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운데)와 우윤근 원내대표(오른쪽), 주승용 최고위원(왼쪽)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사진=연합뉴스)
“레임덕은 없다. 정권심판론을 외친 야당이 오히려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다. 목소리 큰 야당 지지자들에 가려 침묵하던 여당 지지자들은 결집했다. 야당 지지자들은 분산됐다. 여당과 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제3세력에게 표를 던졌다. 김무성은 웃고 문재인은 울었다.”
4·29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개표함을 연 결과 3:0:1. 여당은 압승했고 야당은 참패했다. 정치권을 바라보는 민심은 냉혹했다. ‘성완종 파문’ 속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36.0%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미니 총선’이라고 불린 지난 7·30 재보선보다 높은 수치다.
새누리당은 이날 4개 선거구에서 실시된 재보선에서 서울 관악을, 인천 서·강화을, 경기 성남 중원에서 승리했다. 광주 서을에서는 무소속이 당선됐다.
이번 선거는 기존 여당 1곳, 야당 3곳 지역에서 치러졌다. 2곳만 당선되면 선전했다는 기대를 안고 있었던 새누리당은 수도권 3곳을 싹쓸이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은 ‘전통적 텃밭’인 광주마저 내주며 큰 충격에 휩싸였다.
서울 관악을은 27년간 야당 후보가 당선된 지역이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와 거물급인 무소속 정동영 후보가 동시 출마하면서 야권표는 분산됐다.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의 지역 다지기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의 지원이 결합되면서 오 후보는 야당 텃밭에서 당당히 승리했다.
성남 중원에서는 19대 총선 당시 야권연대에 밀렸던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가 3선의 중진 의원이 됐다. 새정치연합 정환석 후보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이 지역 배지를 내 준 무소속 김미희 후보를 따돌렸다.
인천 서·강화을에서는 새누리당 안상수 후보가 새정치연합 신동근 후보를 제쳤다. 안상수 후보는 무려 15년 만에 화려하게 국회에 복귀하게 됐다. 이 지역은 특히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숙식을 하며 공을 들인 곳이다. 이 지역의 패배는 김 대표에게 타격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안 후보가 당선되면서 김 대표는 정치적으로 큰 힘을 얻게 됐다.
야당의 ‘전통적 텃밭’인 광주 서을에서는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문재인 대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새정치연합 조영택 후보를 가뿐히 눌렀다. 친노(친노무현)세력의 ‘호남홀대론’에 분노한 민심이 표출되면서 문 대표는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누리당 정승 후보는 3위에 그쳤지만 11.1%라는 두 자릿수를 얻어 주목 받았다.
이번 선거는 여당의 악재 속에 치러졌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에 등장한 8명의 여권 인사는 뇌물수수 의혹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완구 국무총리는 사퇴했다. 새누리당 지도부와 청와대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노무현정부 때 성 전 의원의 2차례 특별사면 논란이 이어지며 지지율은 혼전양상을 보였다.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와병 중에 밝힌 대국민메시지를 놓고도 여야는 격돌했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메시지에서 성 전 회장의 특사를 언급한 것은 부적절했다며 총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박 대통령의 ‘엄격한 사면권’ 원칙이 상기되면서 오히려 지지층을 결집시켰다는 얘기도 들린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이군현 사무총장 등 지도부가 29일 여의도 당사 4·29재보선 개표상황실에서 밝은 표정으로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선거에서 압승한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 개혁 등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어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김무성 대표는 선거 결과 확인 후 “집권 여당과 박근혜 정부에 힘을 실어줘서 정말 감사하다”며 “오늘로 선거가 다 끝나고 다시 상생의 정치로 돌아가 우리 미래세대를 위한 공무원연금 개혁을 꼭 성공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권은희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박근혜 정부 3년차에 경제 살리기에 더욱 매진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새누리당은 국민의 뜻을 깊이 새기고 오늘부터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초상집 분위기가 된 새정치연합은 정국주도권을 가져오기 힘들게 됐다. ‘성완종 파문’과 ‘세월호1주기’를 계기로 ‘정권심판론’을 내걸었지만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이 때문에 ‘대안 없이 발목 잡는 정당’ 이미지가 굳어지게 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해온 문 대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계파 갈등이 커질 우려와 함께 호남을 중심으로 야권 정계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문 대표는 30일 입장을 밝힐 예정이나 사퇴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새정치연합은 브리핑 또한 서면으로 대체했다. 유은혜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실패, 인사실패,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의 경고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송구하다”면서도 “선거 결과가 대통령 측근의 부정부패를 덮는 이유는 될 수 없다”며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철저히 규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내심 반기는 모양새다.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자칫 레임덕에 빠질 수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숨통이 트였다. 박근혜정부 3년차 국정과제 실현도 탄력을 받게 됐다.
특히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동시장 개혁 등 ‘4대 개혁 과제’ 완수는 물론, ‘성완종 특사 특혜 ’ 의혹의 철저한 규명과 정치권의 부패 관행을 과거부터 낱낱이 파헤치겠다는 ‘정치개혁론’에도 힘이 실린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