거동 울산벤처빌딩내 1076㎡ 규모로 운영중이며, 센터 외부인 울산대학교, UNIST(울산과학기술대학교) 등에 별도 전시장을 두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주요 특화사업 테마는 조선해양분야에 ICT를 융합한 ‘스마트쉽’과 3D프린팅, 바이오화학 등이다.
▲지난해 10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전 유성구 KAIST에서 열린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 확대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민병주 의원, 송락경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장, 권선택 대전시장, 박 대통령, 김창근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김차동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사진: 연합뉴스)
인천시와 한진의 이견 조율이 늦어지면서 개소 일정이 여러차례 연기됐던 인천 센터도 7월 중에 문을 열 예정이다.
한진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인천 센터는 예정대로 오는 7월 중으로 개소될 예정이지만, 아직 정확한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타 센터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의 일정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지자체와 연계기업측은 준비를 완료한 상태라고.
연기의 주된 사유였던 창조경제혁신펀드 구성 규모도 아직은 미확정인 상태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인천시는 200억원~400억원 규모로 펀드를 조성할 것을 제안하고 있지만, 한진 측은 100억원 내외로 조성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시는 지난해 11월 기업인 출신의 박인수 센터장을 선임하고, 제물포스마트타운(JST) 6·7층에 1277㎡ 규모의 사무실 마련, 지난 1월 미래부 허가와 법인 등기까지 마무리 지은 상태다.
그런 가운데 한진과 펀드 규모와 관련한 이견이 발생하고, 미래부 등이 송도에 별도의 제2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조성할 것을 주문해 개소가 차일피일 미뤄졌다.
한편, 인천 센터는 지리적 특성과 연계기업의 강점인 물류를 중심으로 지원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주요 업무는 물류, 항공, 대중국 전진기지로서 중국 진·출입 플랫폼 구축 등을 통해 청년 보부상 ‘인상(仁商)’을 육성하는 것.
‘인상’에게는 중국 최대 쇼핑몰인 타오바오 실습 과정은 물론 10주간의 전문 멘토링이 지원되며, 사업화 초기 1년간 한진의 인천지역 공동물류시설을 활용하고, 포장재 등 소모품을 공동구매할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혜택이 제공될 예정이다.
세종 센터, 7월중 오픈 준비 완료
세종시와 연계해 세종 센터 오픈을 준비중인 SK그룹은 “세종 센터를 7월 중 오픈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CNB에 전해왔다. 센터장은 아직 선임하지 못한 상태지만, 다른 준비는 거의 마무리된 상태라는 것.
SK는 지난해 10월부터 대전 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세종 센터까지 오픈하면 삼성에 이어 두 번째로 2개 이상의 센터를 운영하는 대기업집단이 된다. 삼성의 경우 대구 센터와 구미의 경북 센터를 동시에 운영 중이다.
세종 센터는 농업 위주인 지역 특성을 감안, 농업과 ICT를 접목한 ‘스마트팜’을 집중 지원할 예정이다. 지능형 영상보안, 스마트 로컬푸드, 스마트 러닝, 에너지 타운 조성, 영농기술 테스트 베드 제공 등의 사업도 진행된다.
이미 SK는 지난해부터 세종시 연동면에 위치한 ‘창조마을’ 시범화 작업을 지원하면서 스마트팜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스마트팜 100개소와 지능형 영상보안 시스템 50개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이달 17일부터는 연동초등학교 2개반을 대상으로 방과후 학습과정에 스마트 러닝을 적용할 예정이다.
▲지난 5월 20일 서울 마포구 문화창조융합센터에서 개소 100일을 기념해 열린 오픈 하우스 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시설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문체부와 CJ가 공동 설립한 비영리법인인 센터는 지난 2월 11일 개소해 융·복합 콘텐츠 아이디어의 기획과 개발을 지원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이렇듯 아직 개소하지 않은 4개 센터가 모두 7월 중에는 문을 열 계획을 갖고 있지만, 서울 센터의 미래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CJ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6월중 개소는 어려우며, 하반기로 예상하고는 있지만 구체적 일정은 미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 센터의 개소가 난항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중앙 정부와 서울시의 묘한 알력관계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CJ그룹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출범시킨 문화창조융합센터와 서울시와 함께 추진중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서로 겹친다는 지적이다.
CJ그룹은 지난 2월 11일 상암동 CJ E&M 센터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문화창조융합센터를 출범시켰다. 대표적인 문화컨텐츠 기업인 CJ가 글로벌 융복합 콘텐츠를 기획하고 유통을 지원함으로써 건전한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서울시 역시 대지 1898㎡, 지상 2층 규모의 DMC홍보관을 리모델링해 서울 센터를 설치하고, CJ그룹의 지원으로 문화콘텐츠 분야 벤처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두 센터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고, 투자기관까지 CJ그룹으로 동일하다. 센터 소재지까지 인근에 위치하다보니 여러모로 ‘중복투자’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
청와대와 서울시, CJ그룹 등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문화창조융합센터는 별개”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업계는 “결국 실제 사업 내용은 유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보고 있다.
그룹 총수인 이재현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CJ가 중앙정부의 의중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서울시와 추진 중인 혁신센터의 오픈 시기가 늦어지거나, CJ의 지원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시각이 많았는데, 현재까지는 그 예측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17개 센터 중 가장 늦게 개소하는 곳은 투자 여력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한진의 인천 센터가 될 것이라는 것이 그동안의 예상이었는데, 이 상태라면 CJ의 서울 센터가 꼴찌의 불명예를 안게 될 것”이라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사실 중요한 것은 오픈 일정의 선후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만들어질 성과”라며 “각 기업의 혁신 유전자가 지역 스타트업에 어떻게 뿌리내리느냐에 따라 혁신센터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 덧붙였다.
(CNB=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