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재보선을 하루 앞둔 28일 대국민메시지에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노무현정부에서 2차례 특별사면 받은 것을 언급한 데 대해 여야의 셈법도 분주하다.
중남미 순방 강행군으로 위경련과 인두염 증세를 보여 안정을 취하고 있는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을 통해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를 수용한 것과 관련, "이번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성 전 회장의 사면을 거론, "최근 두 차례 사면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저는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사면은 예외적으로 특별하고 국가가 구제해 줄 필요가 있을 상황이 있을 때에만 행사해야 하고 그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특히 경제인 특별사면은 납득할만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그래서 저는 그동안 극히 제한적으로 생계형 사면만 실시했다"고 말했다.
실제 박 대통령이 집권 이후 특사를 행사한 것은 단 한 차례다. 지난해 1월 설을 앞두고 서민 생계형 사범과 불우 수형자 5천925명만 특사 대상이었다. 정치인과 기업인 등은 특사에 포함되지 않아 이전 정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성 전 회장의 특사에 대해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의 훼손과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도 어지럽히면서 결국 오늘날같이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됐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제도적으로 고쳐져야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특사 언급에 새누리당은 참여정부에서 사면을 받은 인사들을 거론하며 당시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성 전 회장의 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재보선에서 당선된 김제식 의원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노무현정부에서 특별사면이나 감형된 인사들을 보면 임동원ㆍ신건 전 국정원장과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평양에서 딸을 출산한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등이 포함돼 있고 남태평양에서 참치잡이하던 페스카마 15호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피고인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에 따르면 임동원ㆍ신건 전 국정원장 사건은 국정원 불법감청을 지시하고 묵인한 한 혐의로 통신비밀법으로 기소돼 2007년 12월 20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이틀 뒤 대법원에 상고한 뒤 2시간 만에 상고를 취하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특별사면을 받아 3차례의 사전 언지를 받고 상고를 포기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검사 출신인 그는 "제 법조인의 경험으로 되돌아 볼 때 통상적으로 상고를 당일에 취하하는 일은 거의 없다"며 "이분의 경우는 내내 무죄를 주장했는데 갑자기 상고를 취하한 것은 무언가 특수한 정황이 있지 않았나 하는 제 생각이다. 이번 성 전 회장 특별사면과 대단히 유사한 경우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고 의심했다.
김제식 의원은 2002년 대선직후 당시 김창근 SK그룹 구조조정 본부장으로부터 11억원을 수수해 특가법상 알선수재혐의로 구속된 최도술 전 노무현 정부 총무비서관의 특별복권도 문제 삼았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검은 돈의 입구와 출구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며 "불법정치자금 모금으로 실형을 산 최 전 비서관의 사면복권이 과연 돈 정치와 결별하고 부패정치와 사슬을 끊는 사면이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특히 페스카마 15호 사건을 거론하며 문 대표의 과거 변론 전력을 꺼내들었다. 그는 "이 사건은 1996년 8월 2일 조선족 선원 6명이 남태평양 해상에서 한국인 간부선원 7명 등 11명을 흉기와 둔기로 잔인하게 살해한 후 시신을 바다에 던져 버린 엽기적 사건"이라며 "대법원 판결에도 '인간의 행동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 사건이었다'고 적시돼 있다"고 밝혔다.
당시 변호사였던 문 대표는 2심부터 피고인 변호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대법원은 조선족 선원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는데 이들이 대통령 특별사면을 통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며 "이는 문 대표께서 변호사 시절 본인이 변론했던 사건에 대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면서 특별사면에 어떤 영향을 행사한 것이 아닌지 한 점 의혹이 없도록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검사 출신의 김도읍 원내부대표도 "문 대표는 사면은 법무부 업무이기 때문에 모른다는 거짓말을 하고 그 뒤에 성 전 회장의 사면에 대해 전혀 답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문 대표는 안보정당을 표방한다고 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과 집단폭행사범만 집중적으로 1400여명 특별사면을 감형, 복권 했다"며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표는 법무부의 강력한 반대를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하면서 이 사면을 단행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면 언급과 새누리당의 반격에 문 대표는 이날 성남 중원 보궐선거 지원유세 도중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은 이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사건의 본질을 가리며 정쟁을 하는 여당의 편을 들면서 간접적으로 여당의 선거를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거의 중립도 위반했다. 이렇게 물타기로 사건의 본질을 가리고 나서는 건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라며 "사면을 말하면서 이 사건의 본질을 가리고 또 직접 정쟁을 부추기고 나서는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의 본질은 '성완종리스트'가 폭로한 정권 최고 실세의 부정부패사건"이라며 "차기 정권의 대통령을 배려한 퇴임 대통령의 사면 적절성 여부를 따지는 게 지금 이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나. 같은 지위에 놓고 다룰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이 성 전 회사의 2차례 특사를 언급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공론화가 된 상황이다. 여당은 이를 기회로 참여정부 때 특사의 문제점을 짚고 있고, 야당은 본질이 흐려질까 우려하면서 한동안 이에 대한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사면 언급이 재보선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엄격한 사면관을 재확인한 것으로 득이 될 것이라는 긍정 평가와, 오히려 반대층을 결집시켜 실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