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유례없는 ‘속도전’…대선 전 결론
여권은 ‘李 피선거권 박탈’ 희망 걸지만
어떤 경우든 출마자격에는 변화 없을듯
대법원이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협의 재판에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를 내고 있어 대선판이 휘청이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의 피선거권 박탈(출마 불가)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CNB뉴스가 법조계 등을 취재한 결과, 어떤 경우의 수가 생기든 이 전 대표의 출마자격에는 변동이 없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대법원은 24일 이재명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 전원합의체를 두 번째 가동한다. 앞서 지난 22일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표의 상고심을 재판부에 배당함과 동시에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이번 전합 회부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직접 결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조 대법원장과 재판 대법관 12명 전원이 참여해 재판을 진행하는 절차다. 그동안 대법원은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전합을 열어왔다.
조급해진 사법부, 대선 전에 끝낸다
특히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 속도전’을 펴고 있다. 지난 22일 사건이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 배당되자마자 조 대법원장 결정으로 곧바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했으며, 같은 날 첫 합의 기일까지 열었다. 그리고 이틀 만인 24일 속행 기일이 진행된 것이다. 통상 한달에 한번 정도 심리가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빛의 속도’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대법원이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어 이례적으로 속도를 내는 것은 그만큼 이번 사안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취임 이후 ‘재판 지연’ 해소를 강조한 조희대 대법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대법원장은 그중에서도 선거법 재판은 1심 6개월, 2·3심은 각각 3개월 안에 마쳐야 한다는 ‘6·3·3 원칙’을 강조해왔다.
이 원칙에 따르면 이 전 대표에 대한 상고심(대법원) 선고는 2심 선고 후 3개월 이내인 오는 6월 26일까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이어서 만약 선고를 내린다면 사실상 그 전에 해야 한다. 대법원에 실제 주어진 시간은 더 줄어드는 것으로, 사법부가 속도를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각의 시나리오 넣어보니…대선 시계는 그대로
대법원이 지금처럼 속도를 낸다면 대선 전에 재판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 내규에 따르면, 심리(재판 기일)는 열흘 전에 날짜가 지정된다. 예를 들어 1차 심리와 2차 심리와의 간극이 최소 열흘이란 의미다. 하지만 전원합의체는 ‘신속한 심리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예외조항에 근거해 이틀 간격으로 심리를 열고 있다.
이런 사례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앞서 이 전 대표의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 사건 역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지 약 한달 만인 2020년 7월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바 있다. 이번에도 대선 전에 결론이 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대선 전에 대법원 선고가 이뤄진다면, 크게 4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첫째, 대법원이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는 경우다. 이는 이 전 대표의 무죄 확정을 의미한다. 이 전 대표로서는 사법 리스크를 말끔히 해소하게 되는 최상의 경우다. 앞서 검찰은 이 전 대표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곧바로 상고했다.
둘째, 대법원이 항소심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취지로 파기환송 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다시 항소심 재판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그사이 대선이 치러지게 돼 이 전 대표의 출마자격은 유지된다.
세 번째는 매우 드문 경우지만, 1,2심을 근거로 대법원 스스로 유죄 판결을 내리는 ‘파기자판’의 경우다. 법조계에서는 선거법 재판에서 이런 경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항소심에서 이미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을 파기환송 절차 없이 대법원 자체적으로 유죄 선고한 선거법 사건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설령 파기자판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는 벌금 100만원 미만이 선고되면 피고의 피선거권이 유지된다.
“대법이 절차 깨고 부담 질 이유 없어”
네 번째는 파기자판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 선고되는 경우다. 이는 세번째 경우보다도 가능성이 더 낮아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CNB뉴스에 “이미 사실관계는 1,2심을 통해 확정된 것이기에 상고심은 법리 적용에 잘못이 있는지만 살피는 법률심”이라며 “만약 법리 적용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 될 경우, 다시 파기환송 하는 게 일반적인 법절차”라고 설명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도 “여야를 통털어 독보적인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대선 주자를 파기환송 절차 없이 낙마(피선거권 박탈) 시킨다는 시나리오는 사법부로서도 고려하기 힘들 것”이라며 “만약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 재판을 재개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외에 대선 이후 대법 선고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이 전 대표가 선거에서 졌을 경우에만 유효하다. 만약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헌법84조에 의거, 대통령 불소추특권이 적용돼 재판 자체가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재판의 최대쟁점은 이 전 대표의 과거 발언을 둘러싼 법리적 해석 여부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2021년 방송에 출연해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모른다고 발언하고, 국정감사에 나와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과정에 국토교통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말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를 받고 있다.
1심은 김 전 처장 관련 발언 중 이 전 대표가 그와 골프를 함께 치지 않았다는 이른바 ‘골프 발언’과 ‘백현동 관련 발언’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항소심)은 이를 모두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김 전 처장 관련 발언은 ‘행위’가 아닌 ‘인식’에 관한 발언이라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고, 백현동 발언도 전체적으로 의견 표명에 해당하며 허위로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1·2심 판단이 극명하게 엇갈린 이 전 대표 발언들에 대해 법 위반 적용이 가능한 지가 이번 재판의 쟁점이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