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인수된 네스트의 스마트 온도계(사진 제공: 네스트)
SF를 현실로 만드는 ‘사물인터넷’
지난 1월13일 구글은 네스트(Nest)라는 직원 300명의 비상장사를 32억달러라는 거금에 전격 인수했다. 우리 돈으로는 3조40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구글로서도 2012년 모토로라모빌리티를 인수한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인수였다. 과연 네스트가 어떤 기업이기에 구글이 거액을 베팅한 것일까?
네스트는 애플에서 아이팟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토니 파델이 창업한 회사다. ‘리틀 애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애플 출신 직원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 회사는 스마트한 온도계와 화재경보장치를 만들어왔다. 아이스하키 퍽처럼 생긴 이 회사의 스마트 온도계는 사용자가 선호하는 온도에 맞춰 온도를 스스로 조정한다. 집안에 아무도 없을 때는 센서가 이를 감지해 에너지 사용량을 낮추고, 사용자가 귀가할 무렵이 되면 자동으로 온도를 높여준다. 화재경보장치 또한 마찬가지다. 화재와 일산화탄소량을 자동으로 체크해 위험한 수준이 되기 전에 경보해준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아이디어를 세련된 제품으로 구현했을 뿐인 이 회사는 32억달러의 가치를 인정받고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분야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처럼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은 네트워크로 연결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모든 제품, 서비스들을 총칭하는 용어다. 사람의 개입 없이 사물끼리 정보를 주고받고, 상황에 맞게 작동하는 이들 제품들은 스마트홈, 스마트카, 헬스케어, 원격진료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들어 스마트폰의 다음 단계로 주목받고 있는 스마트와치, 스마트밴드 등 웨어러블 디바이스(착용가능한 기기)들도 대표적인 사물인터넷 제품들이다. 시계나 밴드는 물론 안경과 모자, 의류, 침구 등 모든 제품들이 사물인터넷의 소재가 될 예정이며, 이같은 흐름은 가전과 가구, 자동차와 건축물, 거리 등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영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같은 영역 확대에 힘입어 시장분석가들은 글로벌 사물인터넷 시장이 향후 10년간 무려 19조 달러(약 1경9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이후로도 성장속도와 규모에 한계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시장도 미래창조과학부의 추산에 따르면 2013년 2.2조원 규모에서 2020년에는 10배 이상인 약 23조원으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홈 솔루션(사진 제공: 삼성전자)
사물인터넷 선점을 노리는 삼성그룹과 효성그룹
국내 기업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사물인터넷 흐름에 동참한 상태다. 대표적인 기업들로는 삼성그룹와 효성그룹이 꼽힌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도 사물인터넷 시대에 적극 대비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사물인터넷 사업에 뛰어든 기업으로는 단연 삼성그룹을 들 수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4’에서 ‘스마트홈 솔루션’을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 기어2, 기어핏 등 잇따른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발표를 통해 스마트폰 이후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 사물인터넷 사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회사는 최근 상장계획을 발표한 삼성SDS다. 삼성그룹의 IT 전문 계열사인 삼성SDS의 전동수 사장은 최근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신성장 기술을 확보해 해외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삼성SDS는 지난 3월 버지니아에 인터네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세웠다. 사물인터넷을 위해선 대량의 데이터 처리를 위한 데이터센터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삼성SDS는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미국 현지에서 사물인터넷 사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며, 이미 여러 시범 사업이 진행 중이다.
효성그룹도 최근 IT 및 클라우드 전문 계열사 ‘효성ITX’를 앞세워 ‘사물인터넷 집중’을 선언했다. 이 회사는 최근 “사물인터넷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2018년까지 매출 7000억원 이상을 달성하는 사물인터넷 부문 전문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사물인터넷에 필수적인 클라우드 네트워킹·빅데이터 기술 및 전문인력을 모두 보유한 회사로, 이번 비전 선포 이후 클라우드 사업팀과 R&D팀을 대표이사 직속으로 신설하는 등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효성ITX는 지난 2월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군 자녀 기숙형 사립고인 한민고등학교에 스마트스쿨용 클라우드 플랫폼을 공급하는 것으로 사물인터넷 사업의 첫발을 내딛었다.
