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하는 사람들.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보유단체들은 음악·무용·연극·공예기술 및 놀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경상북도는 현재 42개 종목(국가지정 12개 종목, 도지정 30개 종목), 47명의 보유자와 14개의 보존회(국가지정 4개 종목, 도지정 10개 종목)가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의 뛰어난 능력이 중심이 되는 개인종목(국가지정 8개 종목, 도지정 20개 종목)을 운영하고 있다.
도는 이들 무형문화재에 대한 체계적인 전승·보존을 위해 전승지원금 지급, 전수교육관 운영 등 적극적인 무형문화자산에 대한 유지관리, 무형문화재 인프라 구축 등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정부의 지원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심의 손길이 부족한 무형문화재가 다수 집계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자료를 한 국회의원이 공개하기도 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보유자가 없어 빛을 잃은 문화재가 6개 종목, 전수조교가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재가 26개 종목이며, 이수자가 없는 문화재도 3개 종목이나 된다.
이렇듯 산업구조의 재편으로 인한 생활의 현대화로 전통문화 전승기반이 취약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길게는 수 백 년을 이어온 우리의 문화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무관심으로 그 찬란한 빛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단 자치단체의 지원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알고 있는 선조들의 유산을 후대에 전할 수 없다면,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선조들의 유산을 후대에 잘 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향토문화유산을 전승하고 있는 경북 장인들의 일상과 삶의 공간 속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또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중한 우리의 전통 가치를 지켜가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예전에는 몇 달에 7~8번 정도는 굿을 했었는데, 요즘은 일 년 봐야 그렇다. 단순히 미신이네 뭐네 취급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굿도 하나의 문화재라고 생각을 하고 보존했으면 좋겠어요. 굿이 사라지면 우리의 전통문화도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대표적인 무가 출신으로 경상북도지정 무형문화재 제3호 영해별신굿놀이(1980년 12월 30일 지정) 보유자인 김장길(69) 장인은 경북 동해안의 큰 굿을 주제하고 있다.
친인척을 비롯해 세 아들 중 두 아들이 굿판에 종사하고 있다. 비록 집안에서 무계를 세습하고 있지만 점점 사라져가는 현대인들의 관심과 굿에 대한 오해가 못내 안타깝다는 그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조상대대로 이어져온 굿판이 사라지는 건 뿌리를 잃는 것과 똑같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영해별신굿은 해안별신굿의 한 종류로, 세습무(世襲巫)들의 굿이다. 세습무는 신들리는 현상 없이 조상 대대로 무업(巫業)을 이어받아 형성된 무당을 말한다. 점치고 예언하는 강신무(降神巫)에 비해 순수한 사제자로서 무속의례를 집행한다.
3년이나 5년 혹은 10년마다 마을의 수호신에게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기원하는 굿으로, 일반 가정에서 하는 굿이 아니라 공동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조상대대로 전승돼 동해안 어촌 일대에서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이 굿은 일명 풍어제라고도 한다. 다른 굿보다 거리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장편 서사가를 비롯한 각종 무가(巫歌)가 많이 있어서 민속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한국의 마을굿 중 가장 왕성한 전승력을 지닌 굿이 바로 해안별신굿이다. 깊은 바다, 높은 파도와 싸워야 하는 동해안은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주술적 믿음 또한 더 컸다. 음력 3월이 되면 마을의 평안과 수호, 사자(死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본격적인 굿이 시작된다.
영해별신굿 보유자였던 고 송동숙 선생은 온갖 조화술에 능해 칼과 송곳, 노끈, 종이만 있으면 온갖 꽃을 만들어 내는 등 이 부문에 있어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14세 때부터 굿판에 뛰어들었던 김장길 장인은 송동숙 선생의 맏사위로 선생의 타계 후 부인인 고 송명희 무녀와 보유자로 지정돼 맥을 이어왔다. 3년 전 지역의 큰 무녀였던 송명희 선생이 지병으로 별세한 뒤부터는 두 아들과 함께 활발하게 전승활동을 벌이고 있다.
◆ 2박3일 밤낮으로 열리는 영해별신굿
영해별신굿은 보통 2박3일 동안 밤낮으로 열리는데 무당들만 20여명이 참여하고 수 천 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요즘은 마을에 따라 규모를 줄여 굿을 행하기도 한다.
