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여성인물과 관련된 기록이 풍부한 편이다. 타 지역과 차별화되는 여왕, 여신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반가 여성, 평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 여성들의 삶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경북의 여성인물들은 여성에게 녹록치 않았던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의 한 축을 담당하며 당당히 제 몫을 다해왔다.
당시 여성리더로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고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경북의 여성인물들이 어떻게 삶을 선택하고 일구어 나갔는지를 되새겨보면서 현재에 적용할 수 있다.
경북도와 경북여성정책개발원에서 발간한 ‘여행(女行)을 여행(旅行)하다’를 통해 경북 여성인물의 발자취와 흔적을 따라가며 역사 속의 그들을 만나본다. <편집자 주>
◆혁거세왕의 생애 동반자
‘삼국유사’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 나오는 알영(閼英)은 혁거세왕(赫居世王·기원전 69년)과 혼인해 13세에 왕후가 된 인물이다.
알영의 탄생 이야기에는 여타 건국신화 주인공들의 탄생과 같은 신이함이 드러나 있다.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서 알영의 탄생담은 혁거세왕이 나정 우물가의 말이 울고 간 자리에 있던 알로부터 태어났다는 기술과 짝을 이루면서 혁거세왕의 탄생과 거의 동등한 비중의 매우 신성한 사건으로 기술돼 있다.
⌜혁거세왕이 탄생하자 당시 사람들은 다투어 치하하기를 “이제 천자가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 있는 왕후를 찾아 베필을 삼아야 합니다”했다. 기원전 53년 사량리에 있는 알영정(閼英井) 가에 용(또는 계룡)이 나타났고, 왼쪽 옆구리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낳았다(혹은 용이 나타났다가 죽었는데 그 배를 가르고 계집애를 얻었다고 하기도 한다).
처음 태어났을 때 얼굴과 용모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와 같아서 사람들이 월성 북쪽에 있는 냇물에 데려가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떨어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남산 서쪽 기슭에 궁실을 세우고 이들 두 성스러운 아이들을 모셔다 길렀다.
남자아이는 알에서 나와 알의 모양이 박 같아서 성은 박씨라 하고 여자아이는 우물 이름을 따서 이름을 알영이라고 했다. 후에 이들이 13세가 되자 남자인 혁거세는 왕이 됐고, 알영은 왕후가 됐다.⌟
용으로부터 태어났다거나 태어났을 때 닭의 입술을 하고 있었다는 기술이 의미하는 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그녀가 입사의례(入社儀禮)를 통해 새로운 인물로 태어났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입사의례는 크게 죽음의 경험과 제2의 탄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용의 뱃속에 들어가는 것은 원초적인 미분화상태, 우주적 밤에로의 회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자연적 인간으로서의 상징적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용의 뱃속에서 나오는 것은 완전한 인간으로의 재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알영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아 냇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떨어졌다는 내용에서 알영의 탄생이 의례적 탄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왕후가 된 알영은 혁거세왕과 국가의 제도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함께했다. 둘은 탄생의 순간과 왕과 왕후가 되는 순간을 함께 했듯 통치에 있어서도 함께하는 모습을 보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 혁거세 거서간>17년 조에 나오는 기록을 보면 이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왕이 6부를 돌아다니며 위문하는데 왕비 알영도 따라갔다. (백성들에게) 농사와 양잠을 장려해 농토를 알뜰하게 이용하도록 했다’고 돼 있다.
알영은 이처럼 혁거세왕의 짝으로서 서로 함께 하며 국가의 제도를 완성하고 틀을 잡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서로 한 몸 같았던 이들은 죽음의 순간도 함께 한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이 되던 어느 날 왕은 하늘나라로 올라갔는데 7일 뒤에 그 죽은 몸이 땅에 흩어져 떨어졌다. 그러더니 왕후도 역시 왕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신라를 건국하고 신라의 사회제도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든든한 동반자였고, 탄생에서부터 성장, 결혼, 통치,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함께 한 혁거세왕과 알영에 대해 학자들은 ‘두 사람의 몸을 한 하나의 완전체’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알영 유적 및 탐방지
사적 제245호인 알영정(경주시 탑동 700-1)은 박혁거세의 왕후가 된 알영부인의 탄생지이다. 오릉 내에 박혁거세 이하 신라의 박씨성의 왕들을 제사지내는 숭덕전이 있다.
그 옆 관리실을 경유해 들어가면 뒤쪽에 조그만 못(알영지)이 있는데 그 뒤에 알영정 우물터와 비각이 있다.
사적 제172호인 오릉(경주시 탑동 67)은 경주시내 평지 서남쪽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으로 신라 초기 박씨 왕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부인이 묻혔다고 전해진다. 일설에서는 이 능이 박혁거세의 능이라고도 전해진다.
박혁거세왕이 재위 62년 만에 승천했다가 7일 만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졌고 왕비도 따라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이 함께 묻으려고 했다. 하지만 큰 뱀이 방해하서 다섯 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했다고 한다.
오릉의 내부 구조는 알 수 없지만 겉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평지 무덤과 같이 흙을 쌓아올린 형태이다. (경북=김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