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지도부로 활약하는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서로 협력관계다. 당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보다 나은 전략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최고위원들은 대표의 독단적인 당 운영에 제동을 거는 등 견제의 역할도 한다.
최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김태호 최고위원으로 인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주승용 최고위원 때문에 각각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최고위원들은 당 대표들에게 이른바 ‘한 방’을 날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는 당내 계파갈등으로 비쳐져 대표들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4월23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부터)와 나성린 의원, 김태호 최고위원이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새누리당 김무성-김태호, 공무원연금개혁 무산으로 마찰
최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김태호 최고위원과 마찰을 빚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6일 여야지도부가 합의한 공무원연금개혁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던 도중 최고위원직 사퇴를 거론했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언론과 국민은 (국민연금과 연계한) 이 합의안에 대해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한다”며 “과연 국가의 미래를 걱정해서 나온 안인지, 아니면 양당 대표의 미래만을 위한 안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반문했다.
김 최고위원은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70년간 333조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했는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라는 말이 등장했다”며 “그러면 국가재정은 1600조원 넘게 들어가기 때문에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대로 해도 6년 후에는 다시 매일 100억원씩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며 “모양만 개혁을 부르짖고 실제 내용은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개혁의 방향이나 목표,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한 개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합의안을 즉각 철회하고, 당과 국민에 사과해야 한다”며 “저 자신도 잘못 가는 이 안에 대해 모든 직을 걸고 철회시키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김 대표는 “내년부터 하루 100억원, 5년 뒤 200억원, 10년 뒤 300억원의 국민 혈세가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우는 데 들어간다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다”며 “6년 뒤에는 이번 개혁 덕분으로 하루 200억원 들어갈 게 100억원씩 들어가는 것으로서 제대로 알고 얘기해 달라”고 반박했다.
김 대표와 김 최고위원은 비공개 회의에서도 언성을 높이며 논쟁을 벌이는 등 험한 분위기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최고위원의 최고위원직 사퇴 거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도 경제활성화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사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한 바 있다.
김태호 최고위원의 사퇴는 김무성 대표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김 최고위원의 사퇴에 서청원 최고위원 등 친박(친박근혜)계 최고위원들이 한 명이라도 동조한다면 김 대표 체제는 그대로 무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은 애증의 관계다. 김 대표가 이번 재보선을 대승으로 이끌었을 때 김 최고위원은 ‘선거의 제왕’이라며 김 대표를 업어주는 등 며칠 전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이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은 김 대표의 러닝메이트로 인식된 영향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때문에 그의 이 같은 사퇴 언급은 김 대표의 그늘에 가려진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8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의 비난 발언에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 사퇴를 밝혔다. 주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대표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장했다.(사진=연합뉴스)
◇ 새정치 재보선 전패 후유증, 정청래 비난에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새정치연합(새정연)은 4.29 재보선 전패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보선 이후 공무원연금개혁으로 시선이 잠시 돌아간 듯 했다. 하지만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하며 갈등은 극에 달했다.
새정치연합이 이날 기자들에게 발송한 보도자료에는 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의 모두발언만 편집돼 있었지만 이후 상황은 계파 갈등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 원내대표 뒤에 발언한 주 최고위원은 “비공개·불공정·불공평이 패권주의의 또다른 이름”이라며 공개·공정·공평 등 제갈량의 ‘3공 원칙’을 들어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려면 빗장을 열어야 한다”고 문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주 최고위원의 발언이 끝나자 정청래 최고위원은 “공개·공정·공평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큰 문제”라며 “단결에 협조하는 게 좋다”고 주 최고위원을 자극했다.
그동안 정 최고위원의 트위터 비난에 침묵을 지켜온 주 최고위원은 결국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치욕적 생각이 든다. 나는 세상을 이렇게 살지 않았다”며 “아무리 무식하고 무능하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할 말은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공갈치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이어 “저는 사퇴하겠다. 모든 지도부들은 사퇴해야 한다”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회의장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문 대표는 곧바로 주 최고위원을 따라 나갔지만 빈손으로 다시 회의장에 들어왔다.
주 최고위원은 공식 입장자료를 통해 “답변을 기다렸으나 돌아온 것은 폭언이었다. 이것이 바로 패권정치의 폐해”라며 “친노 패권정치 청산에 대한 입장표명이 없으니 이제는 물러나자는 것으로, 김한길 안철수 전 대표 때와 지금의 기준이 달라진 것인가. 이것이 바로 패권정치의 극단적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주 최고위원은 앞서 지난 4일에도 문 대표에게 “사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책임질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친노 패권주의 청산’ 등을 촉구했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재보선에서 참패한 다음날인 30일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보류한 바 있다.
당내 불만이 이같이 사그라지지 않는 배경과 관련해서는 문 대표의 ‘불통 리더십’ 논란이 제기된 상황이다. 재보선 참패 다음날 사과 방식을 두고 최고위원들은 불만을 터뜨렸고, 문 대표의 광주 방문에 대한 뒷말도 무성했다. 대표로서 책임지는 모습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 대표는 8일에도 정 최고위원의 발언 직후 곧바로 이를 제지하지 않아 논란을 키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 대표는 비공개 회의 전 “지금은 우리 당의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오늘 있었던 발언은 우리끼리의 자리였으면 몰라도 공개적 자리에서는 다소 부적절했다. 유감스럽다”며 정 최고위원을 향해 경고장을 날렸다. 그러나 이 또한 비공개석상에서는 비난해도 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