굿은 굿이 행해지는 곳의 나쁜 기운을 씻어내는 부정굿, 마을의 수호신을 모셔오는 골매기 청좌굿, 서낭기를 가지고 당신(堂神)을 모시러 가는 당맞이의 순으로 시작된다.
이어 석가여래의 세존에서 온 말로, 불교와 결합해 승화된 신격에 대한 굿인 세존굿이 진행된다. 무녀가 승복을 하고 장편 서사무가를 부른다. 이것이 끝나면 굿 중에서 비중이 큰 굿인 걸립과 중도둑잽이놀이가 진행된다. 화랭이(세습무권에서 무악을 집안대대로 세습하는 남성악사)들의 익살이 더해져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라 할 수 있다.
조상신들을 초청해 접대하는 조상굿, 산신령을 모시는 산신굿, 오방지신을 모시는 굿, 가옥을 관장하는 성주신에게 바치는 성주굿, 환웅천왕을 비롯해 도교의 오천왕과 불교의 제천왕을 숭상하여 국가민족 수호의 덕을 찬양하는 천왕굿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또 눈병을 없애주는 굿거리인 심청굿, 무녀가 축원을 한 뒤 놋대야를 입에 무는 놋동이굿, 마마를 앓게 하는 손님신에 대한 손님굿, 무속인들의 신에 대한 계면굿, 용왕신에 대한 용왕굿, 다음굿까지 마을의 안녕을 빌면서 선왕신에게 다짐을 받는 대내림굿, 무녀와 화랭이들이 종이로 만든 가면을 쓰고 장애에 대한 방지를 비는 탈굿이 있다.
이어 무녀들이 꽃을 들고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꽃노래, 무사고와 만선을 기원하는 뱃노래, 호환을 방지하는 범굿, 파장굿이라 할 수 있는 대거리굿과 굿에 쓰인 모든 것을 태우는 화장(소진)으로 마무리된다.
대거리굿은 귀신들을 먹여 풀어 보내는 굿을 의미한다. 이 굿은 무녀가 하지 않고 화랭이가 맡아 하며, 반주자 모두 남자들만이 참여하는 굿이다. 굿청에 있는 굿상을 모두 치우고 제물로 놓았던 밥, 탕, 반찬 등을 섞어서 비빔밥을 만들고 탁주 한 말을 놓고 시작한다. 20여 가지의 거리 중 한 거리가 끝날 때마다 비빔밥과 술을 들고 바닷가에 나가 뿌린다.
◆ “굿에 대한 부정적 인식 해소되길”
“영해별신굿놀이는 큰 굿입니다.”
그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영해별신굿놀이’에서 놀이를 빼거나, ‘경상북도풍어제’, 또는 ‘동해안풍어제’로 명칭을 변경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영해라는 작은 지명과 놀이라는 단어 때문에 사람들이 이름 그대로 작은 규모의 놀이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동해안별신굿이나 강릉단오제 등 여타의 굿판과 비교해도 절대 작지 않은데 그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종교 자유 국가인 우리나라에는 갖가지 신앙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형태와 교리만 다를 뿐 기도나 절 또는 굿을 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자신의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거나 가족이나 사랑하는 타인들의 번영과 평안을 위한 것.
굿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의식이자 우리의 전통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다양화와 사람들의 부정적인 편견 속에서 점차 소멸될 위기에 처해있다. 이렇다보니 굿만으로는 세습무들이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게 됐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후에는 한 달에 80만원을 지원받고 있지만 그걸로 온 식구 먹여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하지요. 온몸과 정신의 기운을 모두 쏟아내는 굿판의 특성상 무녀와 화랭이들은 나이가 들면 병을 달고 삽니다. 병원치료비와 약값으로 쓰기에도 모자랍니다.”
이러한 고민들이 세월이 파놓은 그의 주름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있다.
하지만 반가운 소식도 있다. 내년이면 영덕 예주문화예술회관 인근에 영해별신굿과 월월이 청청 상설공연장이 건립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상설공연장에서 영해별신굿의 신명나는 굿판을 선보이고 일반인과 전수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에도 힘쓸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앞으로 미신으로 치부됐던 굿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해소되고 우리 굿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습무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의 바람은 더욱 간절했다. (경북=김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