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할말 다했지만, 반응 없었다”…브리핑 않고 곧바로 귀가

대통령실, 韓 세 가지 요구에는 ‘침묵’…“야당에 맞서 당정은 하나” 동문서답만

심원섭 기자 2024.10.22 11:48:30

윤석열 대통령(정면)이 21일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이 배석한 가운데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오른쪽)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21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김건희 여사 논란과 ‘與野醫政’ 협의체 문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의 반응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한 대표는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과의 ‘81분 회동’이 끝난 뒤 국민의힘 박정하 당 대표 비서실장의 국회 브리핑을 통해 회동 결과를 전했으나 박 실장이 ‘회동 직후 한 대표의 반응이 어땠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해 끝내 봉합하지 못한 윤·한(尹·韓)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우려의 해석이 나왔다.

당초 국민의힘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날 ‘면담’을 마친 뒤 한 대표에게 “좋은 시간이었으며, 유익한 만남이었다”라며 “좋게 브리핑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져, 한 대표가 직접 회동 결과를 브리핑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한 대표는 회동이 끝난 뒤 굳은 표정으로 직접 브리핑하지 않고 박 실장에게 회동 상황을 설명한 뒤 자리를 떠났고, 박 실장이 국회로 이동해 대신 브리핑하는 바람에 국민의힘 내에서는 “냉담했던 회동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당초 이날 두 사람 ‘면담’의 최대 관심사는 한 대표의 김건희 여사 관련 ‘3대 요구’ 사안, 즉 ▶대통령실 인적 쇄신 ▶대외활동 중단 ▶의혹 규명을 위한 절차 협조에 대해 윤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에 쏠렸다.

그러나 박 실장은 한 대표가 무슨 말을 했는지만 설명했지, 윤 대통령의 답변이나 대통령실의 반응에 대한 질문에는 “제가 대통령의 답변이나 반응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용산(대통령실)을 취재하는 게 맞다”고만 전했다

그리고 박 실장은 전반적인 ‘면담’ 분위기에 대해서도 “제가 배석하지 않아 분위기를 전하지 못한다”고 답변해, 이에 국민의힘 관계자는 “바꿔 말하면 한 대표가 회동 직후 ‘화기애애했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등 통상적으로 할 수 있는 설명조차 안했다는 것은 부정적 회동 결과를 암시하는 경고음을 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 역시 이날 별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한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모두 하실 말씀을 다 했다. 물론, 한 대표가 원했던 답을 못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으로서는 성의 있고 진지하고 차분하게 하실 말씀을 하시는 등 분위기가 좋았다”면서 “빈손 회동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또 다른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분위기가 좋았다. 면담 전 잔디 마당에서 산책하고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며 “회동 자리에 들어가서도 거대 야당에 맞서 당정은 하나라는 심정으로 임했다”고 ‘동문서답’ 답변을 하기도 했다.

이날 회동은 당초 예정 시간보다 24분 늦은 오후 4시 54분에 만나 차담에 앞서 대통령실 야외 잔디 마당인 파인그라스에서 10여분 간 산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산책 뒤 파인그라스 내부로 이동해 지난 7월 30일 이후 83일 만에 개별 면담에 돌입하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한 대표 등을 감싸듯이 안고 ‘우리 한 대표’라며 두드려줬으며, 대통령실이 공개한 회동 사진에 따르면 기다란 테이블 한쪽 편에 윤 대통령이, 맞은 편엔 한 대표와 정 비서실장이 앉았다.

특히 한 대표 옆에는 이날 윤 대통령에게 요구할 내용이 담겨 있는 빨간색 파일이 놓여 있었지만, 윤 대통령 앞에는 펜이나 메모지는 없었고, 본인이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 있었으며, 한 대표 자리에는 윤 대통령의 지시로 평소에 잘 마시는 제로콜라가 놓였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한 핵심 관계자는 22일 CNB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한동훈 대표가 가져간 붉은색 파일은 각종 여론조사 자료나, 회동 의제가 정리돼 있었다”면서 “한 대표가 회동 전만 해도 ‘대통령에게 설명하다가 혹시 놓칠까 봐 파일에 정리해서 간다’고 의욕을 보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자리 배치를 두고도 뒷말이 나왔다. 이날 윤 대통령이 테이블 정면에 단독으로 앉고 맞은편 오른쪽에 한 대표, 왼쪽에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란히 앉아 자리 배치만 보면 정 실장이 배석이 아니라 한 대표와 동격으로 간주된 것이다.

이에 친한계(친한동훈계) 한 의원은 통화에서 “한 대표가 한달 전부터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구했으나 대통령실에서 정 실장 배석을 제안하면서 이번 회동이 성사됐다”면서 “따라서 한 대표로서는 정 실장을 배석자로서 참석을 받아들인 것인데, 자리를 나란히 배치한 것은 사실상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카운터 파트너로 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준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간의 이번 회동마저 별다른 공감대에 이르지 못하면서 국민의힘 위기는 더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 범야권의 ‘김건희 특검법’ 공세에 맞선 국민의힘내의 이탈표 단속이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내에서는 두사람의 ‘면담’이 ‘빈손 회동’을 넘어 ‘빈 수레 회동’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익명을 요구한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회동에 대해 “빈손은 그래도 마주치면 박수라도 칠 수 있지만, 요란한 빈 수레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만 같았던 회동”이라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21일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 앞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실내 면담에 앞서 함께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사실 이날 두 사람의 회동이 오후 4시반부터 ‘차담’ 형식으로 시작돼 의기투합으로 이어져 ‘만찬’으로 확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기대감을 가졌으나 이날 오전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은 별도의 만찬일정이 있다”고 설명하는 바람에 꺾여버렸다.

한편 야당은 “김건희 여사 문제에서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불통의 면담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혹평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김건희 여사의 활동 자제가 아니라 피의자 김 여사에게 법 앞의 평등을 적용하라는 민의도 철저하게 거부당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겠다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고 이날 면담을 평가했다.

조국혁신당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미 국민들께서는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의 자정 능력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며 “한동훈 대표는 ‘김건희 종합 특검법’ 처리에 동참함으로써 국민의 명령에 화답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개혁신당 김성열 수석대변인도 “이번 면담의 유일한 성과는 윤 대통령의 불통과 한 대표의 무능을 확인한 것 뿐”이라며 “더 이상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 기대를 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부질없는 희망은 버리고 특검을 통해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할 시점”이라고 혹평했다.

(CNB뉴스=심원섭 기자)

맨 위로