▲스마트폰으로 자동차를 제어할 수 있는 SK텔레콤의 ‘티카(T car)’ 시스템(사진: 연합뉴스)
이동통신 3사도 사물인터넷 집중
SK텔레콤은 3A(자동차·Automotive, 자산·Asset, 농업·Agriculture) 영역을 중심으로 사물인터넷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 초 스마트폰을 이용한 차량 제어 시스템 ‘티카(T Car)’를 내놓으며 시동을 걸었다. 최근에는 차량 블랙박스에 이동통신망 모듈을 결합한 ‘스마트 라이브온 블랙박스’를 내놨다. 스마트폰 또는 PC를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차량 상태와 영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녹십자헬스케어 등과 공동개발한 ‘효드림 텔레케어’ 서비스, 모드셀과 공동개발한 무선 기능을 이용한 반려동물 실종 예방 목걸이 ‘지브로’와 스마트폰용 지브로 앱도 공개했다. 건물 에너지 관리 시스템 ‘벰스(BEMS)’, 농장 관리 시스템 ‘스마트 팜’ 등도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
KT는 사물지능통신(M2M·Machine to Machine) 플랫폼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동체·관제·커머스·시큐리티분야 등 4개 영역을 핵심 사업영역으로 지정하고, IT기기와 자동차를 결합한 텔레매틱스 사업과 음식물종량제 관제 서비스, 원격 가스보정검침 서비스, 화물정보망 서비스, 마을상수도관제서비스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8일에는 포스코ICT와 손잡고 사물인터넷 기반 ‘글로벌 물류 추적 보안관’ 서비스를 시작했다. 해외 운송 화물의 위치와 상태 정보를 모바일 단말기와 인터넷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LG유플러스는 2010년 ‘탈통신’ 비전을 선포한 이후 ‘LTE 오픈 이노베이션센터’를 중심으로 사물인터넷 사업을 준비해왔다. 이 센터는 중소기업 및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에게 다양한 무선통신 테스트장비 이용환경을 제공한다.
지난 3월 LG유플러스는 LTE기반 무인비행로봇(일명 드론)을 선보였는데, 이 비행로봇에 사물인터넷 기술이 적용됐다. LTE기반 지능형 비행로봇에 LTE 통신모듈을 달아 비행체를 LTE 네트워크와 연결시킨 것이다. 서버와 비행체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아 비행체가 촬영한 영상을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GPS 좌표 입력 방식으로 실시간 원격제어도 가능하다.
이외에 사물인터넷 음식물쓰레기 처리 솔루션 ‘스마트크린’, 영상은 물론 배터리 방전 정보까지 체크할 수 있는 블랙박스 솔루션, 판매량과 재고 등을 실시간 원격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 자판기도 개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좌)과 조현준 (주)효성 정보통신PG장(우)(사진: 연합뉴스)
사물인터넷에 사활건 3세 경영자들…삼성 이재용·효성 조현준
삼성SDS가 상장을 선언하면서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바로 삼성그룹의 차기 수장으로 예정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말 기준 삼성SDS의 지분 11.25%(636만4457주)를 보유한 개인 최대 주주이자 삼성전자(22.58%), 삼성물산(17.1%)에 이은 3대 주주다.
전동수 삼성SDS 사장이 밝힌 것처럼 삼성SDS가 클라우드·빅데이터·사물인터넷 등 신성장 기술을 확보해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ICT서비스 기업으로 도약하는데 성공하면 가장 큰 수혜를 맛보게 된다.
현 시점에서는 해외진출을 선언한 삼성SDS가 삼성전자의 해외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종의 ‘내부 일감 몰아주기’에 가까운 영업방식인데, 사물인터넷 분야에서의 성공은 이같은 시각을 일거에 불식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이다.
업계에서는 과거 ‘e삼성’ 사업에서 크게 성과를 보지 못했던 이 부회장이 사물인터넷 사업 진출에서 성과를 보임으로써 그룹내 주도권을 확고히 장악하려 한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삼성SDS의 상장을 통해 이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이 현재가치만으로도 1조3000억원에 달하고, 더 높아질 가능성도 충분한데, 이 자금은 이 부회장이 부친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양도받는 과정에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주)효성 조현준 정보통신PG장(사장)은 효성ITX가 사물인터넷 집중 선언을 주도한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조현준 PG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IT분야 전문가로 오랫동안 효성그룹의 IT사업을 진두지휘해왔다. 최근 “사물인터넷은 1세대 유선 인터넷, 2세대 모바일 인터넷에 이은 제 3세대 디지털 발전을 뜻할 정도로 중요한 사업”이라며, “기술 개발 및 연구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전문 인력육성 및 채용을 확대함으로써 효성ITX가 사물인터넷 분야에서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는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준 사장은 효성ITX의 지분 37.63%를 가진 최대주주로, 그룹 주력사인 (주)효성 지분도 9.85% 보유하고 있다. 동생인 조현상 (주)효성 부사장도 지분을 9.06% 갖고 있다. 부친인 조석래 그룹회장의 (주)효성 보유지분 10.32%를 상속·증여 받으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이 실탄을 만드는데 효성ITX의 사물인터넷 사업이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효성ITX 주가는 연초 주당 6000원 수준이었으나, 최근 사물인터넷 진출을 선언한 후 주당 2만원을 돌파했다가 13일 현재 18950원을 기록하고 있다. 덕분에 조 사장의 지분가치도 700억원대로 상승했다. 사물인터넷 사업 성공으로 지속적인 주가 부양이 이뤄질 경우 조 사장은 후계에 필요한 실탄 마련이 가능해진다.
이렇듯 사물인터넷 사업은 국내의 대표적인 두 3세 경영자들의 후계 구도에도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과연 예상대로 사물인터넷 사업이 새로운 IT산업 혁명을 가져오고, 두 3세 경영자들의 성공적 경영권 상속을 이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CNB=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