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연일 물세례를 맞았다. 광주와 봉하, 상대진영으로 불리는 곳에서다.
최근 김 대표는 세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권 내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김 대표가 대권도전을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했다. 이에 대해 그는 22일 대한민국 헌정회 정책포럼 강연회에서 “대권은 하느님이 주는 것이고 저 스스로는 대권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광폭행보를 보이는 김 대표가 물세례를 맞으면서 이에 대처하는 그의 행보에도 눈길이 쏠린다.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묘역에 헌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촉구했는데… 광주에서 물세례
김무성 대표는 17일 광주에서 열린 5·18 기념식 전야제에서 일부 참석자들이 뿌린 물에 옷이 젖었다. 참석자들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임을 위한 행진곡(님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무산에 항의했다.
결국 김 대표는 30여분 만에 자리를 떴다. 그는 “전야제에서 5·18 유족 대표와 함께 있었는데 그분들은 함께 하자고 했다. 하지만 행사가 위험해지고 저 때문에 행사를 망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참석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무산과 관련해 김 대표에게 항의했지만 사실 김 대표는 이 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김 대표는 18일 열린 5·18 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불렀다. 앞서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이 곡의 기념곡 제정을 놓고 박 대통령과 문 대표가 대립각을 세우자 “내가 제일 큰 소리로 부르겠다”며 중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지난 2013년 5월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는 이 곡을 5·18 주제가로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 대표들은 20일 김 대표가 물세례를 받은 것에 대해 사과했다. 김 대표는 이들에게 “전혀 미안해하실 필요 없다. 더웠는데 시원하고 좋았다”며 웃으며 넘겼다.
또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서도 “(5·18에 참여했던)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을 위해서 만들어진 아주 좋은 노래”라며 “북한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21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진정한 국민통합을 위해서라면 물세례를 넘어 어떤 험악한 일도 다 당할 각오가 돼 있다”며 “국민통합과 동서화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우리 정치인의 의무이자 숙명이다. 우리 새누리당의 구성원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내년 5·18 전야제도 꼭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6주기 추도식 참석했다가 물세례
김무성 대표는 광주에서 물세례를 받은 지 6일 만에 봉화에서도 물세례를 맞았다. 그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6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김 대표는 행사가 시작된 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고, 내빈 소개에서 이름이 호명되자 박수를 받는 등 행사 초반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유족 대표 인사말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노건호 씨가 인사말 중반부터 김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리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노 씨는 김 대표를 향해 “특별히 감사를 드릴 손님이 왔다”면서 “전직 대통령이 NLL 포기했다며 내리는 비 속에서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줄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것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대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 달아 종북몰이를 해대다가 아무 말 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다”고 조롱했다.
김 대표는 짧게 어색한 웃음을 지은 뒤 덤덤하게 앉아 있었다. 추도식을 마친 뒤에는 노 전 대통령의 묘역으로 이동해 헌화하고 분향했다.
김 대표가 묘역을 참배하고 나오자 일부 시민들은 “찌라시(지라시)를 팔아먹고 무슨 염치로 왔냐”며 고함을 지르며 생수통을 집어던졌다. 그는 물세례를 맞으며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김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의 추모식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원내대표 시절인 2010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바 있다. 당시 노 씨는 “그날의 비극보다는 당신이 걸어오셨던 길, 당신이 걷고자 했던 길을 기억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비통함과 슬픔을 함께 해주셨던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는 내용의 추모사를 남겼다.
사실 김 대표는 노 전 대통령과 ‘애증의 관계’다. 두 사람 모두 김영삼 전 대통령 문하에서 정치를 시작한 상도동계다. 서로를 잘 안다는 얘기다.
김 대표가 지난 대선 때 NLL대화록을 언급한 것은 맞지만 노 씨의 말대로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은 아니었다. 때문에 노 씨의 이날 발언은 김 대표를 포함한 여권 전체와 비노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또 노 씨는 김 대표가 사과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고 했지만 김 대표는 지난 2월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한 바 있다.
당시 김 대표는 방명록에 “망국병인 지역주의와 권위주의 타파를 위해 온 몸을 던지셨던 서민대통령께 경의를 표합니다. 참 멋있는 인생이셨습니다”라고 남겼다. 사실상 간접 사과라는 해석을 낳았다.
김무성 대표는 최근 두 차례씩 물세례를 받으며 자신이 한 일이 아닌 것까지 뒤집어쓴 모양새가 됐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봉변을 당하면서도 의연한 모습을 보인 것이 당장은 위기처럼 보이지만 추후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